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피식자일 뿐이야.
10시 30분, 어김없이 회람이 돌았다. 사무실의 안쪽부터 이어지는 발걸음 소리가 내 책상 옆에서 멈췄다.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아니 알 수밖에 없다. 언제나처럼 왼손에는 작은 수첩, 오른손에는 펜을 들고 구석구석을 돌다가 이곳에 온 것이다. 나를 보며 숨 한 번 가다듬고 먼저 말을 내뱉겠지.
'과장님, 식사 어떻게 하시겠어요?'라고.
"과장님, 식사 어떻게 하시겠어요?"
머릿속 말과 오차 없이 내 앞에 서 있는 인간 회람, 이 회사의 막내 사원이다. 여러 회사에 다녀봤지만, 점심 메뉴를 결정하기 위해 사람이 일일이 돌아다니는 경우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나는 막내 연차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뭘 먹는지 정리한 걸 보고받는 꼴이니, 따지고 보면 좋은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편하기만 했다. 막내가 열 명 남짓한 직원들의 메뉴를 하나하나 묻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한 바퀴를 더 돌아야 하는 상황은 부지기수였다. 두세 바퀴를 돌고 메뉴가 정해져도 끝이 아니다. 코로나 때문에 배달해서 먹는 직원이 늘었고, 그 주문도 맡았다. 배달비를 포함하여 회사에서 지원하는 식대를 넘는 경우 인당 초과 비용을 정산하는 것도 당연히 막내의 일이다. 배달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면 연락을 취해 모든 사람에게 알려야 하는 것도, 먹고 난 플라스틱 잔해를 처리하는 것까지- 그렇게 막내의 일도 아닌 일은 끝도 없이 늘어만 갔다. 내 것도 아닌 그 시간이 아까웠다. 그 모든 게 시작되는 10시 30분, 소리뿐만 아니라 곁눈질로 걸어오는 모습도 보인다. 뻔히 보이면서도 질문을 건넬 때까지 일하는 척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는 건, 이 불편한 상황에 대한 소심한 반항이었다. 종종 눈도 마주치지 않고 대충 대답해버리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원인이 막내에게 있는 게 아님을 알면서도 그렇게 대했다. 짤막한 대화가 끝나고 나면 막내는 발걸음을 돌려 마지막 행선지로 향한다. 뒤돌아 대여섯 걸음 정도 떨어진 아주 가까운 곳에서 멈춘다.
"이사님, 식사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곳엔 사무실 안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포식자가 자리 잡고 있다. 늘 같은 질문을 던지는 막내는 한점 흐트러짐이 없다. 오히려 몇 걸음 떨어진 칸막이 뒤에 앉은 내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미간에 힘이 자꾸 들어가고, 아랫입술을 깨물게 된다.
"내가 그거 싫어하는 거 몰랐어? 네가 먹자고 그런 거야?"
카랑카랑한 소리가 고막을 쳤다. 할 수만 있다면 귀를 틀어막고 듣고 싶지 않았다. 구구절절 불편한 이유를 말했지만, 인간 회람이 불편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포식자가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것 같은 이 순간에 말이다.
회사라는 생태계에는 분명 서열이 존재한다. 알고 있음에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싫은 건, 사냥에 성공한 사자가 사냥감을 산채로 뜯는 장면을 굳이 보고 싶지 않은 것과 같다. 나도 모르게 포식자보다는 피식자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니까. 거북하다. 생태계 상위에 있는 이사는 포식자의 특징을 닮아있다. 먼저, 포식자는 자신의 소리를 숨기지 않는다. 휴대전화는 언제나 소리 모드로 되어있다. 종일 시 때 없이 울리는 카톡 알림과 벨 소리도 거슬리지만, 그는 서막에 불과하다. 업무와 개인적인 일의 경계 따윈 없는 무지막지한 소음이 이제 시작될 것이라는 서막. 아들의 이름, 나이, 무슨 초등학교에 몇 학년 몇 반인지, 남편의 이름, 지난주에 주문한 식탁을 반품하려는데 아직도 택배기사가 오지 않았다는 것까지- 알고 싶지 않은 수많은 정보가 귓속을 파고든다. 통화는 분명 두 사람이 하는 것이고, 나는 물리적으로 한 사람의 이야기밖에 들을 수 없다.
그런데 친절한 이사는 맥락을 파악할 수 있도록 길게 서술하며 여러 번 반복해서 설명한다. 마치 내가 알아듣기를 원하듯이. 퇴근길 버스에서 같은 벨 소리에 흠칫 놀라 뒤돌아볼 정도로 노이로제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사냥에 전력을 다한다. 사자는 사냥감의 덩치나 힘에 상관없이 언제나 사냥하는 순간에 집중한다. 무리 지어 달리는 초식동물을 사냥할 때면, 뒤처지는 녀석이나 새끼를 사냥감으로 삼는다. 그리고 약한 사냥감을 잡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이사의 타겟은 주로 막내였다. 업무부터 밥 먹는 메뉴를 정하는 일까지, 중요도에 상관없이 실수를 물고 늘어지며 완벽히 제압하는 순간까지 몰아세웠다. 이사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이 일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사냥을 위한 것인지는-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밖에 없었다.
종일 이사가 내뱉는 말에 허덕였다. 우습게도 나를 향한 말은 없었다. 혼자 떠들거나, 일하거나, 개인적인 용무를 보거나, 누군가를 꾸짖거나, 그 모두가 내게 거는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 말들은 흩어지지 않고 내게 밀려왔다. 파도처럼 철썩이며 끊임없이 밀려들었고, 어느새 턱 밑까지 차오른 말에 익사할 것만 같았다. 그때 구명줄처럼 잡은 것이 이어폰이었다. 내 책상 주변에는 ㄱ자 모양의 칸막이벽이 있었다. 그 덕분에 지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오른쪽으로 이어폰을 낄 수 있었다. 검은색의 작은 이어폰을 머리카락으로 숨겨 한 쪽 귀에 끼면,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제아무리 포식자가 으르렁거려도 볼륨을 살짝 올려 버리면 그만이었다. 잠깐씩 도피처로 사용하던 이어폰은 어느새 근무 시간에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 되었다. 기분에 따라 마음대로 선곡하는 일도 지겨운 사무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낙이었다.
여느 때와 별다른 것 없는 근무 시간, 오른쪽 귀가 이상했다. 울린다, 먹먹하다, 막힌 것 같다는 여러 가지 표현을 찾아봤지만, 당시 내 상태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들은 없었다. 왼쪽과 오른쪽의 차이가 또렷하게 느껴질 만큼 '이상했다'가 전부였다. 마치 양쪽 귀가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것 같았다. 오른쪽에 끼고 있던 이어폰을 빼내고 한참을 있어 보았지만 별다르지 않았다. 숨을 참고 침을 꼴깍이고 물을 천천히 마셔보아도 이상한 느낌은 여전했다. 소리를 듣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피곤해서 그럴 수 있으니,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막연한 확신과 함께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알람 소리에 일어나서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머리를 말리려 드라이기를 켜자 삽시간에 시끄러운 기계음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소음이 날뛰는 방안에서 멀쩡한 듯하던 귀는 드라이기를 끈 순간과 동시에 다시 이상해졌다. 가방을 꾸리고 현관문을 나서면서도 온 신경은 오른쪽 귀에 있었다. 조용한 공간을 걸을 때면 이상하다가도 버스 안처럼 소음이 많은 공간에 서면 괜찮은 듯했다. 출근길 내내 고막을 울리는 모든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예민하게 굴었다. 이상한 느낌의 실체를 끊임없이 확인하려 했다. 조용한 사무실에 앉자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시도 때도 없이 오른쪽 귀로 가는 신경 때문에 다른 일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이비인후과로 향했다. 바짝 날이 서 있는 미간을 주무르다 진료실로 들어갔다. 불편한 증상을 말하자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돌리며 질문했다. 근래 큰소리를 듣고 놀란 적이 있는지, 비행기를 탄 적이 있는지, 공연장이나 시끄러운 공간에 오래도록 있었는지를 물었지만, 어느 것도 해당하지 않았다. 고개를 젖혀 귀 안을 들여다보던 의사 선생님은 갑자기 고개를 눌러 숙이게끔 했다. 숙인 고개가 앉아있는 내 무릎 사이에 닿을 때까지 계속 누르며, 상태를 물었다. 자세를 몇 차례 바꾸며 집중해봤지만, 여전히 귀가 이상했다.
"소음성 난청이네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만 같다. 얼마나 안 좋은지, 치료는 되는 병인지, 완치는 되는지 수많은 말이 떠도는 머리와 다르게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오른쪽 귀가 천장을 바라보도록 고개가 돌려졌고, 기계음과 함께 차가운 액체가 귓속으로 쏟아졌다. 그리고 다시 기계음과 함께 액체가 몽땅 빠져나가 버렸다. 낯선 감각에 몸이 뻣뻣하게 굳어갔다. 액체는 몇 차례나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했고, 시끄러운 기계 소리가 고막을 계속해서 울렸다. 몸서리치지 않으려 가만히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조금 뒤 꾸덕한 질감의 무언가가 귓속에 그득 발렸다. 작은 솜뭉치로 구멍이 막히고, 돌려진 고개를 유지한 채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간호사는 대기 공간을 가로질러 구석진 복도로 데려갔다. 그곳에 놓인 작은 소파에 오른쪽 귀를 위로 향하도록 옆으로 뉘었다. 10분간 누워있다 일어나라는 말을 전하고 간호사는 사라졌다. 그렇게 한적한 복도에 홀로 놓였다. 눈앞에는 불이 꺼지고 문이 닫힌 다른 진료실이 보였다. 고요한 공간에서 듣도 보도 못한 치료에 놀란 머리가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 같이 오른쪽 귀에 넣었던 이어폰이 떠올랐다. 말에 지쳐 볼륨을 계속해서 올리고 유일한 낙으로 여겼던 이어폰이- 원인인 것만 같았다. 아니, 원인임이 분명했다. 분노가 치밀었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소리치고 싶었다. 내 잘못이냐고. 그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는데, 내 탓이 되는 거냐고. 왜 내가 이렇게 되어야만 하냐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유리문에 내 모습이 비쳤다. 여전히 오른쪽 귀를 막고 있는 하얀 솜, 긴장한 미간 아래로 지친 표정. 그리고 깜빡이며 마주 보는 눈이 말하고 있었다.
'너도 피식자일 뿐이야.'
막내를 보면서 나는 피식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피식자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아프고 나서야 나도 피식자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다.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직접적인 언어폭력의 피해자도 아니었고, 이어폰을 낀 것은 결국 내 선택이었다.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회사를 더 다녀야 하는 현실에 다스려야 하는 것은 내 마음이었다. 다행히 몇 번의 치료로 오른쪽 귀는 돌아왔다. 혹시 모르는 재발을 방지하러 퇴근할 때마다 병원에 들렀다. 낯선 치료가 조금씩 익숙해져 가듯 분노도 억울함도 차츰 식어갔다. 내 이런 상황을 알고 있을 리 없는 이사는 평소와 같았다. 이어폰 없이 들려도 안 들리는 척, 모두 알고 있음에도 처음 듣는 척, 한 공간에서 같이 숨 쉬는 것도 싫지만 그렇지 않은 척했다. 결국 회사를 퇴사할 때까지 말하지 않았다. 당신의 그 무례한 말들 때문에 괴롭고 아팠다고 내뱉지 않았다. 그 목소리를 듣지 않는 곳으로 떠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