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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의 꿈-5

검은 고양이의 정체

by 리을

태오가 사라지고,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렸다. 지웅은 손목의 실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달렸다. 지난번 꿈에서처럼 검은 번개가 내리쳤고, 하늘이 갈라져 떨어졌다. 파편들 사이로 종이 조각 하나가 눈앞에 떨어지고 있었다. 지웅은 손을 뻗어 종이를 붙잡았고, 더욱 빠르게 달렸다. 도현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나란히 열려있는 세 개의 문을 붙들고 있었다. 꿈이 무너지기 직전, 그들은 전실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기진맥진한 표정의 도현은 바닥에 쓰러지듯 누웠다.


“와… 오늘도 아슬아슬했네요.”


어느새 태오의 꿈으로 향하던 문은 사라졌다.


“…빨리 좀 나오지 그랬어.”

“엄청나게 노력한 거요. 그리고 저 칭찬받을 짓 하나는 했을걸요?”


지웅이 손에 든 종이를 도현에게 건넸다. 그는 놀란 듯이 바라보더니 그 종이를 받았다.


"…고맙다."

"뭘요, 제가 더 감사하죠."


지웅이 누워있는 도현에게 손을 뻗었다. 그는 손을 잡고 바닥에서 일어났다.


"자- 이제 이것저것 저한테 알려주세요! 준비되어 있습니다."

"잠시 숨 좀 돌리자, 응?"


도현은 비틀거리며 소파로 향했고 그곳에 다시 누웠다.


"중요한 일은 빨리 알아두는 게 좋잖아요. 그러고 보니 형, 고양이 키우세요? 여기서 제가 고양이를 봤었는데-"


누워있던 도현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고양이랑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무슨 일은 없었고, 그냥 청소할 때 울길래 좀 같이 놀았죠. 그리고… 아, 맞다 고양이가 문틀을 넘나들길래 따라갔다가… 이렇게 되긴 했네요."


도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콧잔등을 만지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조심해. 검은 고양이를 무턱대고 따라가면 안 된다고."

"키우시는 거 아니었어요?"

"아니라니까. 하여튼 최대한 피해. 눈도 마주치지 말고."

"왜요? 대체 뭐길래 눈도 마주치지 말라는 거예요?"


무어라 말하려다 도현이 입을 다시 다물었다. 그는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궁금하다면… 이야기 하나 들어볼래?"






칠흑같이 어두운 곳에서 시작되는 무대가 있어. 밝은 빛 아래 모습을 감추고 있던 존재들은 밤의 신이 펼친 장막 앞에서만 모습을 드러내거든. 그건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이야기야. 누구도 함부로 멈추게 할 수 없고, 원하는 결말에 닿기 이전에는 절대 끝날 수도 없지.


그런데 그곳에는 종종 괴물이 나타나. 예고도 없이 난입한 괴물 때문에 무대는 엉망이 돼버리곤 했지. 괴물을 잡아내려 아무리 애를 써봤지만, 소용없었어. 어둠 속에서 자유를 얻은 괴물은 모습까지 바꿔대며 이야기를 망쳤어. 주인공을 속이고, 관객의 눈을 가려 결말로 향하는 흐름을 멋대로 막아 세웠지.


무시무시한 괴물의 정체가 도대체 뭐냐고?


그는 바로 밤의 신이 기르던 고양이였어. 샛노란 눈동자에 비단결처럼 고운 털을 가진 검은 고양이. 처음부터 괴물이었던 게 아니야. 밤의 신의 무릎에서 사랑받을 때는 얌전한 동물이었다고. 그랬던 그가 괴물이 되어버린 이유는 변덕스러운 밤의 신에게 있었지. 신은 밤마다 펼쳐지는 화려한 연극에 사로잡혔고, 더는 고양이를 찾지 않았어. 외로워진 고양이는 짙은 어둠 속에 숨어버렸지. 하지만 누구도 그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어.


한참을 우울 속에 빠져있던 고양이는 결심했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 신의 무릎 위로 돌아가겠노라고. 어김없이 밤이 찾아왔고, 밤의 신은 짙은 장막을 펼쳐냈지. 고양이가 그곳을 마구 뛰어다녔지만,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았어. 비단결처럼 검은 털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기에 안성맞춤이었지. 그렇게 몰래 숨어든 고양이는 무대에 난입하기 시작했어. 중요한 소품을 부수거나 모습을 바꾸고 나타나 훼방을 놓곤 했지. 예측할 수 없이 엉망진창이 된 이야기에 밤의 신이 웃었어. 그 모습에 고양이는 점점 더 날뛰게 되었고, 어느새 괴물로 불리게 되었지.


그러니 고양이를 조심해야 해.


언제나 샛노란 눈동자의 검은 고양이가 곁에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고.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그가 변덕스러운 괴물이라는 걸 기억해. 마주치는 걸 피하도록 해. 이미 마주쳤다면 아주 멀리 달아나. 그래야 너는 이야기의 끝을 맺을 수 있어.


깊은 밤 펼쳐지는 무대를 끝낼 수 있어.

잊지 마!






[ 당신의 꿈을 여는 가게, 심향 ] 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이 글은 독립출판 소설 '당신의 꿈을 여는 가게, 심향'의 에피소드 중 일부입니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궁금하시다면 호두알 상점에서 책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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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골목에는 눈에 띄는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문을 열면 향긋한 냄새로 가득한 그곳은 인센스 스틱을 판매하는 가게, 심향입니다.

상냥한 알바생과 무뚝뚝한 사장이 있는 심향에는 조금 특별한 손님들이 다녀가곤 합니다.

사연은 다르지만 모두 기묘한 꿈 때문에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이죠.

그들은 편히 잠들고 싶어 이곳까지 오게 되었네요.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들의 바람과 달리 꿈은 더 복잡해져 갑니다.


그들은 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인센스 스틱을 권하는 알바생과 사장의 속내는 뭘까요?


밤마다 펼져지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꿈, 그곳에 담긴 의미를 따라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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