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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by 리을


한 달전 구두를 하나 샀다. 까만 색에 앞코가 날렵하게 생기고 발등 바깥쪽으로 벨트 장식을 둔 낮은 굽의 구두. 남성 구두를 축소해 놓은 것 같이 보인다. 예전부터 마음에 들어했던 디자인인데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가지지 못했었다. 아쉬운 마음에 남편이 구두를 고를때 추천을 해왔지만, 깔끔한 기본 스타일을 선호하는 남편의 최종 선택으로는 늘 탈락되는 디자인이었다. 결국 구두는 본인이 신을 것이기에 존중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 오랜만에 간 신발 매장에서 찾았다. 내 발에 맞고 내 맘에 꼭 맞는 구두를.

이상하게도 마음에 드는 무언가를 사면 언제올지 모를 중요한 날을 기다린다. 특히 코로나 때문에 더더욱 오기 힘든 그 날을 말이다. 그래서 큰 맘 먹고 신발장에서 한달을 보낸 구두를 신고 저번주 주말 약속에 나갔다. 매번 운동화를 신다 구두를 신으니 바닥이 바뀔 때마다 의식하게 된다. 엘리베이터 앞에선 맑게 울리는 소리가, 돌 위를 걸을 땐 그보다 밝고 경쾌한 소리가, 나무 바닥을 걸을 땐 좀 더 낮고 묵직하게 울리는 소리가 들려 자꾸 발을 내려다 보게 만든다. 발등에 주름 잡히는게 싫었는데 반나절을 함께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주름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웬걸 주름 마저 예쁘게 보인다니 단단히 맘에 든 모양이다. 친구와 말을 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구두에 시선이 간다. 발뒤꿈치 위가 쓰라려오는 것이 아마도 새로 산 구두가 적응하려면 아직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다. 어쩌겠는가. 더 많이 좋아한 쪽이 손해보는 것을.

밴드도 없이 반나절을 함께한 댓가로 뒤꿈치 위에 상처를 얻었다. 샤워할 때도 쓰라리고 익숙했던 운동화를 신어도 그 부위가 닿여서 몇 일을 신경쓰였다. 그래도 구두 탓은 하지 않고 또 구두 신을 날만을 기다리게 됐다. 참고 참다 오늘 그 구두를 신었다. 아직 빨갛게 부어오른 부위에 두꺼운 밴드를 붙이고 목이 긴 양말을 신고 구두를 신었다. 스치는 부분이 약간 신경쓰이지만 어쩔 수 없다. 아까도 말했지만 더 많이 좋아하는 쪽이 손해를 감수하고 이해하려 애쓰는 수밖에. 어제 비가 와서 혹여 구두에 튀지 않을까, 만원 버스에서 누군가가 밟지 않을까 걱정했다. 이 나이에도 구두 하나에 기분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게 신기하고 웃기다. 이유없이 자주 신는 날이 늘어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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