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호기롭게 건강검진을 신청했다. 직장인 건강검진 대상자이기도 했고, 혹독한 결과를 받은 재작년 검진을 설욕할 기회라 여겼다. 특히 나를 괴롭혔던 위내시경을 다시 해보기로 결심했다. 수면내시경의 특성상 두 달 전에 예약할 수 있었다. 의심 없이 긍정적이던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작아졌다. 혹시 이번에도 약을 먹어야 하는 거 아닐까? 안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또 뭘 바꿔야 하는 걸까? 만약에 더 안 좋아졌다면….
아니다. 아닐 거다. 여러모로 재작년과는 다르다. 당시는 위가 약하다는 걸 알지도 못했고, 속쓰림에 민감하지 못했다. 충분히 조심했고, 작은 징후도 살피며 지냈으니 나은 결과가 나오리라 믿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위내시경 이상소견 있으세요. 진료받고 가세요."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애썼다고 생각했는데, 마취가 깨자마자 듣는 이야기는 2년 전과 같았다. 멍하니 진료실에 앉았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의사 선생님, 2년 전과 같은 분이었다. 큰 키에 하늘색 수술복을 입은 의사는 오늘도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데자뷔, 아니 평행 세계에 온 것만 같다. 화면을 보던 의사 입에서 '위축 위염'이라는 말이 나왔다. 여전히 위염이 있었고, 한 달간의 약을 처방 받았다. 매 끼니 전후로 먹어야 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약을 들고 집으로 왔다. 도무지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이미 손 쓸 수 없게 나빠진 건 아닌지, 노력하는 게 의미가 있긴 한 건지 끊임없이 떠오르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냥 없었던 일로 하고 잊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서면 밥을 먹어야 했고, 끼니마다 약을 챙겨 먹으며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OO 과장은 밥을 너무 적게 먹네."
남의 속도 모르고 떠들어댔다. 먹는 걸 좋아하지만, 위가 안 좋아서 조심해서 먹고 있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제대로 듣지 않았나 보다. 입사하고 4개월 내내 같이 점심을 먹었던 부장은 내 밥공기에 남은 밥을 보고 또 같은 말을 했다. 전에 직원이 있을 때는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었는데 라는 말까지 보태며.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받아쳤을 텐데,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식후에 먹으려 챙겨둔 약봉지를 흔들며 대답을 대신했다. 위로의 말도 달갑지 않았다. 검사할 때마다 신경성 위염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시어머니, 금세 다시 좋아질 수 있을 거라 말하는 친구, 오늘은 속이 좀 편한지 묻는 남편의 말도 무겁기만 하다. 누군가의 입에 오르는 일 자체가 싫었다.
스케치북을 꺼내고, 크레파스를 펼쳤다. 자주색을 잡고 한 줄 그었다. 제자리에 넣고 그보다 짙은 남색으로 또 몇 줄 그었다. 다시 제자리에 넣었다. 망설이다 검은색 크레파스를 붙잡았다. 의미 없이 검은색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점점 세게, 크레파스가 뭉개질 정도로 강하게. 정신을 차려보니 하얀 스케치북이 온통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아닌 척할 수도 그렇다고 티 낼 수도 없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심란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멀리 있는 친정집에 왔다. 오랜만에 방문에 반갑다는 말을 어머니는 밥상으로 전한다. 밥상 가득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가득했다. 잡채, 불고기, 붉은 소고기뭇국에 나물 반찬까지.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보다 밥상을 볼 때면 '집'에 왔다는 게 실감이 됐다. 나를 떠올리며 분주했을 어머니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행복하면서도 맘껏 먹지 못하는 내 신세에 씁쓸함이 피었다. 안타깝지만 내겐 정해진 용량이 있었다. 두루두루 좋아하는 반찬을 맛보기 위해 한 젓가락씩 아끼듯 맛을 봤다. 먹으면서도 수만 가지 생각이 스쳤다.
'며칠 약 먹으며 조심했으니 한 번 정도는 마음대로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약 먹는 거 들키는 것도 싫으면서, 그걸 계속 반복하고 싶어서 그래? 안돼.'
'에이, 뭐 어때. 먹고 걸으면 되잖아.'
'퍽이나- 먹고 나면 눕고 싶을 거면서. 한두 번 겪었어?'
좋아하는 밥상을 마주하고도 소란스러운 마음에 헛웃음이 났다. 지겹다. 언제까지 반복될지 모르는 이 상황이 우습도록 지겨워졌다. 티 내지 말자. 어머니가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속이 좀 괜찮아?"
내 속도 모르고, 저런 말을 뱉는 남편. 안부를 물으며 자연스럽게 흐르던 시선이 내게로 꽂힌다. 남편이 내 속을 걱정하는 이유, 위내시경의 결과, 식사를 마치자마자 먹어야 하는 약까지- 결국 식사 자리에서 터놓을 수밖에 없었다. 미묘하게 공기가 바뀌었다. 말하지 않아도 부모님의 걱정하는 시선이 고스란히 닿는다. 한껏 밥상을 차리고, 많이 먹으라는 말을 미덕처럼 했던 어머니가 미안해할까 봐 무서워졌다. 최대한 아무것도 아닌 듯 담담하게 내뱉는데, 눈치 없는 남편이 옆에서 자꾸만 주목받는 말을 해댔다. 탓하고 싶은 마음에 눈을 흘겨보지만, 결국 어찌할 수 없는 내 문제였다. 덕분에 눈치 보지 않고 밥을 남겼다. 적당히 먹었는데, 속이 쓰렸다.
"인간의 몸은 진짜 신기해. 내가 절망하는 순간에도 새로운 세포가 태어나거든."
이 뜬금없어 보이는 이야기는 아버지의 입에서 시작됐다. 인체의 세포들은 매일 죽고, 새로운 세포로 태어난다. 하루에 약 3,300억 개의 세포가 죽어서 사라지고, 초당 380만 개가 교체되는 셈이다. 평균 80일이 흐르면 약 30조 개의 세포가 죽고 태어난다. 우리 몸이 대략 37조 개의 세포로 이뤄져 있으니, 수치상으론 몸을 이루는 세포 수만큼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석 달이 채 지나기 전에 새로운 몸을 갖게 되는 것과 다름없다. 지극히 과학적인 말에는 사실 아버지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있다는걸, 알고 있다.
삐쩍 마른 체형에 홀쭉하게 들어간 뺨, 얼굴을 다 덮을 정도로 커다란 알의 안경은, 쓰고 있는 남자를 짓누르는 것처럼 무겁게 보였다. 사진으로 남아 있는 젊은 시절 아버지의 모습이다. 오랫동안 힘겨운 시기를 보냈던 아버지는 마른 외모만큼 건강이 좋지 않았다. 잦은 술과 담배의 탓도 있었지만, 고생하며 살아온 세월이 몸 구석구석 아프게 쌓여 괴롭히는 것 같았다. B형 간염으로 사람들에게 차별받고, 만성 위염에 위경련으로 속쓰림과 위장약은 달고 살았다. 무릎 통증에 괴로워했으며, 의사에게 내일이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던 애연가였다. 목 디스크, 발목을 포함한 관절 통증, 환절기마다 찾아오는 비염과 축농증까지 수도 없이 많은 게 아버지를 괴롭혔다. 고통에 일그러진 아버지의 얼굴은 내게도 익숙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함께 일그러지던 얼굴은 반복되는 상황에 무뎌졌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 못된 마음을 자라나게 했다. 아픈 곳이 많은 아버지가 남들보다 엄살이 심해서 그런 게 아니냐는 그런 못된 마음이.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달라져 있었다. 아버지는 담배를 끊었다. 좋아하던 만큼 담배를 싫어했고, 담배 냄새를 혐오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슴푸레한 새벽에 침대에서 벗어나 동네 뒷동산을 올랐고, 재작년에는 걸어서로 제주도 한 바퀴를 도는 올레길 완주에 성공했다. 유별나다고 느낄 만큼 몸에 좋은 음식과 습관에 귀를 기울였고, 더는 위장약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B형 간염 항체가 생겼다. 잘못된 정보로 차별받았던 아버지는 기적이 일어난 듯 행복해했다. 내가 못된 마음을 갖고 무심하게 바라보는 동안, 아버지는 무던히도 하루하루를 쌓아온 것이다. '절망하는 순간에도 태어나는 세포'를 외면하지 않고 살아온 것이다.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세포 이야기를 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라고 끊임없이 다독이는 그 눈빛에 새까맣던 마음이 녹아내렸다. 이따금 찾아오는 잔병에 불안해질 때면, 아버지 말을 떠올린다. 포기를 모르고 매일 태어나는 수천억 개의 세포들과 그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아버지의 기적을 찬찬히 되짚어본다. 이 불안한 마음도 죽어 없어지고, 굳건하고 건강하게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