"여행이라 쓰고 유흥이라 부르는 이들에게"
이천십칠년 팔월 이십오일 금요일
"오빠, 여기 서양 할아버지랑 태국 언니랑 둘이 같이 다니고 그런다. 신기하네?!"
파타야에 일주일 머물면서 거리에서, 카페에서, 시장에서 자주 같은 장면을 목격했다. 두 손을 꼭 잡으며 걷기도 하고 서로 마주 보며 싱글벙글 웃기도 했다. 국제결혼인가? 아니면 원래 알던 사이인가? 처음엔 신기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궁금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실체를 알 수 있었다. 태국, 특히 파타야에 '성관광'을 오는 남성이 매우 많다는 사실을. 그들도 그중 일부라는 걸.
호기심이 생겨 포털사이트에 검색해 보니 엄청난 정보가 쏟아졌다. 작년 말에는 독일 남성이 태국 성관광을 가기 위해 필리핀 출신 아내를 토막살인 한 사건이 있었고, 지식인에는 '태국에서 여성을 하루 빌리는데 얼마냐'는 되도 않는 질문이 올라오기도 한다(빌린다니! 이런 썩을!). 태국 여성 관광 장관은 성관광 산업을 뿌리 뽑겠다고 선전 포고했지만 쉽진 않은 분위기다. 약 12만 명의 성매매 노동자가 존재한다는 통계자료가 발표될 만큼(2016년 기준), 성관광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태국은 여성이 주로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한다. 아마 12만 명의 성매매 노동자 중 많은 이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일하고 있을 터였다.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니 갑자기 속이 쓰리고 찌릿찌릿, 아파왔다. 도대체, 어째서, 왜.
파타야는 생각보다 작은 해안 도시다. 그렇다 보니 관광객이 방문하는 장소가 정해져 있는데 그중 하나가 '워킹스트리트'다. 어떤 관광지든 존재하는, 필수코스나 다름없는 그곳. 하지만 파타야 워킹스트리트의 분위기는 다른 곳과 사뭇 달랐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밤바다를 느끼기 위해 우리는 파타야 비치를 찾았다. 이 길을 걷다 보니 낯선 풍경을 목격하게 됐다. 화려한 옷에 진한 화장을 하고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태국 여성들을 쭈뼛쭈뼛 지나쳤고, 둘이 같이 걷는데도 '섹스 쇼'를 보러 오라는 호객꾼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했다(아니, 섹시 쇼도 아니고 섹스 쇼란 말인가! 미쳐버리겠네!). 그렇게 파타야 비치를 걷다 보니 번쩍번쩍 요란한 빛을 내는 '워킹스트리트' 입구에 다다랐다. 딱 봐도 시끄럽고 정신없는 분위기가 눈에 그려졌다. "우리 저기 가지 말까?" 워킹스트리트가 파타야 비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 같아 조심스레 건넨 제안에 S593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둘 다 시끄러운 걸 좋아하지 않고 술도 즐기지 않기 때문에 굳이 방문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다음날, 혹시 우리가 모르는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있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워킹스트리트를 찾았다. 밝은 해가 비치는 아침의 이곳은 어떤 모습일까? 꽤 긴 거리를 걷고 또 걸었지만 아쉽게도 특별한 무언가를 발견하진 못했다. 그저 밤새 뜨거웠던 거리의 열기만이 남아있을 뿐. 여기저기 남성들을 유혹하는 간판이 즐비했고, 민망한 사진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서양 할아버지와 태국 여성이 자연스럽게 아침 시간을 즐기는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지금, 행복할까?"
파타야에는 유독 혼자 온 배불뚝이 서양 할아버지들이 많았다. 그들은 왜 혼자일까? 부인은 두고 혼자 온 걸까? 아니면 먼저 떠나보내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온 곳이 멀고 먼 태국인 걸까? 여기는 얼마나 머무는 걸까? 머무는 동안 저 여성과 계속해서 시간을 보내는 걸까? 함께 있는 태국 여성을 보면서도 질문이 그치질 않았다. 너무 어려 보이는데, 그녀는 왜 이 일을 시작하게 됐을까?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아저씨와 시간을 보낸 걸까?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는 걸까? 그녀는 지금의 삶에 만족할까? 온갖 생각에 사로잡혔지만,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이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수밖에.
나의 안타까움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그녀들은 자신의 삶을 즐기며 살고 있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살면서 다신 오지 않을 하루를, 찬란하게 빛나는 그 시간을 생판 처음 본 사람을 위해 쓴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통탄할 일이다. 그녀들은 여전히 아름답고 충분히 매력적인데, 왜 자신의 인생을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써버리고 마는 걸까. 다른 일을 해 볼 여지는 없는 걸까. 분명 그 안에 상처와 아픔이 있을 텐데, 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더 깊은 상처를 만드는 걸까. 각자 나름의 사연이 있겠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그녀들이 자신의 삶을 지켰으면, 새삼 돈과 영혼은 맞바꿀 수 없다는 걸 깨달았으면, 무엇이 행복을 가져다주는지 다시금 떠올려 봤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이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해서일까? 손잡고 함께 걷는 노부부와 유모차를 끌고 가는 가족을 보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환하게 웃으며 "오빠, 저거 봐요!"를 외쳤다. 아직도 로맨틱하게 아내를 챙겨주는 할아버지를 보며, 어떻게 많은 여행지 중 이곳으로 오게 됐는지 노부부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음악에 맞춰 엉덩이를 흔드는 아이와 그 모습이 예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동영상을 찍는 엄마의 사연도 듣고 싶었다. 머리가 하얗게 새버린 배우자와 느리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발맞추어 걷는 것, 칭얼대는 아이들 덕분에 금세 지치지만 현지 음식을 호로록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는 것. 그들을 보니 나까지 행복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내 눈에 비친 그들의 여행은 '사랑'이었다. 몇십 년 동안 잡아봤을 배우자의 주름진 손을 다시 한번 만져보고,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꺄르르르 웃고, 각자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사랑하는 시간. 어쩌면 우리 인생은 사랑으로 차곡차곡 쌓여가는지도 모르겠다.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와 이웃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시간. 어떤 시점에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언제든 어디서든 만들어 갈 수 있는 시간. 하지만 특별히 여행 중에 더욱 견고하게 채워갈 수 있는 시간. 내 시간을 어떻게 쓸지, 누구와 보낼지, 무엇을 할지,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게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시간을 함께 보내는 우리의 여행엔 '사랑'이 있는가, 천천히 조심스레 곱씹어보았다. S593의 곤히 자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쉼 없이 여행하겠노라고, 꾸준히 열정적으로 사랑하겠노라고. 그러니 함께 하자고. 여행 같은 일상, 일상 같은 여행, 그 안에 사랑을 가득 담아 같이 걷자고.
by J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