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뿌연 시야

여전히 나를 지탱하는 따뜻한 기억.

by 리을

직장을 구하기 위해 이력서를 쓰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이직이 잦았던 터라 이력서를 내는 일이 적지 않았음에도 처음 쓰는 것처럼 막막해지곤 한다. 그럴 때는 쓰는 일을 잠시 미뤄두고, 전에 썼던 이력서를 읽어본다.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어색한 증명사진을 지나 인적 사항을 훑어내리다 보면 경력란에 닿는다. 날짜-물결-날짜로 적힌 몇 줄 안에 짧게는 몇 달부터 길게는 4년의 세월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이력서에는 적히지 않는 공백이 존재한다. 몇 주부터 대여섯 달까지의 공백은 내가 '백수'로 보낸 시간이다. 연달아 일주일을 쉬는 건 꿈도 못 꾸고, 가끔 쓰는 연차로 은행이나 병원에 들르며,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는 직장인이던 내가 몹시도 그리워하는 그 시간은 이력서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경력직이 된 지금이야 늘 백수가 될 언젠가를 손꼽아 기다리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특히 대학교 마지막 학기가 끝났음에도 출근할 곳이 없었던 그때의 느낌은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했다. 구직활동에 성공한 사람들은 벌써 직장인이 되어 있었고, 나는 이력서를 냈던 어떤 회사에서도 연락받지 못했다. 대학생과 구직자의 모호한 경계선에 서 있던, 아니 경계선이라 믿었던 그해 12월.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내 모습이 낯설었다. 그래서 더 연말 분위기에 잔뜩 취했는지도 모르겠다. 콧잔등을 짓누르던 무거운 안경을 벗어 던지고 렌즈를 꼈고, 닥치는 대로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 반짝이는 거리로 나섰다. 흥겨운 캐럴과 들떠있는 사람들 속에서 추위도 잊은 채 연말을 보냈다. 그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사진 속 한쪽 눈이 유난히도 붉은색이었다는 것을.


이른 아침 방문 밖의 부산한 소리를 꾹 참고 이불 속에 뒹굴 수 있는 백수의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하루 중 가장 시간이 바쁘게 흐르는 아침 시간, 나는 깨어있었지만 도톰한 이불에 발을 비비며 몸을 뒤척였다. 몇 번의 뒤척임 끝에 가장 편안한 자세를 만들었고, 내 체온으로 딱 알맞게 데워진 이곳은 지상낙원이었다. 한 가지 거슬리는 게 있었다면 눈을 깜빡일 때마다 따갑게 느껴지는 것. 겨울이면 찾아오는 건조증이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포근한 이불 속에 안겨 다시 눈을 감았다.


얼마나 시간이 더 흘렀을까? 목에서도 느껴지는 따끔함에 결국 눈을 떴다. 눈꺼풀 안쪽이 바짝 말라서 마치 거친 모래들이 부딪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전날 밤에 널어 둔 수건 한 장은 한겨울의 건조함을 덜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협탁 위로 손을 뻗어 무거운 안경을 콧잔등에 얹고 방문을 열었다. 고요한 집안, 해는 이미 높이 떠 있었고 햇살이 가득 거실로 떨어지고 있었다. 따뜻해 보이는 햇살과 달리 뺨에는 차가운 공기가 와 닿았다. 얼른 다시 침대 위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재촉하듯 화장실로 들어가 아까부터 신경 쓰였던 눈가를 물로 훑어냈다. 그리고 물 한잔을 마시며 목을 축이는데 유난히 눈앞이 뿌옇게 보였다. 보나 마나 안경알 앞에 자국이 잔뜩 묻어 있어서 그랬으리라. 안경을 빼 들어 입고 있던 옷으로 대충 쓱 닦아냈다. 그런데 몇 번이고 닦아내도 시야가 달라지지 않았다. 안경을 눈앞에 두고 이리저리 들어 보는데, 맨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시야도 뿌옇게 보였다. 그제야 보이는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의 차이. 눈을 번갈아 감아 보며 비교하니 그 차이가 도드라졌다. 마치 하얀색 막이 오른쪽 눈에 착 달라붙어 앞을 흐리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무리 깜빡여도 사라지지 않는 그 정체 모를 막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화장실로 다시 돌려 커다란 거울에 비친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부스스한 머리에 기름져 보이는 이마 아래 있는 눈, 오른쪽 흰자위에 붉은 실핏줄이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안경을 빼고 거울에 바짝 붙어 오른쪽 눈을 관찰했다. 거미줄처럼 붉은 실핏줄이 엉켜 있었고, 좀 전보다 오른쪽 눈의 시야는 더 뿌옇게 보이는 듯했다. 눈병에 걸린 걸까? 렌즈를 너무 오랫동안 껴서 그런 걸까? 건조한 상태로 너무 내버려 둬서일까? 한참을 보고 반문해 봤지만,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려다 두려움만 커질 것 같아서 관뒀다.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으니, 우선은 다른 일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간단히 밥을 먹고 도서관에 가기 위해 가방을 꾸렸다. 도서관이 걸어서 5분 정도면 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그곳에 가면 별 힘을 들이지 않아도 자연스레 책상에 앉을 수 있었다. 종합자료실 한가운데 비치된 신문을 가볍게 넘겨보다 디지털 자료실로 들어섰다. 이력서를 넣을 회사를 찾아보려 구직 사이트를 바라보다 10분도 채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른쪽 눈의 상태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뿌연 시야도 모자라 눈 주변 근육이 빳빳하게 땅기는 느낌이 거북했다. 가까운 동네 안과를 찾았고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가벼운 눈병이겠지? 옮는 눈병이면 한동안 힘들 것 같은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기억 속 안과는 치과만큼 무서운 곳이었다. 어렸을 때 안경원이 아닌 안과에서 정기적으로 시력 검사를 받고 안경을 맞췄다. 당시는 분위기가 꽤 엄숙했다. 어두운 검사실에 앉아 알이 없는 안경테를 썼다. 의사 선생님 곁에는 안경알이 가득한 판이 있었고, 내가 쓴 안경테 위로 안경알이 올라왔다 내려갔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멀리 하얀 불이 들어와 있는 판 위의 숫자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저 눈 상태를 알기 위한 공간과 장치일 뿐인데, 이상할 정도로 압박감을 느꼈다. 틀린 숫자를 말하는 게 내 잘못처럼 느껴져 무섭기도 했다. 어떻게든 정답을 맞히려 미간에 힘을 잔뜩 주면서 노력했던 그 기억이 접수대로 가는 발걸음을 자꾸 더디게 만들었다.


진찰실로 들어서자 연세가 지긋하신 의사 선생님이 앉아계셨다. 불편한 오른쪽 눈의 증상을 말하며, 의사 선생님과 눈을 마주했다. 양쪽 눈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선생님은 말했다.


“포도막염입니다.”


처음 들어보는 병명이었다.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난 선생님은 책장에서 두꺼운 책 하나를 가져와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색이 누렇게 바랜 오래된 책은 절반 정도 넘어갔고, 손가락 하나가 빠르게 훑어 내려가다가 멈추어 섰다. 그리고 느닷없이 시작된 길고 긴 이야기. 간단한 눈병이고 안약만 받으면 될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그 말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아니 이 상황에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치료는 어렵지 않은데, 주사를 맞고-”


‘치료는 쉽구나. 눈에 주사를 맞는다는 건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머리가 짧게 알아들은 부분만을 반복해서 되뇌었다.


“근데 이게 재발할 우려가 커요. 그럴 때는 다른 곳에 이상이 있어서 생길 수 있는데, 류머티즘 관절염-”


‘관절염? 20대에…?’


“그렇게 자꾸 재발하다 보면 실명될 수도 있어요.”


‘실명. 실… 명…?’


포도막염도 받아들이지 못한 내게 실명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울렸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무지 현실 감각이 없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어떤 이유로 염증이 생기냐 물었다. 다른 병에서 뻗어 나온 증상일 수도 있고, 그저 스트레스나 누적된 피로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했다. 근래 콘택트렌즈를 자주 꼈는데 그것도 이유가 될 수 있냐 하는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그런 이유는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더는 물을 말이 없었다. 잠깐의 정적을 깨고, 선생님은 지금 치료할 것인지 다른 병원에 가볼 것인지 물었다. 나는 다른 병원에 가겠다고 했고, 소견서 한 장을 손에 들고 밖으로 나왔다.


멍하니 맑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평소와 다름없는데, 눈앞이 좀 뿌연 것 말고는 전혀 다를 게 없는 것만 같은데. 머릿속을 울리는 선생님의 말은 멈출 줄을 몰랐다. 잠시 고민하다 휴대폰을 꺼냈다. 근무 중이라 실례가 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목록 속 환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의 사진을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렸고, 이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조금 전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자꾸 재발하다 보면 실명할 수도 있대….”


그 말을 내뱉다 목구멍으로 뜨거운 게 울컥 올라왔다. 실감이 나지 않던 말들이 내 목소리로 변해 귓가를 맴돌고 눈앞이 물기로 흐려졌다. 담담하게 말하려 했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 상황만 전달하려 했는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알 수 없는 막막함, 무서움, 두려움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마치 깜깜한 우주에 혼자만 남겨진 것 같은 나는 부끄러움도 모르고 훌쩍였다.


- 무슨 그런 돌팔이 같은 의사가 다 있어?!


호통 소리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그제야 차들이 지나는 소리, 스쳐 가는 사람들,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이 느껴졌다. 창피함에 재빨리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전화기 너머로 쉼 없이 흘러나오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긴말의 핵심은 지금 바로 큰 병원의 진료 예약을 할 것, 예약 후 시간을 문자로 알려줄 것, 그리고 시간에 맞춰 병원에서 만나자는 것. 몇 군데 전화를 돌린 끝에 다행히 당일 진료가 가능한 대학병원을 찾을 수 있었다. 예약 시간을 문자로 보낸 후 병원으로 향했다.


난생처음 방문한 대학병원은 길을 잃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복잡했다. 모서리만 돌면 보인다는 안과를 찾지 못해 같은 길을 몇 번이나 걸었다. 어렵사리 도착한 진료실 앞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때에 아버지가 도착했다. 훌쩍이며 전화한 일이 민망해서 먼저 말을 꺼내기 쉽지 않았고, 평소 수다스럽던 아버지도 어쩐 일인지 말이 없었다. 무거운 침묵을 의미 없는 행동으로 견뎌내던 중, 내 이름이 들렸다. 조금 어두운 진료실 가운데 의사 선생님을 마주하고 앉았다. 잠시 의식해서 눈을 깜빡여 봤지만, 뿌옇게 흐려져 있던 오른쪽 시야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증상을 말하고 아까 받은 소견서를 내밀었다. 천천히 눈을 들여다보는 의사 선생님의 손길에 심장이 방망이질 쳤다.


“포도막염이 맞네요.”


두 번째 듣는 진단명. 의사 선생님은 우선 안약으로 치료해보자고 말했다. 먹는 약이나 주사는 경과를 지켜보고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같은 병명인데 아까와는 다른 가벼운 말투에 온도 차가 느껴졌다. 마무리하는 듯한 의사 선생님을 붙잡고 재발 우려가 있는지, 실명할 수도 있다는 게 사실인지 물었다. 물론 그런 위험이 있을 수도 있지만, 처음 발병한 나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했다. 지금은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회복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처방될 안약을 시간에 맞춰 넣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는 말을 듣고 나와 아버지는 진료실을 나왔다. 아버지는 곧바로 회사로 향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건네준 카드로 수납을 하고 집으로 향했다. 버스로 지나는 풍경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오전에 벌어진 모든 일이 꿈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건 오른쪽 시야밖에 없었다. 눈을 아무리 깜빡여도 지워지지 않는 희뿌연 시야, 현기증에 두 눈을 감았다.


두둑한 약봉지에는 하루에 두 번 넣는 안약, 세 시간마다 넣는 안약, 그리고 10분 차를 두고 넣는 안약과 자기 전에 넣는 안연고까지 있었다. 휴대폰에 일어나는 시간이 아닌 안약과 연고를 넣어야 하는 시간을 맞춘 알람이 빼곡했다. 그리고 방구석에 박혀있던 커다란 원적외선 치료기가 거실 한가운데 놓였다. 시간이 날 때마다 눈에 쬐라며 아버지가 옮겨다 놓은 것이었다. 효과가 의심스러웠지만 내비칠 수 없었다. 기계에 잠깐씩 눕는 것만으로 아버지의 불안감을 낮출 수 있다면야, 내 의구심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고, 가끔 하는 외출은 진료받기 위해 병원에 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한 해가 끝이 나고 어엿한 백수가 되었음에도 가족들은 취직에 관해 묻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를 하려는 나를 걱정했고, 눈을 감고 휴식하는 모습에 안도했다.


느지막이 둥지를 벗어나 날개를 펼쳐 보려 했던 나는 제대로 된 시도도 하기 전에 다시 둥지에 안겼다. 대학생도 취업준비생도 아닌 그저 아버지, 어머니의 딸로서 가장 가운데 보호받는 자리에 있었다. 다행히 오래 지나지 않아 뿌옇게 보이던 오른쪽 눈의 시야가 맑게 돌아왔고, 눈에 넣던 안약의 개수도 줄어들었다. 불편감이 없다면 더 이상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끝으로 병원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다시 둥지의 가장자리에 서서 날개를 펼쳤고, 그해 봄- 첫 직장에 출근했다.


대학 졸업과 첫 직장 사이의 공백에는 이력서에 적을 수 없는 당시의 감정들이 남아있다. 난생처음 어떤 역할도 없이 존재하는 내 모습은 초라해 보였다. 외면하고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 순간에 찾아온 포도막염은 내가 작고 무력한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낙인과 같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보잘것없어 보이는 내 모습을 책망 없이 보듬어준 부모님이 있었기에 그 시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직업이 없다고 자신을 낮추지 않아도, 아플땐 어린아이처럼 보살핌을 받아도, 괜찮다는 걸 그렇게 배웠다. 덕분에 ‘백수’라는 글자에 겁 없는 철새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때의 기억이 지금까지도 날 지탱해주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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