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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을 Sep 12. 2022

마음의 흉터

작은 사건에서 상처 난 마음이 아물지 않고 오래도록 나를 붙잡고 있었다.

말 잘 듣는 착한 아이, 청소를 열심히 하는 아이, 수업 시간에 선생님과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 발표를 쑥스러워하지 않는 아이.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다. 나는 나를 드러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변해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렴풋하게 남아있는 기억을 따라가 볼수록 확실히 그랬다. 부러 나를 보이려 애쓰는 쪽이었다. 초등학생 때 썼던 일기에 대한 생각도 그러했다. 매일 써야 하는 일기가 내게는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특별한 일을 겪는 날이면, 빨리 일기를 쓰고 싶어 근질거리는 날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그 이유는 보여줄 대상이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아침마다 선생님 책상 위로 모두의 일기장을 쌓아뒀다. 일기장은 잠시 사라졌다가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다시 돌아왔다. 알록달록한 일기장을 찾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펼쳤다. 어제 쓴 일기 아래 어떤 말이 적혀 있는지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일종의 편지라고 느꼈던 것 같다. 하루 중 가장 특별했던 경험과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서 선생님께 보여주는 편지. 그리고 그 아래 달리는 선생님의 문구는 그에 대한 감상평이자 답장이었다. 아무런 답글 없이 맞춤법 체크와 사인만 있는 날이면 고민이 깊어졌다. 어떻게 하면 답장을 받아 볼 수 있을지, 지나간 하루를 낱낱이 들여다보며 신중히 소재를 골랐다. 운 좋게도 상냥한 선생님들을 만나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았다. 즐거웠던 일에 함께 기뻐하고, 속상했던 날을 위로하며 조언도 건네주셨다. 어쩐지 글로 만나는 선생님은 평상시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훨씬 따뜻하고 오래도록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라 일기 쓰는 일에 열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5학년이 되었다. 이마를 살짝 덮는 가지런한 앞머리, 단단한 핀으로 고정한 파마머리, 작은 눈 아래 시원한 이목구비를 가진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부모님보다 많아 보이는 나이의 선생님은 빈틈없이 단정한 모습이었다. 큰 키로 칠판 높은 곳에 이름을 적고 교실을 쓱 둘러보는 작은 눈은 무섭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커다랗고 호탕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무서움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오히려 그 목소리와 외모가 어우러져 멋있게 보였다. 호탕한 선생님과의 수업은 즐거웠다. 가르칠 때 의욕이 넘쳤던 선생님은 긴 팔다리로 손짓, 발짓, 몸짓을 아끼지 않았다. 거침없이 아이들에게 눈을 마주치고, 온몸으로 전달하려 애썼다. 장난기도 많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를 쓰며 우리를 놀리고, 딴짓하던 아이들을 혼내는 척하며 즐거운 이벤트를 만들기도 했다.


나는 활기찬 교실의 중심에 있는 선생님을 무척 좋아했다. 수업 중 아는 질문이 나온다면, 손을 들어 발표했다.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순간이 있다. 수학 시간, 선생님이 덧셈과 곱셈에서 0의 특징을 물었다. 고요한 교실 속에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덧셈은 0과 더한 수가 나오게 하고, 곱셈은 0이 나오게 합니다."


내가 듣기에도 낭랑한 목소리가 교실을 울렸고, 뿌듯하게 나를 바라보던 선생님의 얼굴에 행복함을 감출 수 없었다. 주저 없이 나를 드러냈고, 또 칭찬받았다. 열정적인 선생님의 수업에 대답하듯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 눈빛이 내게 오래 머물다 가는 게 좋았다. 선생님도 나를 좋아함이 분명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자리 배치를 새로 하는 날이었다. 당시에는 6명씩 한 조가 되어 책상을 붙이고, 조별로 수업 진행하는 일이 많았다. 바뀌는 자리도 6명이 조가 되는 배치였다. 학기가 시작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터라 친해진 친구들과 같은 조가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선생님이 임의로 짝을 지어준 조에는 내가 원했던 친구는 없었다. 같은 반이라도 별로 이야기도 해보지 않았던 다섯 명의 친구들과 같이 앉았다. 서먹하고 어쩐지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옆에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교실이 떠들썩해질수록 조용한 우리 조가 돋보였다. 불편한 어색함에 괜스레 필통만 뒤적였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활달한 내게 숫기 없는 친구들을 일부러 붙여주신 게 아닐까 싶다. 어수선한 분위기 사이로 선생님이 무언가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새로 만들어진 조에 이름을 짓고, 칠판에 붙일 조별 심볼을 그리고, 함께 쓰는 물건을 넣어둘 통을 꾸미는 재료였다. 설명을 들을 때 잠깐 조용했던 교실은 다시 떠들썩해졌다. 옆 조에서 즐겁게 웃는 동안에도, 우리 조는 여전히 조용했다. 자꾸만 가라앉는 마음을 애써 모르는 체하며 결국 내가 먼저 입을 뗐다. 부끄러운 건지, 의욕이 없는 건지 모를 정도로 조원들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곁눈질로 보니 다른 조는 벌써 그림에 색칠하고 있었다. 이름도 깜찍이조, 포도청조 저마다 개성 있고 멋져 보였다. 시간에 쫓겨 어렸을 적 동화에서나 들었을 법한 '파랑새'를 조 이름으로 정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동그랗고 하얀 종이에 파랑새를 그리기 시작했다. 초조할수록 모양은 이상해졌고, 파랑새가 도대체 어떻게 생긴 새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불분명한 연필 선 위로 다급하게 색연필이 얹었다. 파란색의 무언가가 하늘색 허공에 놓여있었다. 완성품은 누가 봐도 절망적이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던 내 뒤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둔탁한 물건이 바닥에 부딪히고 흩어지는 이상한 소리. 소리 났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색연필을 담아둔 필통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잔뜩 긴장한 아이들 사이로 우뚝 솟은 선생님의 얼굴은 무섭도록 차가웠다. 그 후 장면은 무성 영화처럼 소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필통을 던진 선생님이 어떤 말을 했는지, 다른 조는 어떻게 검사했는지, 어느새 다가온 선생님이 나에게 무어라 화를 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뒤통수에 번개처럼 스친 통증만은 또렷했다. 머리를 맞았다. 통증은 스치듯 빠르게 지나 사라졌다. 그런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얼른 체육복을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가야 하는데, 터져 나온 눈물은 자꾸만 흘러내렸다. 멈추려 할수록 오히려 더 큰 흐느낌이 되어 참지 못하고 엉엉 울어버렸다.


다음날, 조별 과제를 잘한 조가 상으로 초콜릿을 받았다. 어제 일이 신경 쓰였는지 선생님은 내게도 초콜릿을 주었다. 받는 순간에도 내가 무슨 잘못으로 맞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눈앞에 있는 선생님이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칠판에 붙일 심볼을 다음 시간까지 다시 그려야만 했다. 하얀 원안에 몇 번이고 파랑새를 그리고 지웠다. 종이가 얇아지도록 그리다 지우기를 반복했지만,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꼬깃해진 종이를 들고 아버지께 갔다. 별말 없이 그게 뭐 어렵냐며 파랑새 한 마리를 그려주셨다. 다행히 아버지가 그린 파랑새는 무사히 칠판에 얹혔고, 조별 과제는 끝이 났다. 교실은 다시 활기를 띠고, 호탕한 선생님은 열심히 수업을 진행했다. 아무 일 없었던 듯 흐르는 교실에서 맞춰 나도 잊어 버렸다. 그즈음 조퇴가 잦아졌다. 개근상을 놓친 적이 없던 내가 이례적으로 연달아 몇 번의 조퇴를 하면서 몸이 이상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출근하는 엄마와 발맞춰 등교할 때는 분명 멀쩡했다. 교실에 앉아 친구들과 수다를 떨 때도 괜찮았다. 그랬던 몸이 선생님을 보면 아팠다. 심한 날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오한이 들린 듯 떨리기도 하고,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아 참기도 했다. 참다못해 집으로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지곤 했다. 잊은 듯 지내는 머리와 다르게 몸은 여전히 무서움에 떨고 있었다.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로 살아온 나는 체벌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집에서 동생과의 다툼으로 회초리는 몇 번 맞아봤지만, 손찌검을 당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 내게 무척이나 좋아했던 선생님의 체벌은 가혹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아프다고 조퇴하고, 학교가 가기 싫다고 투정 부리며 표현했던 게 전부였다. 어린 내게 선생님은 결점이 존재할 수 없는 절대 선(善)이었으니까. 똑같은 일이 벌어질까 무서워하면서도, 눈 밖에 날까 봐 걱정했다. 시간이 흐르고 학년을 마칠 즘에는 선생님과 다시 농담도 할 정도로 사이가 좋아졌지만, 내 안에 무언가는 완전히 달라졌다. 나는 나를 드러내는 것을 포기했다. 아는 것을 되도록 감추고, 눈에 띄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참아야만 가능했던 일이 점점 자연스럽게 하고 싶지 않아졌다. 오히려 표현하는 일이 부끄러워지고, 무서워졌다. 외향성과 내향성 중에 선택하라면 의심의 여지 없이 내향적인 사람이라 여겼다. 모든 성격검사도 같은 말을 했다. 그런데 불가피한 상황에서 짐작과는 다른 내가 자꾸만 튀어나왔다.



새로운 사람에게 말 거는 게 어렵지 않다. 잘하지 못해도 그림을 그리는 게 재미있다. 모임을 만들고 떠들썩한 분위기가 좋다. 낯선 곳에서 곧잘 적응한다.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할 때 의욕적이다. 불편한 상황에서 감정을 감추는 것보다 드러내는 게 쉽다. 선 넘는 말은 참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든 되돌려주려 한다. 하고 싶은 말을 참다가 후회하는 것보다 뱉어내고 뒷수습을 하는 쪽이 감당할만하다. 그러니 오히려 작은 일에는 넘어갈 줄 아는- 참는 연습이 필요하다.  



태풍이 휘몰아치면 바다가 뒤집어진다. 말 그대로 바닷속 깊은 물과 얕은 물이 마구잡이로 섞인다는 뜻이다. 삶에서 예기치 못한 태풍이 찾아오면, 마음이라는 이름의 바다도 뒤집어진다. 아주 깊은 곳에 숨겨두고 잊어버렸던 무언가가 툭 튀어나와 버릴 만큼. 태풍이 한바탕 난리를 부리고 간 자리를 치우다 보면 그 잔해를 발견하기도 한다. 위의 문장은 그렇게 크고 작은 뒤집힘에 의해 찾아낸 것들이다. 낯설게 보이는 문장을 따라서 기억을 걷다 보면, 어린 시절 내 모습에 닿는다. 분명 내게 있던 것들이었다. 그 작은 사건에서 상처 난 마음이 아물지 않고 오래도록 나를 붙잡고 있었다. 행복한 기분이 들게 하는 일을 멀리하고, 해낼 수 있는 자신을 과소평가하게 했다. 나는 외향적인 사람에 훨씬 가깝다. 이 별것 아닌 것 같은 결론에 닿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제야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이 움직임이 편해졌다.


시간이 날 때면, 글을 쓰기 전에 마인드맵을 그려본다. 커다란 스케치북과 48색 크레파스, 24색 색연필을 가지런히 책상 위에 펼쳐두고. 마음에 드는 색을 골라 한 가운데 커다랗게 소재를 적는다. 이번 에피소드는 보라색 크레파스로 눌러쓴 '체벌'이라는 단어에서 시작됐다. 몇 가지 단어를 적어보다 5학년 때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막힘없이 뻗어가던 가지는 '파랑새'라는 단어에서 멈췄다. 잠시 '파랑새, 파랑새'하고 되뇌다 글씨 옆에 파랑새를 그리기 시작했다. 온몸이 온통 파란색에 부리만 빨간 파랑새는 생김새가 이상했다. 삐뚜름한 날개 모양에 웃음이 났다. 개의치 않고 구름과 하늘을 칠했다. 예쁜 구름이 떠 있는 맑은 날, 날개를 활짝 편 파랑새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앙증맞은 빨간 부리를 벌리고, 노래를 부르듯 신나게 말이다. 마음 한구석에 움츠려있던 또 다른 무언가가 기지개를 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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