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거울 너머
발끝에서부터 수십 마리의 벌레가 몸을 타고 올랐다. 가위가 시작되기 전에는 자주 그런 기분이 들곤 했다. 알아차렸을 땐 이미 온몸에 묵직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분명 깨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은 여전히 가위에 눌려있었다. 모두 무시한 채 잠들고 싶지만, 징그럽도록 선명한 감각에 발버둥 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태오, 안태오를 추천할게요.
-열심이긴 한데 센스가 좀 부족하다는 거지.
-아이디어는 지웅이 너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지독한 가위에 걸려든 것이 분명했다. 머릿속에서 작은 목소리들이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그는 움직이려는 시도를 멈췄다. 아무리 애써도 벗어날 수 없는 가위는 그가 느꼈던 패배감과 닮아있다. 어차피 언젠가는 깨어날 것이다. 괜한 힘을 빼려 움직이는 것보다 포기한 채 아침이 오길 기다리는 게 현명해 보였다.
-넌 윤지웅 대용품도 못된 거 아냐?
“안태오! 너 이런 말도 안 되는 걸 듣고 가만히 있을 거야?!”
-타고난 척 연기하는 거 그만둬.
“타고난 거? 그게 뭔데? 열심히 노력하는 게 어째서 연기라고 하는 거야!”
난데없이 시끄러운 목소리가 난입했다. 머릿속에서 조용히 울리는 목소리와 다르게 태오의 고막을 찢을 듯이 크게 들려왔다.
-어차피 너는 발치에도 못 따라가.
“그걸 왜 저 자식 마음대로 판단하게 내버려 두고 있어?”
할 수만 있다면 두 손으로 귀를 닫고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에 엉겨 붙은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진심이야. 나는 진심으로 너… 대단하다고 생각해. 왜 아직 저딴 쓰레기 같은 말에 아직도 휘둘리고 있냐고! 일어나, 안태오 일어나!!”
그 순간 답답한 가슴이 트였고, 태오는 눈을 떴다. 조금 전까지도 눈을 뜨고 있었지만, 이제야 선명하게 제대로 보였다. 눈앞에는 자신을 붙들고 끌어당기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윤… 지웅?”
“안태오! 정신이 들었어? 몸을 내 쪽으로 기울여!”
어째서 지웅이 자신의 방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고막이 아프도록 자신을 깨우던 목소리와 같았다. 몸을 기울이자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던 다리가 풀려났고, 그와 동시에 둘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에 앉아 바라본 방안의 풍경은 기괴했다. 침대 위에 있던 이불이 괴생명체처럼 꿈틀거렸다. 그리고 점점 그들에게 다가왔다. 태오가 방문을 열어보려 했지만, 손잡이는 헛돌았고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지웅은 다급하게 손목에 묶인 실을 잡아당겼다. 느슨했던 실이 천천히 조여들기 시작했다. 태오는 곁에 있던 협탁을 붙들고, 기어 오는 이불을 쳤다.
“멀뚱히 서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잠시만, 분명 이렇게 당기면 된다고 했는데!”
그 순간 실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지웅이 팔을 뻗어내 흔들어 보니, 실은 붙박이장 끝에 달린 거울로 향해 있었다.
“저기, 저 거울로 가야 해. 셋 하면 뛰어.”
“뭐? 저 괴물 근처에 간다고? 미쳤어?”
“출구는 저기 밖에 없어. 잔말 말고 뛰어들어. 하나, 둘, 셋!”
꿈틀거리는 괴물을 향해 달렸다. 태오가 협탁을 휘두르는 모습에 잠시 주춤하더니 괴물은 몸을 거대하게 부풀렸고, 파도처럼 그들을 덮쳤다. 버둥거리며 빠져나오려 했지만, 단단히 붙잡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때 책상 위에 있던 무언가가 태오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몸을 비틀며 팔을 최대한 뻗어내 손으로 붙잡았다. 딸깍이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번졌다.
태오가 붙잡은 것은 인센스 스틱을 피웠던 라이터였다. 불은 삽시간에 번졌고, 괴물은 맥없이 불타올랐다. 숨쉬기 힘들 정도로 조여들었던 압박감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금세 방안 곳곳으로 불이 옮겨 붙기 시작했다. 지웅의 실은 여전히 거울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느새 방안에는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차올랐다.
“으악! 이게 어떻게 길이라는 거야? 젠장!”
거울이 있는 문을 열어보고 두드려 봤지만,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지웅의 뒤에 서 있던 태오의 눈에 익숙한 모습이 거울에 스쳤다.
“윤지웅. 잠깐만 뒤로 물러나 있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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