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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꼴유랑단 Jun 06. 2018

지치지 않는 연습

여행만큼 일상도 소중하니까

이천십팔년 유월 육일 수요일


'여행은 끝났지만, 유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허세 글을 남긴 게 자그마치 오 개월 전 일이라니, 시간이 체감할 수 없을 만큼 순식간에 지나갔다. 겨울과 봄을 지나는 동안 일상 속 우리의 풍경은 체감온도만큼이나 급격히 달라져 있었다. 지금은 J179도 나도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에 입사했고, 매달 정확한 날짜에 들어오는 월급으로 우리 자신과 이웃들을 챙기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추위도 언젠간 풀리고 아무리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봄은 천천히 피어나고 있었다는 걸 하나하나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중이다. 유난히 춥던 지난 겨울을 지나는 동안 '과연 봄이 올까?' 의심 속에 사로잡혀 있던 나에게, 봄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때 그 자리로 다시 돌아와 주었다. 얼어붙어 굳게 닫혀있던 내 마음에도 봄소식과 함께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긴 공백기를 지나 이 글을 쓰기 위해 마침내 책상 앞에 자리를 잡았다. 


무언가 대단한 이야기를 쓰기 위함이 아니다. 그저 나라는 존재가 '호모 사피엔스', 생각할 줄 아는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걸 잊고 살아갈 때가 생각보다 잦은지라 내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표현하고 탐구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고, 나는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까봐 그게 난 제일 두렵거든. 


그치지 않을 것 같던 빗줄기도 언젠간 그치더라


2018년 한 해를 살아가는 동안 꼭 붙들고 싶은 신조를 정했다. 바로 '지치지 않기'다. 김동률 6집 노래에 각각의 사연을 담아 녹음한 <김동률의 동행, 노래를 읽다> 시리즈 중 <동행>이라는 노래에 들어있던 '지치지 않기'는, 마치 지금까지의 내가 왜 그리도 아파하고 힘들어했는지를 한 방에 알려준 힌트 같은 노래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상처받고 아파했던 이유는 (상대방의 탓도 물론 있겠지만) 내가 너무 빨리 지쳐버린 탓이 훨씬 많았고, 지치지 않는 법을 배웠더라면 굳이 반복하지 않아도 됐을 실수 또한 너무나도 많았다. 무슨 일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나는 쉽게 지치는 사람이었다. 여행지에서도 나는 곧잘 싫증을 느꼈고,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바쁜 일상에 지친 나머지 그렇게도 싫증 내던 여행을 갈망하는,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곤 했다. 여행도, 일상도, 나는 그리도 쉽게 지쳐버렸다. 


나는 지금 지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지치지 않기 위해 일부러라도 무리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싫증을 내지 않기 위함이 아닌, 더 사랑하기 위함이고 오래도록 꾸준히 해 나가기 위함이다. 사흘 밤낮을 지새워도 거뜬했던 20대의 강철 체력이 무기였던 그때의 나는 더이상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잘 알기 때문이다. 주어진 기회 속에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오랫동안 꾸준히 하기 위함이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이 행복한 순간들을 오래도록 공유하기 위함이다. 


"지치지 않는 게 중요해. 
일상을 여행처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행 뒤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 지치지 않도록 
잘 어르고 달래는 것도 중요해.
여행만큼 일상도 중요하고 소중하니까." 

 

이런 소소한 일상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다


지난 6개월간의 여행은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여행하는 내내 그 순간에 집중하려고 노력했고, 한국에서 나를 얽어매던 것들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으니까. 그래서였을까? 일상으로 돌아오는 동안 감수해야 했던 대가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지난 5개월의 공백기는 내가 반드시 치뤄야만 했던 대가를 경험하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나는 여행을 꿈꾼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형태, 다른 의미의 여행을 꿈꾼다. 누군가는 이런 나에게 '철들었네', '나이 먹더니 현실감각이 생겼나 보네'라고 말할는지도 모른다. 맞다. 서른셋이 되어서야 현실과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치지 않으려면 낯선 여행지가 아닌 평범하고 익숙한 나의 자리를 아끼고 사랑하는 게 더 필요하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지치지 않아야 이전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아낼 수 있다는 걸 배웠으니까 말이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얘네는 '별꼴유랑단'이니까 왠지 해외여행을 자주 다닐 것만 같고 흔히 말하는 YOLO처럼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 벌어 오늘 먹고 사는 여행자다운 삶을 살 것만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면 부디 거두어주시길. 일상을 유랑하듯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별꼴유랑단의 정체성이니까 말이다. 별꼴유랑단이 언제 다시 해외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날의 우리는 작년보다 덜 화려하고 덜 강렬할지는 몰라도 부디 더 깊어지고 더 노련해지기를. 덜 지치고 덜 상처받기를. 더 행복하고 더 사랑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일상이야말로 진짜 장거리 여행이다. 
최근에야 나는 장거리 여행을 일상처럼 하기보다 일상생활을 장거리 여행처럼 하는 게 낫다는 걸 깨달았다. 여행에서 열정을 유지하기는 쉽지만 일상이야말로 가장 큰 도전이기 때문이다."

by 란바위퉈 <돌아온 여행자에게> 중에서 


p.s. 글이든 사진이든 영상이든, 대단하지 않아도 꾸준히 올리도록 노력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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