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엘이가 없는 5번째 밤

2025년 7월 9일

by 리엘맘

병원에 출근했다.


지난 1년간, 매주 수요일은 아이 아침밥을 먹이기 위해 늘 1시간 반씩 일찍 일어났었다.

아침 공복 1시간 전에 먹여야 하는 보조제 때문에.

피곤함이 극에 달한 날엔 침대와 내 몸을 억지로 찢어 반쯤 감긴 눈으로 아이에게 보조제를 먹인 후

확언 기도를 했다.

기도를 마치면 내 약과 영양제를 챙겨 먹고 아이 밥시간 전까지 출근 준비를 했다.



정신없던 출근 전 아침 시간이....

한가해졌다.



아직 바꾸지 않은 알람 소리에 아이 없는 첫 수요일이 왔음을 느꼈다.

동시에 어제보다 더 긴 잠을 잤다는 걸 깨달았다.


오늘도 아이는 오지 않았다.


오늘은 잠에서 깨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그럴 줄 알았다는 자조적 한숨과 허탈감에 이젠 필요 없어진 1시간 동안 누워있었다.

대충 씻고 아이 아침밥을 소량 챙겨준 후,

아이가 지난주 수요일 등원 때 입었던 옷과 이름 목걸이를 챙겨 나왔다.

단 일주일 만에 바뀐 상황이 기막혔지만 애써 생각하지 않은 채.



"리엘아, 엄마 수요일 병원은 처음 가지? 같이 가자~"



집을 나서니 어김없이 숨통을 조여 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식은땀이 얼굴에 집중되고 온몸이 달달 떨렸다.

급히 팔목에 두른 아이 이름 목걸이를 손에 쥐었다.

하지만 땅바닥이 나를 흔드는 기분과 아득해지는 정신에 닥치는 대로 지인들에게 전화했다.


다행히 전화를 받은 지인이 다급히 숨을 고르라며 진정시켜 줬다.

아이가 함께 있으니 불안해하지 말라고..



불과 6일 전, 아이와 함께 갔던 지하철 가는 길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구역질이 나고 눈물이 쏟아졌다.

지인과 통화하지 않았다면 그 길로 심연 속에 곤두박질쳤으리라.



근무시간이 된 지인과 통화를 끊고 가빠지는 숨을 누르며 지하철에 올랐다.

점점 차오르는 사람들.

심호흡을 아무리 크게 해도 과호흡으로 넘어가기 전 그 느낌이 내 몸을 감쌌다.

여기서 쓰러진다면 겨우 얻은 두 번째 직업은 포기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해져

다리가 덜덜거렸다.


'리엘아! 아가! 엄마 좀 지켜줘.


속으로 미친 듯이 아이 이름을 부르며 애를 썼지만

15분 남짓한 출근길 지하철은 내겐 15년 같은 긴 고통이었다.



떠밀리듯 내려 환승하고 한산한 지하철에 올라 자리에 앉으니 맥이 탁 풀렸다.

어지럽고 메스꺼웠다.

불과 두 달 전, 이 길에서 쓰러진 적이 있었기에 공포스러웠다.

아이에게 전념한 1년을 정리하려면 출근해야 했다.

내 병원비로 지출이 생겨서는 안 됐다.


눈을 감고 아랫배에 힘을 줬다.

손이 떨리게 쥐고 있는 아이의 목걸이를 더 꽉 움켜쥐었다.


잠시 후, 짙은 피로감이 몰려오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가 좌측 대각선 건너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가, 왔니?'


등줄기가 저릿. 눈을 번쩍 떴다.

거기 그곳에 아이의 잔상이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어제 보던 옛 사진 중 하나와 겹쳐 보였단 걸 깨달았다.



허무함과 함께 곧 내릴 곳이 됐다는 안내가 나왔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지하철역을 빠져나갔다.

버스를 타자니 늦을 것 같아 급히 지나가는 택시를 탔다.


"뭐가 그렇게 죄송해요. 돈 받는데 짧은 거리 가면 기사가 이득이지. 죄송하다고 하지 마세요."


고작 2~3분 거리라 기사님께 연실 죄송하다고 했던 거 같다.

안전벨트를 쥔 손처럼 목소리도 떨렸던 것도 같다.

그래서인지 룸미러로 눈을 맞추며 따스한 말을 전하는 기사님을 보며 눈물이 터지려 했다.





아이가 떠나던 날, 병원을 오가던 길에 택시를 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택시에 오르는 그날이 떠오르려 했으나 기사님 덕분에 작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마치 그 누구에게도 잘못한 게 아니니 스스로를 탓하지 말라는 말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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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자마자 자리에 아이 옷을 올려두고 스크럽복 주머니에 아이 목걸이를 넣어뒀다.

아이가 함께 있는 것처럼, 처음 오는 곳이라 이곳저곳 구경하며 냄새 맡고 있다고 생각하며.


막상 출근하니 마음이 그리 요동치지 않았다.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지난주에 남긴 미납금 결제 때문에 아이의 차트를 열어야 했다.

결제하고 나니 시스템 결제 목록에 아이와 내 이름이 나란히 올랐다.


'아, 이걸 종일 보겠구나.'




첫 진료가 왔다.

목 채혈을 하기 위해 보정을 하는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부드럽고 하얀 털을 가진 몰티즈 환자.


아이가 떠난 후, 처음으로 만져본 생명의 피모에 심장 한가운데 대못이 박히며 아려왔다.

아이가 자주 하던 닭발까지 마주하니 캄캄한 현실이 강렬하게 밀려왔다.




커피와 쿠키를 건네며 조언을 해주신 원장님의 배려로 간신히 감정을 추스르고 일에 집중했다.

단골 보호자님이 따끈한 옥수수도 주고 가셨다.

건네받은 쿠키와 옥수수는 아이에게 주었다.


'우리 애기, 사람 음식 처음 먹네?'


효율과 능률 따위 따지지 않고 그냥 움직였다.

소모품을 채우고 배송된 약들을 정리했다.



"리엘아, 엄마 일 잘하지?"



한 가지 일을 끝낼 때마다 아이에게 되뇌었다.

병원에 오는 환자들에게 인사도 건네고 쓰다듬으면서 속으로는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다 보니 일도 재밌고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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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면서 옥수수 1개와 작은 쿠키 1개를 먹었다.

또다시 뱃속에 들어앉은 불덩이들이 음식을 밀어냈지만 쓰러지지 않기 위해 씹어 삼켰다.


아이 이름으로 계좌도 만들었다.

친구들이 보내준 조의금을 옮겨 넣었다.

이건 오롯이 아이의 병원비로 쓸 것이다.

5분도 안 걸리는 새 계좌를 만들면서 왜 아이가 있을 땐 이 생각을 못 했는지..

다시금 목구멍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미용실장님과 아이의 이야기도 했다.

워낙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한 탓에 이주 전부터 아이를 보내던 날까지의 일은 줄줄 읊을 수 있었다.

평일이라 늦은 시간에 방문한 환자들이 있었다.

미용도 늦게까지 이어졌다.

이젠 저녁 기다리는 아이도 없고 약 시간 때문에 초조하지도 않으니 늦게 끝나도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퇴근 시간이 임박하니 습관처럼 마음이 초조해졌다.

종일 내 곁에 있던 아이가 먼저 가서 저녁밥을 기다릴 거 같아서..






병원을 나서며 5일 만에 이어폰을 꽂았다.

이젠 음악을 들을 여유도 생겼다는 게 죄스럽게 슬프면서도 대견했다.

역시나 지하철역에 다다르니 가슴이 뻐근하게 내려앉았다.



'리엘아, 집에 가자. 가서 밥 줄게'



그렇게 생각하니 더는 숨이 답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열차 안에서 이 글을 써 내려갔다.

깜깜하고 텅 빈 집에 들어가면 또 어떨지 모르겠다.

지금 나는 엉성한 거품으로 위에 올라서 있는 듯하니까..

하지만 넋 놓고 있을 수 없다는 걸 안다.

나는 엄마니까.

아이를 아는 모든 사람이 진심으로 아이를 애도하고 있고 또한 나를 걱정하고 있으니까.



아이와 함께 한 마지막 밤. 수많은 악다구니 속, 아이에게 건넨 진심이 있다.



"엄마가 오래오래 버텨서 오래오래 우리 애기 기억할게. 그렇게 리엘이가 세상에 있었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이 될게."



그래서 아이를 위해 오늘도 내일도 두 발에 힘을 주고 버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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