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별 이유 없이 케이스를 벗겼다 씌우기를 반복하다 뒷면을 보고는 멈췄다. 본체 뒤에는 손바닥 반만 한 직사각형 모양의 금속판이 붙어있었다. 늘 케이스를 씌우고 있던 덕에 보이지 않았던 판은 차량용 자석 거치대에 고정하는 용도로 붙여둔 것이었다. 지금은 까먹고 있을 정도로 쓰지 않는 용도가 되어버렸지만. 당장 떼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얇은 판의 구석을 잡고 힘껏 당겼다. 힘을 주는 대로 쉽게 우그러지는 가장자리에 반해 가운데 부분은 밀착되어 꿈쩍하지 않았다. 지나고 난 후의 생각이지만, 거기서 멈췄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고요한 도서관은 쓸데없는 일을 자꾸만 벌이고 싶어지는 장소였다. 그때부터 남몰래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네 귀퉁이를 차례로 우그러트렸다. 살살 돌려가며 가운데 붙은 스티커의 접착 부분이 약한 곳을 찾아냈다. 그 부분을 잡고 힘껏 당겨 봤지만 만만치 않았다. 순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 먼 길을 와버렸다. 다시 한번 이쪽저쪽을 돌아가며 힘을 주는데, 금속판 중앙 부분에 이상한 자국이 보였다. 건들면 붉게 번지는 것은 틀림없이 액체였다. 손가락 하나하나를 살펴보자 드문드문 붉은 자국이 묻어있었다. 손가락끼리 비비며 닦아보자, 오른쪽 엄지손가락에서 붉고 작은 방울들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는 게 보였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따끔함 하나 없이 새어 나오는 방울이 피라니- 혹시나 하는 맘에 다시 검지로 쓸어 보니 엄지손가락을 가로질러 작은 방울들이 다시 맺혔다. 통증을 느끼기도 전에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임무에 실패한 나는 허둥대며 일어섰다. 누가 볼세라 피가 나는 엄지를 손바닥 안쪽으로 가린 채, 서두르지 않는 척을 하며 화장실 쪽으로 걸었다.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황급히 피를 닦았다. 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았고 금세 멎었다. 따끔거리는 통증이 그제야 느껴졌다. 세면대에서 손과 휴대폰에 묻어있는 핏자국을 지우다 조금 전까지의 행동이 떠올랐다. 누가 볼세라 움켜쥔 손가락…. 시선이 반대편 왼쪽 엄지손가락으로 향했다. 희미하게 새겨진 포물선이 지문을 어그러트렸고, 검지로 쓸어내리면 오돌토돌한 홈이 느껴졌다. 어린 시절에 생긴 흉터였다.
몸에 자잘한 흉터들이 많다. 분명 사연 없이 생기는 흉터는 없을 테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에 반해 아주 선명하게 기억하는 흉터도 있다. 바로 이 왼손 엄지에 긴 포물선처럼 생긴 흉터처럼. 그 흉터의 시작은 열 살 소녀의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티브이에서 한 조각가가 나왔다. 독특하게도 나무젓가락에 조각하는 사람이었다.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나무젓가락에 칼을 대고 조금씩 깎아내더니 작품으로 변했다. 화면 가득 담아내어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게 표현된 그 작품에 매료되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는 전문 조각가가 아니었다. 어쩌면 평범한 회사원 아저씨가, 집에 굴러다니고 있는 나무젓가락으로 멋진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나도 연습만 한다면 저렇게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확신이 생겼다. 주방 서랍에서 손쉽게 나무젓가락을 구할 수 있었다. 문제는 아저씨가 사용하고 있던 조각칼이었다. 이곳저곳을 열어보다 티브이 아래 서랍장까지 닿았다. 한 칸은 상비약, 다른 칸에는 멀티탭과 같은 잡다한 물품들 그리고 마지막 칸에는 공구가 있었다. 망치, 멍키 스패너, 니퍼 사이로 커터칼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랗고 뚱뚱한 몸체에 칼날이 손가락 두 마디도 넘는 묵직한 커터칼이.
겁도 없이 커터칼을 방으로 가져왔다. 칼과 나무젓가락을 쥐고 먼저 바깥으로 연필 깎아내듯 밀어냈다. 크기에 비해 칼날이 잘 밀리지 않았다. 연필 위에서 부드럽게 밀리는 문구용 칼과 다르게 한번 박아 넣으면 꼼짝하지 않았다. 양손에 온 힘을 주면 그제야 '툭'하고 투박하게 파편이 날아갔다.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칼날을 최대한 눕혀 나무에 얕게 박고 천천히 힘을 주면 스르륵 기분 좋게 밀려 나간다는 걸 알아차렸다. 다시 새 젓가락을 꺼내 조금씩 다듬어 나갔다. 다듬어진 부분에 모양을 넣기 시작했다. 작은 홈을 새기려 칼날을 세우고 젓가락에 찔러넣었다 뺐다 반복했다. 그런데 또 칼날이 나뭇결에 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왼손으로 젓가락을 단단히 잡고 오른손을 힘껏 당기자 툭 하고 파편이 날아갔다. 그리고 멈추지 못한 칼날이 왼손 엄지로 향했다. 알아차렸을 땐 이미 모든 일이 벌어진 후였다. 엄지손가락에 깊은 자국이 남았고, 찌릿한 통증과 함께 핏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화장실로 달려가 휴지로 엄지손가락을 감쌌다. 심장이 엄지손가락에 달린 듯이 뛰고 있었다. 통증은 점점 강해졌다. 그런데 그 아픔을 웃돌아 다른 감정이 피어났다. 어른들이 알게 되어 혼날 것 같은 두려움이. 누가 볼세라, 몰래 혼자 방으로 들어와 휴지로 둘둘 감은 엄지손가락을 꽉 붙들었다. 피가 멎기를 기도하듯 바랐다. 타들어 가는 내 속도 모르고, 붉은 흔적이 자꾸만 휴지를 뚫고 삐져나왔다. 몇 번이고 휴지를 덧대었던 장면에서 내 기억은 멈췄다. 결국 어른에게 들켜 붕대를 감았는지, 아니면 끝끝내 혼자 피가 멎을 때까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통증보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전전긍긍했던 그 마음은 여전히 선명했다.
길을 걷다 가끔 넘어지는 사람을 볼 때가 있다. 무릎이 까질 정도로 세게 넘어진 사람은 아픈 기색도 없이 벌떡 일어나 다시 길을 걷는다. 대다수는 알고 있다.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부끄러움에 괜찮은 척 걷고 있다는 것을. 실수가 상처가 될 수 있고, 상처가 아프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상처가 다른 이에게 비웃음을 살 수 있는 약점이 될 수 있다고 여긴다. 누구보다도 내가 그렇게 반응하고 있었다. '누가 볼세라' 상처를 숨기는 건, 생각이 미치기도 전에 반응하는 몸에 밴 습관이었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열 살에 손가락을 부여잡고 걱정하던 나는 이십 년이 흐른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픔을 드러내는 것보다 숨기는 것에 훨씬 익숙했다. 참을성을 강조하는 우리네 사회가 길러온 습관인 것 같다. 한 발짝 떨어져서 스스로 묻기 시작했다. 손가락의 상처가 아닌 다른 상처는 어떻게 대해왔는지, 몸의 상처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그리 대했던 건 아닌지. 혹시나 다른 사람의 상처를 힐난 거리로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닌지- 조그만 상처에서 시작된 생각은 멈출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