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사용법

레미의 발가락은 다섯 개

by 리을

언젠가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옷장마다 문 열림 방지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혼자 사는 친구에게 그 장치가 왜 필요하냐 물었다.


"고양이 때문에 그래. 옷장을 죄다 열어놓거든."


당시 두 마리 고양이를 키우던 친구. 그 말에 잠시 멍했다. 홈이 파여있는 손잡이에, 동그란 발을 넣어서, 미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당겨서 연다고?! 믿을 수 없었지만, 티 내지 않았다. 나는 고양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모르니까.


그런 나의 의구심은 단 몇 시간 만에 깨졌다. 옷장 문 앞에서 뒷발로 일어난 고양이가 솜방망이처럼 작고 동그란 앞발을 주먹을 쥐듯 말았다. 그리고 말아쥔 발을 손잡이 홈에 넣고, 자신의 몸쪽으로 당겼다. 마치 사람이 옷장을 열듯이. 물론 그 행위는 미수로 끝났다. 문 열림 방지 장치가 굳건히 버티고 있었으니까. 아쉬운지 몇 번을 비슷한 자세로 시도하는 덕에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녀석의 발 사용법은 무궁무진할 수 있다는 것을.


도마뱀, 레미에게는 다섯 개의 발가락이 있다.

고양이보다 길고, 하나하나가 더 분명히 나뉘어 있다. 그래서 발과 발가락의 움직임이 훨씬 자유롭다. 길고 짧은 순서는 다르지만, 형체는 분명 사람의 손과 닮았다. 레미의 네 다리 모두에는 손처럼 유연히 움직일 수 있는 발이 달려 있다. 쫙 펼칠 수도, 오므릴 수도, 낱개로 자유롭게 구부리는 것도 무난히 가능하다.


벽에 찰싹! 다섯 개의 발가락이 선명하다.


덕분에 종종 재미있는 모습을 포착하게 된다.

발가락 하나하나를 천천히 움직이는 우아한 모습을 본다든지, 무언가를 움켜쥔 모양새를 마주할 때면-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전혀 다른 생명체에서 사람 같은 구석을 발견하면, 그게 또 어찌나 귀엽게 느껴지는지! 사진 찍기를 멈출 수가 없다.


인조 나무 위를 올라가 줄기를 꼭 붙들고 있는 손! 움켜쥔 손 모양이 귀엽다ㅎㅎ


또 발바닥에는 촘촘한 주름과 (잘 보이지는 않지만) 수많은 털이 있다고 한다. 덕분에 어디든 자유롭게 올라탈 수 있다. 운 좋게 요상한 거미에 쏘여야지만 될 수 있는 스파이더맨이 레미에겐 기본 능력인 게다. 작지만 주어진 세상을 온전히 누비는 그 모습이 신비롭다.


전혀 다르면서도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는 우리.

묘하게 닮았으면서도 또 전혀 다른 우리.


내일은 또 어떤 경이로운 자세를 마주하게 될까?

설렌다.


아기자기한 장식물에 매달린 레미



D+95


이름 : 레미

분류 : 파충류, 도마뱀

종 : 크레스티드 게코

모프 : 레드릴리

탄생일 : 25년 08월 13일

첫만남 : 25년 09월 07일

성별 : 모름

무게 : 아직 측정 불가

한 줄 메모 : 초보 엄마는 춥고 건조한 날씨에 이래저래 걱정이 많다. 부디 건강히 함께 겨울을 날 수 있기를..!


작성자 : 리을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