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기

우리의 온도차

by 리을

날이 너무 추워져서 아랫지방도 영하가 되었다.

겨울이면 거실에 있는 찬 공기를 고차원적으로 즐겼다.

"집이 춥다, 너무 춥다"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난방 없이 잘 버티고 있는 모습에 뿌듯했다.

자본주의 맞춤형 유희랄까.


하지만 올겨울은 좀 달랐다.

발끝에 쌀랑한 기운이 느껴지면, 나도 모르게 초조해졌다.

종종걸음으로 아일랜드 식탁 위에 놓인 레미 집 앞에 섰다.

레미의 고향은 남태평양의 휴양지, 뉴칼레도니아다.

1년 내내 22~27도를 유지하는 곳에 비하면,

이곳의 겨울은- 우리 집 거실 온도는- 너무 가혹하다.


그냥 두기엔 너무 쌀쌀해서 파충류들이 사용한다는 열판,

일명 전기장판을 한쪽 벽에 설치해 뒀다.


간간이 보일러를 틀어서 온도를 올려줬지만,

(매번 남편은 레미가 호사를 누린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혹사다!)

공간이 넓어서 온도계의 숫자도 잘 오르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요즘따라 벽을 타는 모습을 잘 보지 못 했다.

바닥에 놓인 돌 위에나 어두운 은신처를 잘 이용했다.

왠지 기운 없어 보이는 그 움직임이 꼭 추워서 그런 것 같았다.


고민 고민 끝에 그나마 외풍이 덜 닿는 침실로 집을 이사했다.

비어 있던 협탁 위에 마치 제자리인 양 자리를 잡았다.


공간만 바꿨을 뿐인데, 왠지 더 깊은 곳으로 온 것 같다.


그래. 어쩌면 밝은 빛이 시도 때도 없이 켜지는 공간보다는,

아늑한 조명이 드문드문 켜지는 여기가 훨씬 나을지도 모르겠다.


잠들기 전 레미의 집 앞에 앉아 한참을 가만히 바라다봤다.

조용히 소리도 없이 움직이는 레미는,

집이 옮겨진 걸 아는지 모르는지 제 할 일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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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사이로 빼꼼히 보이는 레미


잠시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다,

어두운 은신처로 발걸음을 옮기는 레미.


20260106_215254(1).gif 은신처로 쏙 들어가는 레미.


요즘따라 저 은신처를 잘 이용한다.

조명도 시선도 닿지 않는 곳이라는 걸 알아차린 걸까.

추운게 아니라 사춘긴가;;

그럼 도마뱀 사춘기는 어떻게 보내는 거지..?


외향형 엄마는 오늘도 혼자서 네 작은 움직임에 호들갑을 떨고 있다.




D+123


이름 : 레미

분류 : 파충류, 도마뱀

종 : 크레스티드 게코

모프 : 레드릴리

탄생일 : 25년 08월 13일

첫만남 : 25년 09월 07일

성별 : 모름

무게 : 아직 측정 불가

한 줄 메모 : 아빠는 집이 하나도 안 춥대. 가끔은 같은 종이 맞는지 의심스러워...ㅋ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