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by 리을

2022년 6월 30일 목요일, 마지막 출근을 했다.


계획보다 훨씬 빨랐던 퇴사는 많은 걸 바꿔놓았다. 1년간 타고 다니던 차를 팔았고, 다시 뚜벅이로 돌아왔다. 버스를 타고 지나는 풍경에 멍때리는 일이 반가운 걸 보면, 운전하는 시간이 생각만큼 편하지는 않았나 보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냈다. 집 근처 도서관에는 딱딱한 열람실이 아니라 다양한 크기의 책상이 카페처럼 배치된 멋진 공간이 있었다. 눈이 떠지는 대로 아침을 먹고, 간단한 점심이나 간식을 챙겨 그곳으로 향했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 책이 빼곡한 서가 사이를 산책할 수 있는 그곳은 무더운 여름날 최고의 피서지였다. 요가를 배우기 시작했다. 몸이 뻐근할 때면 유튜브를 보며 했던 홈트레이닝 과는 차원이 달랐다. 땀은 비 오듯 떨어졌고, 온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찢어지는 느낌에 괴롭다가도 매트에 힘을 풀고 눕는 마지막 자세를 할 때면, 기름때가 가득한 구석구석을 씻어낸 것처럼 시원했다. 또 틈만 나면 물이 있는 곳에 갔다. 워터파크, 수영장, 강, 바다를 가리지 않고. 특히 바다에 자주 갔다. 서핑하거나 파라솔 하나를 빌려 해수욕을 즐겼다. 뙤약볕 아래 파라솔 밑에서의 낮잠은 뭐라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안락했다. 새까맣게 탄 얼굴, 팔과 다리는 여름날의 훈장처럼 남았다.


그리고 글을 썼다. 하루의 대부분을 글 쓰는 시간에 할애하려 애썼다. 시간만 있으면 술술 적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쉽게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매일 8시간씩 근무했었는데, 그 절반인 4시간을 쓰기도 어려웠다. 밥 먹고, 치우고, 잠시 한숨 돌리면 시간이 쏜살같이 지난 후였다. 퇴사 후 두 달 넘도록 그 미스터리 같은 일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새삼 책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글 쓰는 일은 즐거웠다. '몸에 담긴 기억'은 작년 여름부터 쓰기 시작했던 이야기이다. 30대가 되면서 잔병을 겪는 일이 많아졌다. 어쩔 수 없이 내 몸에 관심이 커졌고, 그를 글로 적어 보고 싶었다. 짤막한 에피소드로 가득 찰 것 같은 이야기는 어쩐지 쓸수록 깊고 무거워졌다. 까맣게 잊고 있던 일까지 멈출 줄 모르고 흘러나왔다. 기억하는 것에 자신이 없는 평소의 나와는 다르게 특정 장면을 떠올리는 것에는 거침이 없었다. 장소, 상황, 함께 했던 사람의 표정 그리고 느꼈던 감정까지 고스란히 떠올랐다. 떠오르는 기억을 집요하게 따라가고, 글로 옮겼다. 그러다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시선이 종이 위로 나타나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물들었던 생각, 마음속에 숨어 사는 인격, 언제나 뒤에서 응원해 줬던 사람들 그리고 애쓰며 살아온 내가 보였다.


몸에는 한 사람을 둘러싼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 몸매나 건강 상태와는 상관없이 한 사람의 역사가 그곳에서 흐르고 있다. 올여름 지독하게 나를 곱씹으며, 온몸으로 여름을 만끽했다. 몸에 담긴 기억을 하나씩 어루만지며 다뤘던 경험은 오래도록 내게 남아, 있는 그대로의 몸을 좋아하는 부적이 될 것이라 믿는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이 사소한 이야기들이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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