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 처음 자취를 하게 되었다. 나의 의지는 아니었고, 아버지의 전근으로 나 혼자 큰 집에 남겨졌다. 10여 년 전 네 명이 살던 집은 동생이 먼저 떠나고 부모님이 잠시 떠나게 되었다. 2년 후 다시 돌아올 예정이기에 큰 집에 혼자 살게 되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모두 떠난 후 혼자 거실에 앉아 집을 둘러보았다. 그 집이 유난히 크고 조용하게 느껴졌다. 그게 좋았다. 상상만 했던 '혼자 산다'라는 매력은 실로 엄청났다. 가장 큰 장점은 공간을 오롯이 내가 점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내 방을 가지고 있었기에 내 공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혼자 집에 사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모든 공간에 있는 내 모습, 행동들에 제약이 없어진다. 특히 공간 안의 소리를 제어할 수 있다는 건 더할 나위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누군가를 걱정하지 않고 소음을 내고, 방해 없이 원하는 만큼 고요함 속에 있을 수 있었다. 고요한 거실에서 따스한 햇살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을 수 있는 그 순간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퇴근 후, 저 현관문만 통과하면 나만의 세계가 펼쳐졌다. 그것도 매일.
일주일쯤 지난날이었을까? 맛있는 빵을 집에 가서 먹을 생각에 들떠있었다. 현관문을 통과한 나만의 공간에서 엄선한 티브이 프로그램과 함께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유를 찾아 냉장고의 익숙한 위치에 손을 뻗었는데, 우유가 없었다! 우유가 없다는 사실보다 없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전혀 생각 못 한 나에게서 놀랐다. 손 뻗으면 익숙한 자리에 있던 우유는 당연한게 아니었다. 우습게도 나는 냉장고를 열고 처음으로 혼자 산다는 것의 의미를 현실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그렇게 놀라는 일들은 계속 늘어만 갔다. 자연스럽게 먹고, 마시고, 쓰고, 심지어 버리는 일까지도 저절로 되는 건 없었다. 집안일을 함께 해왔다는 생각이 무색하게 느껴졌고, 그런 내가 몸만 큰 어린아이 같았다.
다행히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고, 나 또한 그랬다. 스스로 만든 규칙들이 생겨나고 나를 자연스럽게 감당하기 시작했다. 청소, 빨래, 분리수거 등이 무리 없이 내 생활에 녹아들 때쯤 한 가지 문제는 도무지 나아지지 않았다. 그건 바로 저 4인 가족이 쓰던 큰 냉장고를 감당하는 일이었다.
배달 음식에 질려 김치찌개 만들기에 도전했다. 그전까지 나에게 있어 저 냉장고는 그저 남은 음식을 담아두는 저장고일 뿐이었다. 김치찌개를 끓이는데 몇 번이나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했는지 모른다. 도대체 국간장은 어디에 있는지, 고춧가루는 있기나 한 건지, 냉동실에 왜 이렇게 검은 봉지의 물체는 또 많은지… 마치 엄마가 친해지기 어려운 낯선 친구를 두고 간 것 같았다. 외국에서 와서 말도 통하지 않는 친구를. 다행히 인고의 시간을 들인 김치찌개의 맛은 나쁘지 않았고, 그렇게 서서히 낯선 친구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냉장고 속엔 완제품이 아니라 해보고 싶은 요리의 재료들이 늘었다. 직접 점심 도시락을 준비했고, 놀러 온 친구들을 대접할 수 있을 정도로 적응했다.
어느새 부모님이 떠난 지 2년이 되었고, 두 분은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더 살아보기로 결정하셨다. 이 기회에 타지에 살아보고 싶었던 마음을 실현해보기로 했다. 무작정 타지에서 면접을 보다가 새 직장을 구했고, 친구의 따뜻한 제안으로 함께 살게 되었다.
친구의 집은 원룸이었다. 내 키보다 작은 냉장고가 책상 옆에 자리 잡고 있었고, 침대와 책상 사이엔 사람 한 명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맞은 편에는 화장실과 싱크대가 있는 곳. 지금 다시 떠올려보면 공간이 작게 느껴지는데 그땐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당시 직장에 야근이 너무 많아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 사실 많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말투가 다른 타지에서 하루 종일 적응하려고 애쓰다, 버스 막차를 겨우 타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집에 있는 냉장고를 떠올렸다. 냉장고 속에 맥주가 있는지 없는지가 그렇게 중요할 수 없었다. 확신이 없을때면 그냥 집 앞 편의점에 들렀다. 네 캔에 만 원하는 맥주들과 간단한 안주를 사들고 들어가는 그 순간은 왜 그리도 마음이 놓이던지.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낮에 있었던 일들을 한바탕 친구 앞에 떠들어내고 나면 그제서야 답답함이 내려가곤 했다.
당시 냉장고에 맥주를 더불어 항상 떨어지지 않고 있던 제품이 있었는데, 바로 냉동고기였다. 고기라면 아침 뿐만 아니라 세끼 내내 먹을 수 있는 나와 생선류는 아예 입에도 안대는 친구가 만났으니 당연한 결과였는 지도.
주말도 없이 출근하던 회사가 가뭄에 콩 나듯 일찍 마치는 날이면 친구와 함께 장을 봤다. 집 근처에 마트가 두세 군데 정도 있었다. 이곳저곳을 보며 신선하고도 저렴한 야채와 과일을 고르는 일이 나는 재미있었다. 서로 좋아하는 과일을 사고 고기에 어울릴 야채, 맥주 등을 잔뜩 담았다. 그렇게 집에서는 고기를 굽고 만찬을 벌였다. 그 순간들이 아직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즐겁게 먹고 마실 거리를 품어주는 냉장고가 있는 곳, 고단한 하루를 쉬어 갈 수 있는 곳, 무엇보다 마음을 채워주는 친구가 있는 그곳이 절대 작게 느껴질 수 없었다. 3개월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공간이 주던 위로는 아직도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 후 결혼을 했고, 전혀 살아보지 못한 동네에서 터전을 마련했다. 출퇴근 시간이 편도 한 시간 이상이 걸리는 길이라 집에 오면 녹초가 됐다. 아무리 노력해도 7시 전에 집에 도착할 수 없었고, 신혼의 로망을 지키며 밥상을 준비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어느 순간 잠을 위해 아침을 포기했고, 간단하고 편한 인스턴트 음식에 손이 가는 날이 늘었다. 저녁이면 수고한 나와 남편을 위해 배달음식을 시켰다. 치킨에 맥주, 초밥에 한잔 등 기분에 따라 서로가 끌리는 음식을 주문하고 즐겼다. 새 냉장고에 먹다 남은 음식을 보관하는 일이 다시 잦아지곤 했다.
건강검진하는 날이 다가왔고 내시경 검사를 처음 받아봤다. 가볍게 받아보려 했던 마음과 다르게 역류성 식도염에 위염까지 있는 상태였다. 어떻게 그렇게 모를 수가 있었는지. 알고 보면 전조증상이 많았다. 점심밥을 먹고 나면 가슴 부위가 쓰렸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던 커피가 속에 안맞는 느낌이 들어 멀리하게 되었고, 술 마시는 것이 거북해졌다. 더부룩한 속에도 참고 자려고 눕게 되면 꼭 새벽에 깨서 고생을 하곤 했다. 다 그저 일시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여겼는데… 몸이 열심히 표현하던 바를 조금도 관심 갖지 않았던 거였다. 염증이야 약을 먹고 나을 수 있지만, 위가 나이에 비해 늙어버렸다고 의사가 말했다. 멍청했다고 수없이 되뇌지만 망가진 걸 되돌릴 수는 없다. 더 나빠지지 않게 보살피는 것이 최선이 되어버린 것이다.
30일치 매 끼니마다 식전, 식후로 먹어야 하는 엄청난 양의 약을 받아왔다. 잘못된 식습관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귀찮다고 먹어온 간편식, 고생한 나를 위로한답시고 자극적인 음식을 찾고, 늦은 시간까지 많이 먹는 그 습관들 모두가 내 몸을 괴롭혀 온 것이다.
처음 혼자 살았을 때도 지금보다는 더 잘 챙겨먹었는데…. 야근에 지쳐 친구와 함께 살 때도 이렇게 끼니를 귀찮게 여기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러다 엄마 생각이 났다. 아니 엄마의 냉장고가 생각이 났다. 항상 신선한 야채들과 건강한 먹거리들이 가득 들어있는 그 냉장고가 우리 집 냉장고와 너무 다르게 느껴진다. 그리고 끼니 때마다 따뜻하게 차려지는 밥과 국, 반찬들이 떠오른다. ‘엄마는 어떻게 매일 그런 끼니를 나에게 챙겨줬던 걸까? 그리고 여전히 그렇게 지내는 걸까?’
주말 장바구니를 손에 들고 집 앞에 있는 마트로 향했다. 그곳에서 무와 콩나물, 국거리용 고기와 시금치를 사 왔다. 밥 솥에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큰 냄비를 꺼내고 참기름을 휘이 두른 후 국거리용 소고기를 볶는다. 고소한 냄새에 벌써 기분이 좋았다. 휴대폰으로 레시피를 보며 부산스럽게 냉장고 문을 몇 번이고 열었다, 닫았다 하며 조금씩 완성해갔다. 마무리 간은 엄마가 수없이 해주던 그 국의 맛을 생각하며 이것저것 넣었다. 역시.. 단번에 그 맛이 나지는 않는다. 냄비 뚜껑을 닫고 약불로 계속 끓인다. 다른 냄비를 준비해서 시금치나물을 만들어 본다. 살짝 데치고 물을 꽉 짠 시금치에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해본다. 시금치나물 무침에도 엄마의 맛을 소환해보지만 그 맛이 나지 않았다. 마지막 계란찜은 전자렌인지 몇 분이면 됐다. 40분 조금 넘는 시간에 붉은 소고기 국에 시금치나물과 계란찜의 한상이 완성되었다. 가끔 마트에서 인스턴트 육개장을 사본적이 있었는데 번번이 실망했다. 그보다 내가 끓인 국이 훨씬 나았다. 다행히 함께 밥을 먹는 남편의 생각도 그랬다. 그래… 밥상을 차린다는 것이 꼭 귀찮은 것만은 아니었다. 나를, 그리고 나와 함께 사는 사람을 대접하는 일이었다는 걸 너무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아직도 나는 자취를 시작하던 때처럼 냉장고를 다루는데 익숙해지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러 생활 형태 속에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워나가는 중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알고 있다. 네 명의 가족이 함께 살 때 그 모두의 밥상을 건강하게 차리기 위해 엄마가 얼마나 노력하고 연구해왔는지를. 그리고 친구와 함께 살 때 나를 위해 좋아하는 먹거리들을 말없이 냉장고에 채워준 일을. 그리고 지금 냉장고에 채워진 많은 것들도 가족들의 마음에서 왔다는 것을.
냉장고에 그냥 존재하는 것은 없다.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에서 회차마다 새로운 사람이 나오고, 그 사람의 냉장고 안을 바라보면 그 사람이 사는 세계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하루하루 끼니가 보이고, 그걸 위해 애쓰는 여러 사람의 마음들이 있다.
나는 다시 도전하려 한다. 나와 내 소중한 사람을 따뜻하게 품기 위해 내 손으로 냉장고 속 작은 세계를 다시 건강하게 꾸려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