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9일
아이가 없는 밤이 이렇게 많이 쌓였음이 생소하다. 벌써 다음 주면 한 달이다. 한 달이 넘기 전에 아이 사망신고도 해야 한다. 아이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공식 기록을 지워야 한다. 그날은 얼마나 더 아플까.......
전날, 종일 잤음에도 오전까지 잠을 이겨내지 못해 예정했던 보건소 방문은 오후에 하게 됐다.
아이가 아프기 전, 극심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으로 학생 지원 상담을 몇 번 받았었다. 안타깝게 학교 지원이 없어지며 상담은 끊겼고 아이가 암 진단을 받으면서 나는 정신을 다잡아야 했다. 아이 앞에선 울어도, 흔들려도, 우울해도 안 됐다. 내 모든 변화가 아이 컨디션과 직결된단 걸 안 뒤론 내 입에선 늘 '괜찮아.'라는 말이 습관처럼 나왔다. 긍정적인 말들과 생각을 의식적으로 하다 보니 우울할 수 없었다.
아이가 가고 애써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어지자 1년간 억눌렀던 어둠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아이를 잃은 상실감과 혼자 남은 두려움은 어둠의 훌륭한 먹잇감이었다.
그렇게 무겁고 습해져 버린 마음은 아이가 떠나는 순간에도 나를 데려가라며 악다구니를 쓰게 만들었다. 그 모든 순간이 오롯이 나만 슬프고 아팠기에, 또 그 시간에 아이는 없었기에 아마도 아이가 곁에 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거겠지. 내게 내려진 벌이리라.
보건소로 가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길은 아이와 자주 가던 산책로였다.
오늘, 그날 이후 처음 걸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가 가장 좋아하던 '어야 놀이터'를 한 바퀴 돌았다. 입구에서 아이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다 뜨거운 것이 울컥 치솟았다. 화단 곳곳을 바지런히 살피던 아이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였다. 하지만 아이는 없다.
내친김에 오늘은 미루었던 일들도 하나씩 했다. 보건소에서 주민센터로 가는 길에 아이가 좋아했던 운동장 카페에 들렸다.
"사장님, 리엘이가 갔어요."
이 말이 다시금 현실을 파고들어 놀라신 사장님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아이 둘을 보냈다는 사장님은 시간이 약이라고 했다. 그곳을 아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세 번만 찍으면 두 장을 채우는 쿠폰북을 손에 쥐며 다시금 느끼게 됐다. 이곳에 마지막으로 온 게 언제더라. 돈 아낀다고 봄에 가고 안 갔던 거 같기도 하다. 어차피 없는 돈. 아이가 가자고 할 때 한 번 더 갈 걸.
주민센터를 나와 이번에는 까치네 카페로 향했다. 아논이, 벨이네와 놀러 갈 때 까치네 카페 앞에서 만나곤 했다.
또 아이가 암 진단을 받았던 작년 여름, 눈물을 쏟던 내 얘길 들어주며 더울 때 시원함을 준 곳이었다.
아이를 많이 걱정해 주던 여사장님. 마지막 방문은 아마 6월 초, 텀이 유독 짧았던 마지막 마비 즈음이었을 것이다. 산책 중 갑자기 온 마비에 아이를 품에 안고 뛰어 들어갔던 곳인데.......
남사장님께 아이의 부고를 알리고 커피 한 잔을 사서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5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수없이 아이와 걸었던 이 길이 오늘은 유독 넓게 느껴졌다.
다시 또 아이 없는 일상에서 아이의 흔적과 마주한 하루.
나는 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