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가위
도현이 꿈의 전실에 오랜만에 발을 들였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고, 선반 위에 달갑지 않은 존재가 보였다.
“냐아-”
“고양이인 척 하지 마. 역겨우니까.”
“말이 너무 심하잖아. 반갑다고 인사해주면 덧나?”
검은 고양이는 태연하게 말했다.
“꺼져. 내버려 두는 걸 다행으로 여겨.”
“쯧쯧. 하여간 너는 골내는 게 문제라니까. 그리고 고양이인 척 굴면 좀 받아주면 덧나? 꼬맹이는 잘만 놀아주던데, 재미없기는.”
녀석의 말을 무시하고 암실로 들어가려던 도현이 멈춰 섰다. 그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고, 고양이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뭐? 너 방금 뭐라고 그랬어?”
“야옹”
샛노란 눈의 고양이가 눈을 반짝이며 울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를 바라보던 녀석은 도망치듯 달아났다.
“너…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거야!”
“꾸미긴 뭘 꾸며? 그냥 하도 꼬맹이가 궁금해하길래, 어떻게 들어가는 건지 맛만 보여줬지. 설마하니 휙-하고 떨어질 줄을 알았나, 뭐?”
검은 고양이는 짧은 복도 앞에 섰다. 그곳에는 도현이 보지 못했던 새로운 문이 열린 채로 있었다. 그를 본 도현의 손이 눈에 띄게 떨렸다.
“똑바로… 말해. 그 꼬맹이란 게… 누구냐고!”
“여기 네 허락 없이 드나들 수 있는 존재가 나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그제야 평소와 다른 이곳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에는 마시다 만 찻잔이 놓여있고, 담요가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지웅이 저렇게 내버려 두고 자리를 비웠을 리 없었다.
“젠장!!”
도현은 새로 생긴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이 허공에 매달린 것처럼 나란히 서 있었다. 그에겐 절망할 시간도 없었다. 그는 다급한 걸음으로 창고에 들어갔다.
“하하하- 그래, 그런 반응이어야지. 아, 역시 재미있다니까.”
검은 고양이가 소름 끼치도록 날카롭게 웃었다. 그리고 유유히 사라져갔다.
어둠 속으로 떨어진 지웅은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몸이 짓눌려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지웅은 있는 힘껏 애를 쓰며 자신의 몸을 감고 있던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움직였다. 차츰 손가락 끝과 발끝이 자유로워졌고, 이윽고 온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팔다리를 휘둘러 짓누르고 있던 것에서 벗어났다. 선명한 시야와 함께 그의 손에 부드러운 천이 느껴졌다. 푹신한 침대가 자신의 등을 받치고, 도톰한 이불이 몸을 감싸고 있었다. 자신은 여전히 그 방 안에 있었다. 지웅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태오는 지웅이 누워있던 자리 바로 옆에 있었다. 그는 단정한 자세로 누워있다.
지웅은 다시 방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는 노트 한 권이 펼쳐져 있다. 그 옆에는 재만 남은 인센스 스틱의 흔적과 라이터가 있었다. 하필 지웅이 혼자 가게를 보고 있을 때 심향에 들른 안태오.
‘어디까지가 우연일까?’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그에겐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문을 찾아야만 했다. 다시 한번 방문을 열어봤지만, 역시나 열리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있던 태오가 신음을 내기 시작했다. 입술을 깨물고 힘을 주는 모습은 처음 봤을 때와 같았다. 손가락 끝을 파들거리는 모습까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태오가 허공으로 팔을 올렸고, 뿌리로 변한 이불이 그를 감쌌다. 이번에는 지웅이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다. 손을 잡아당기자 누워있던 태오가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지웅은 그의 다리에 엉겨 붙은 이불을 벗겨내려 애썼다.
“윤…지웅?”
“안태오! 정신이 들어?! 다리를 좀 움직여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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