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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라 쓰고 삼겹살이라 읽는다.

삼겹살을 먹기 위한 준비

by 리을

오늘은 시간, 날씨, 계절에 상관없이 당기는 고기를 먹으려 한다. 음식 중에 고기라면 사람마다 여러 가지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분명하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아래 식탁 한 가운데를 차지한 불판 그리고 그 위에 가지런히 놓인 삼. 겹. 살이 떠오른다. 어제 불고기 반찬을 먹었어도 '오늘은 고기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전적으로 그 이미지에서 오는 것이다. 라고 추측하고 있지만 정확한 이유는 사실 알 수 없다. 불고기도 맛있지만, 그것만으로 '고기'라는 말을 채우기엔 아쉬움이 있다. 차치하고 삼겹살을 먹으러 발걸음을 옮긴다. 먼저 동료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아주 중요한 문제다. 고깃집은 혼자 밥을 먹기에 난이도가 높은 편이라 먹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들 수도 있으니 웬만하면 같이 갈 사람을 찾는다. 그렇게 약속을 잡아서 고깃집에 간다면 대부분 주문이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이 필연적인 추가 주문은 개인적인 식욕보다도 함께 간 사람의 분위기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삼겹살을 기름지다고 느끼는 사람이거나 양이 적어서 젓가락을 먼저 내려놓는 상대라면, 기껏 채우러 온 고기 욕구를 채우지 못하고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배려심 많은 사람이라면 신경 쓰지 말고 추가 주문을 진행하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식사를 마친 사람을 앞에 두고 고기를 불판에 올려 굽고 먹는 시간까지 기다리게 한다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니 제대로 고기를 먹겠다고 생각한 오늘 같은 날이라면, 고기에 진심이고 식사 끝까지 파이팅이 넘치는 사람을 동료로 삼는 것이 좋다. 운 좋게도 그런 사람과 만나는 것에 성공했다. 벌써 맛있게 고기를 먹기 위한 절반 이상은 해낸 것이나 다름없다.

자, 이제 식당으로 향한다. 식당을 고를 때도 여러 가지 기준이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창의력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삼겹살의 두께에 따라 불판의 종류에 따라 곁들여 파는 부재료에 따라 얼마든지 다채롭게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오늘은 모험 없이 집 근처에 자주 들르는 고깃집으로 향한다. 방문할 때마다 높은 만족감을 주는 익숙한 가게는 고기 맛에 집중할 수 있는 좋은 장소다. 집 근처에 그런 고깃집을 미리 찾아 놓는 것도 유사시를 위해 필요하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점인데,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다. 붐비는 사람들 틈 사이 자리를 잡아본다. 이미 외우고 있는 메뉴판을 가볍게 훑어내리다 삼겹살을 주문한다. 여기까지 왔다면 삼겹살을 먹기 위해 모든 준비는 마친 셈이다. 동료와 가볍게 이런저런 말을 나누며 곁눈질로 식탁 위에 차려지는 반찬을 스캔한다. 이 가게의 주요 반찬 중 하나인 콩나물이 섞인 파무침이 나왔다. 양념을 섞다 결국 참지 못하고 한 입 먹고 만다. 파채의 알싸한 맛과 아삭한 식감이 살아있는 콩나물은 새빨간 양념과 함께 만나 새콤달콤한 맛을 입안 가득 퍼뜨린다. 젓가락 한 점에 고기를 먹고 싶은 마음이 더 짙어져 버렸다. 선홍빛의 두툼한 삼겹살이 쟁반에 나오고, 달궈진 불판을 확인한 점원이 고기를 굽기 시작한다. 고기가 익는 소리와 냄새에 반찬으로 예열된 위장이 아우성친다. 매번 겪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이 기다림은 순간. 안절부절못하며 애꿎은 반찬들에 집적거려 보지만 불판에 고정된 시선은 거두지 못한다. 고통스럽지만 역시 점원이 구워주는 고기를 보는 것만큼 쉽고 안전한 행복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잠시 잊고 있던 동료를 슬쩍 바라보자 다행히 나만큼 열정적인 시선으로 불판을 보고 있다. 더디게 보여도 시간은 착실히 흐른다. 선홍빛이 서서히 사라지고 탐스러운 갈색으로 바뀐다. 어느새 한입 크기로 잘린 삼겹살은 반들거리는 기름까지 칠해져 먹음직스러운 모양을 띤다. 점원은 불판의 불을 줄이고 손에 들고 있던 집게를 놓는다.

"맛있게 드세요."

이 말을 듣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 고기 한 점과 곁들일 소금, 와사비, 쌈장, 파무침 수없이 즐거운 상상과 함께 젓가락을 든다. 그 이후는 뭐- 더 설명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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