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별꼴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꼴유랑단 Aug 31. 2017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

"당신에게 마음을 쓰고 싶어요."

"아프다~~~~!!!" - 윤종신 <좋니> 중에서


이천십칠년 팔월 이십사일 목요일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 누군가에게 마음을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며칠 전, 생애 첫 요가를 경험했다. 최근 효리네 민박을 보면서 요가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던 터라 여러모로 좋은 기회다 싶어 머나먼 타국에서 기어이 첫발을 내딛고야 말았다. J179는 이미 1개월짜리 패키지를 등록해 둔 상태였고 나는 일단 맛이라도 볼 요량으로 하루 수강료만 내고 참여했다. 평소엔 요가 시간에 맞춰 그녀를 요가센터까지 바래다준 뒤 근처 카페에 있다가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요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지만, 이날은 그녀와 함께 카운터로 가서 '나 오늘 요가 해볼 거야'라는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일 아닌데, 새로운 시도의 문턱 앞에서는 왜 항상 떨리고 긴장이 밀려오는지. 마치 까까머리로 맞이한 중학교 1학년 첫 등교 날 같은 기분이었다.


요가 한 줄 소감 : 몸은 아픈데 정신이 맑아져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된다


카운터에 가면 사장님이 수강생들의 등록을 직접 담당하고 있다. 살짝 긴장한 내가 '오늘 요가 해보고 싶어'라고 말을 꺼내자 그는 살짝 웃으며 요가클래스 등록 노트를 펼치더니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바로 나의 이름, WOO. 그녀와 특별히 대화를 나눈 기억도 없고 더구나 이날은 처음 요가클래스를 듣는 날이었는데 어떻게 내 이름을 아는 걸까 싶어 물어보았지만, 그는 그저 웃기만 할 뿐. 


요가를 마친 J179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S593 : 사장님은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었을까?

J179 : 오빠가 항상 페이스북 라이브를 보니까 댓글 창에 적힌 이름을 기억했던 거 아닐까?

S593 : 아, 그런가? 기억해 주니 참 고맙네.


이유야 어찌 됐건 내 이름을 불러준 그가 참 고마웠다. 물론 한국인의 성(Last Name)이 짧고 기억하기 쉬워서 어렵지 않은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KIM, HAN, PARK, HWANG 등등. 길어봐야 다섯 글자 정도니 조금만 '마음을 쓴다면' 기억하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을 거다. 


하지만 그 '마음을 쓰는 일'이 절대 쉽지만은 않다는 거, 살다 보니 조금씩 실감하게 된다. 일상을 벗어난 여행지에서는 평소보다 더 어렵게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쓰는 일, 일상 속에서 아주 작은 일에도 마음을 다해 임하는 것. 모두 쉽지 않은 일이다.


며칠 전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바람 쐬러 밖에 잠시 나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반딧불이. 평소 같았으면 멍하니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다시 집으로 들어갔겠지만, 수풀 사이에서 반짝거리던 무언가를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을 놓치지 않았던 덕분에 반딧불이를 생애 처음으로 만날 수 있었다. 분주한 도심을 벗어나 이런 척박한 시골에 온 뒤 달라진 게 있다면 다름 아닌 '마음을 쓰는 일'을 조금이나마 더 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익숙한 일상에서는 '마음을 쓰는 일'을 거의 하지 않는다. 마음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 아니면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호기심이 전혀 사라져 버린 탓에 늘 '새로운 것'에 마음을 쓰느라 익숙하고 작은 것에 마음 쓰는 법을 잊은 건지.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친구들은 하나같이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일'에 능숙했다. 심지어는 전화번호와 생일 같은 신상정보까지 기억했다가 '나 이것도 알아'라고 어필하는 일이 어찌나 자연스럽고 익숙해 보이던지. 그래서인지 항상 그들 곁에는 친구가 참 많았다. 동네에서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동창의 이름조차도 기억을 못 해 어색한 미소로 떠나 보내야 했던 나로서는 그저 꿈같은 일이었을 뿐이다. 달리 말하면, 만나는 인연을 향해 '마음 쓰는 법'을 잘 몰랐던 거다.


우리는 '평소 종종 들르던 편의점 사장님이 나의 얼굴을 기억해 주기만 해도 참 고마운 시대'를 살고 있다. 어렸을 때 학교 담임선생님이 한 달이 지나도록 내 이름을 모를 때 밀려오던 섭섭함을 아는 우리에게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결핍되어 있던 본능적 욕구일지도 모른다.


스트레칭을 하면서 창 밖 풍경을 바라보면 기분이 조크든요


여행을 하면서,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을 볼 때마다 별자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고, 길가에 피어있는 들꽃들의 이름을 외워뒀다가 만날 때마다 인사를 건네고, 이름도 주인도 없는 길고양이들에게 즉석에서 이름을 만들어 부르면서 목덜미를 만져주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아는 별자리라고는 북두칠성이 유일하고, 너무 빠르게 달리느라 들에 핀 꽃을 바라볼 시간조차 없는 숨 가쁜 일정을 고집하고, 뭐가 그리 급한지 길에서 만나는 동물들을 무심히 지나쳐 가기 바빴다. 마음을 쓰는 게 어려운 이유는 그게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보다 쉬운 것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아졌기 때문' 아닐까.


성공하는 지름길, 출세하는 비결, 돈 많이 버는 비법,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술(응?) 같은 것들에 마음을 쓰느라 놓친 것들이 그저 아쉽다. 정해진 여행 루트를 망가뜨리면 안 된다는 예민함에 사로잡힌 나머지, 길에서 만난 아이에게 넉넉한 미소 한 번 지어주지 못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삶의 매 순간 만나는 이들에게 조금씩이라도 마음을 썼더라면 내 인생은 얼마나 많이 바뀌었을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마음을 쓸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아니, 마음을 쓰는 데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고 싶다. 마음의 힘, 마음의 지구력을 길러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살다 보면, 몸은 지치고 녹초가 될지언정 그 상황에서도 마음을 쓸 줄 아는 멋진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런 이들을 볼 때마다 멋지다고 생각한다는 건, 누군가 나에게도 그렇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성서에서 황금률로 불리는 마태복음의 한 구절처럼,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할 줄 아는 삶이 필요하다. 그렇게, 내 인생 위에 따뜻하고 멋있는 삶을 쓰고 싶다.


오늘은 이 노래를 듣고 자야겠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의 품이 포근하게 위로가 될 수 있도록."


by S593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이라 쓰고 사랑이라 읽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