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몽을 꾸는 소년-3

짙은 어둠

by 리을

눈이 내리던 겨울밤, 류는 창고에서 장작을 한 아름 꺼냈다. 소복이 쌓여가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작은 오두막에는 그의 살림살이로 가득했다. 벽난로에 불을 지폈다. 검은 고양이가 난로 가까이 가장 따뜻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장작을 만들어 두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현실에서는 움직이는 것도 귀찮아하는 것과 달리, 이곳에서는 소일거리도 직접 하고 싶었다. 장작을 패거나 요리하거나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그런 것들을 말이다.


좀처럼 녹지 않는 손을 벽난로 가까이 뻗었다. 발아래 검은 고양이가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자그마한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집 앞에 앉아있던 고양이를 몇 번 안으로 들였더니, 이제는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검은색에 샛노란 눈동자를 지닌 녀석은 뻔뻔한 목소리로 먹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성가시긴 했지만 기분 나쁘진 않았다. 고양이와의 동거라니, 현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도 일어났다.


류는 폭신한 소파에 몸을 맡겼다. 멍하니 장작이 타오르는 벽난로를 바라봤다. 그 옆에는 노트가 한가득 꽂힌 낡은 책장이 서 있다. 그는 더 이상 새로운 풍경을 찾지 않았고, 자신이 정착한 마을을 그렸다. 그곳에 있는 절반이 넘는 노트가 모두 마을의 풍경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더는 노트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커다란 나무가 그려진 그림 한 장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마치 열쇠처럼 이곳에 올 때면 액자에 끼워 현관문 옆에 걸어두었고, 현실로 돌아갈 때는 주머니에 넣고 나갔다.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류는 겉옷을 걸치고 문으로 다가갔다. 늦은 밤에 오두막으로 찾아온 손님은 묘영이었다.


“밤늦게 웬일이야?”

"긴히… 할 말이 있어서."

"…안으로 들어와."


그는 차를 내어주기 위해 주방에 물을 올려두고 나왔다. 그녀는 소파에 앉지도 않고, 거실을 서성이고 있었다. 무어라 말하려는 듯하다가도, 초조한 듯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평소 밝고 여유가 있던 그녀에게서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그는 다그치지 않고 기다렸다.


“…사실이야?”

“응? 다시 말해줘.”

“네가 이곳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사실이냐고.”

“그렇지. 나는 다른 곳에서 왔잖아. 지금은 여기 사람이지만.”

“아니, 그런 것 말고. 여기가 네 현실이 아니잖아.”

“그게 무슨 말-”


그는 대답을 이어갈 수 없었다. 확신에 차 있는 그녀의 말투에 생각이 복잡해졌다.


‘현실? 설마 꿈이라고 말하고 있는 거야?’


“여기서 떠나. 네 자리로 돌아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내 자리는 여기야. 그리고 그건 내가 결정할 문제야.”


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앞에 섰다. 그녀는 바닥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주방에서 물이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어디서 무슨 말을 들은 거야? 일단… 여기 앉아봐. 차근차근 대화 좀 나누자. 응? 차를 좀 내올게.”

주방에 들어온 류는 주전자에 찻잎을 담고, 물을 따랐다.


‘꿈을 인지하는 사람이라니… 아니야, 속단하긴 일러.’


아직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녀가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바로 잡아주면 그만이었다. 거실로 나온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놓치고 말았다. 묘영은 책장에서 노트를 꺼내 벽난로 쪽으로 던지고 있었다. 불길 속에는 그가 십수 년에 걸쳐 만들었던 그림들이 타오르고 있었다.


“뭐 하는 짓이야?!”

“말을 안 듣는다면, 이렇게 보여줄 수밖에 없어.”


달려가 그녀의 두 팔을 붙잡았다. 그녀는 거세게 저항했고, 손에 들고 있던 노트를 바닥으로 던졌다.


“도대체 뭐냐고. 갑자기 와서 이상한 소리나 해대고! 이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아?”

“알아. 그러니까 태워버릴 거야. 네게 중요하다고 여기는 건, 실은 하나도 필요 없는 것들뿐이야.”

“그만하라고!!”


분명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웃었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 버둥거리는 그녀는 달랐다.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졌다. 생김새는 같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이 들었다.


“전부터 알고 있었어. 네가 우리와 다르다는 것. 그래도 괜찮았어. 함께 있는 게 행복하고 즐거웠으니까. 하지만 그게 너를 결국 좀 먹는 짓이었어. 진작부터 너를 쫓아내야 했어.”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내뱉던 그녀가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그녀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그녀는 현관문 옆에 걸린 그림으로 손을 뻗쳤다. 액자를 내리치고 안에 있던 그림을 붙들고 뛰쳐나갔다. 류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그녀를 필사적으로 쫓았다. 그녀는 낭떠러지가 있는 길 위에 섰다. 바람에 종이 한 장이 위태롭게 나부꼈다.


"제발… 그 그림 이리 내."


그에게 이곳에 올 수 있는 열쇠와도 같은 그림이었다. 내내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짓던 그녀가 웃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그 종이를 찢었고, 허공으로 날렸다. 그가 힘껏 손을 뻗어내 봤지만, 종이 조각이 되어버린 그림은 바람에 흩어져 버렸다. 허무한 표정으로 아래를 바라보자, 빛을 내는 커다란 나무가 보였다.


‘그래… 그림이야 다시 그리면 돼. 꿈에서 깨어나기 전에 그리기만 하면 되잖아. 괜찮아….’


그녀가 다급하게 돌아서려던 그를 난간 너머로 밀었다. 무방비하게 서 있던 그는 그대로 추락했다. 떨어지는 그를 바라보며 묘영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기괴하게 웃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 가, 류.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아래로 떨어지는 소름 돋는 감각에 도현이 눈을 떴다. 포근한 침대에 누워있는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숨은 거칠었고, 온몸이 땀에 젖어있었다. 그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눈을 다시 감았다. 그리고 꿈속의 커다란 나무를 떠올리려 했다.


‘매일 밤 드나들었던 곳이라고! 고작 그림 한 장 없다고 해서 갈 수 없을리가 없어. 제발, 제발, 제발!’


자신을 다독이며 몇 번이고 시도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냄새는커녕 나무의 모습도 제대로 떠올릴 수 없었다. 눈을 떴을 땐 어둠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절망에 빠진 그가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칠흑같이 짙은 어둠은 그의 울음소리마저 삼켰다.





[ 당신의 꿈을 여는 가게, 심향 ] 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이 글은 독립출판 소설 '당신의 꿈을 여는 가게, 심향'의 에피소드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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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골목에는 눈에 띄는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문을 열면 향긋한 냄새로 가득한 그곳은 인센스 스틱을 판매하는 가게, 심향입니다.

상냥한 알바생과 무뚝뚝한 사장이 있는 심향에는 조금 특별한 손님들이 다녀가곤 합니다.

사연은 다르지만 모두 기묘한 꿈 때문에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이죠.

그들은 편히 잠들고 싶어 이곳까지 오게 되었네요.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들의 바람과 달리 꿈은 더 복잡해져 갑니다.


그들은 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인센스 스틱을 권하는 알바생과 사장의 속내는 뭘까요?


밤마다 펼져지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꿈, 그곳에 담긴 의미를 따라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