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 담배 냄새

설명할 필요 없이 친구가 되고, 웃을 수 있었던 그 친구와의 순간

by 리을

감각만큼 선명하면서도 모순적인 게 없다.


같은 상황이라도 저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어 주관적이지만, 개개인에겐 지나치게 강렬해서 객관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 사실은 타인과 비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는 어린 시절 추어탕을 유독 싫어했었다. 걸쭉한 질감과 탁한 색깔 그리고 알싸한 냄새가 나는 국은 첫인상부터 나빴다. 마지못해 한입 먹었을 때 목을 간질이는 작은 건더기들의 불쾌한 느낌에 몇 번이고 침을 삼키며 억지로 넘겼다. 그리고 작은 건더기의 정체가 미꾸라지의 잔해라는 사실에 두 번 다시 추어탕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한 숟갈 추어탕을 맛본 적이 있다. 알싸한 냄새의 탁한 국은 기억 속의 맛과 달랐다. 시원하고 개운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추어탕을 피한다. 입에서 느껴지는 맛보다 기억 속의 불편한 느낌이 훨씬 강렬해서 시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처럼 감각으로 느낀 감정은 바뀌기도 하고, 논리 없이 바뀌지 않기도 한다. 그 점은 후각도 다르지 않다. 현실에서 맡는 냄새와 머릿속으로 기억하는 냄새 사이의 오묘한 괴리감은 어쩌면 미각보다도 클지도 모른다. 기억 속 냄새를 떠올리다 보면 오롯이 냄새만 떠올리는 경우는 드물다. 냄새의 원인, 상황, 감정 그리고 함께 있던 사람들이 버무려진 하나의 장면이 떠오른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좋아하는 냄새와 싫어하는 냄새의 가름이 불분명해지는 것들도 생겨난다. 비흡연자인 내게 담배 냄새가 그러하다. 코를 뚫고 들어오는 담배 냄새가 싫다가도 문득 회상에 잠길 때면 전혀 다른 감정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담배를 피우셨다. 예닐곱 살쯤의 어린 내가 아버지 품에서 나는 담배 냄새가 싫다며 안기기를 거부했을 때, 충격을 받은 아버지가 그 길로 담배를 끊었다는 이야기는 집안의 전설로 남아있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손끝에서 하늘로 뻗어나가는 뭉게구름, 만화책 속 멋지고 시니컬한 캐릭터들의 필수 소품이었던 담배는 그 이미지만큼 냄새가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묵직하고 매캐한 냄새는 오히려 구수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맑고 파란 하늘로 올라가다 사라지는 하얀 연기의 모습에 가끔 넋을 놓고 바라보기도 했다. 학원 건물의 옥상 구석진 곳, 가끔 담배 피는 친구 옆자리를 지켰던 열다섯 살의 나는 분명 담배를 싫어하지 않았다.


한껏 쪼그려 피는 친구의 모습이 우습다가도 그 친구의 손에 들린 담배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보였다. 임효정(가명), 중학생 때 학원에서 만난 친구이다. 많은 만남이 그렇듯 효정이와도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어떻게 친해졌어?'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들었던 사이였다. 다른 친구들에게 여러 차례 질문을 받을 만큼 효정이와 나는 아주 달랐다. 또렷한 이목구비에 화장기 있는 얼굴, 세련된 커트 머리, 어른스러워 보이는 사복 차림의 효정이는 중학생처럼 보이지 않았다. 학원에 들고 다니던 가방은 가죽으로 된 진한 밤색의 숄더백이었다. 커다란 백팩을 메고 다니는 나와는 겉모습부터가 달랐다. 가끔은 한쪽 손에 붕대를 감고 있기도 했고, 학원을 연달아 빠지는 날도 있었다. 그런 효정이를 두고 혀를 차는 선생님도 있었고, 또 그런 선생님을 향해 효정이는 시원하게 욕을 내뱉기도 했다. 그랬다, 효정이는 욕도 잘했다.


소위 '불량 학생'이라 불렸지만, 내게는 별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학원에 오는 날이면 붕대 감은 손으로 필기했고, 쉬는 시간이면 함께 수다를 떨었다. 마음에 드는 선생님과는 친하게 장난을 치기도 하고, 고민을 상담하기도 했다. 시험 기간이면 학원에 남아서 공부하는 내 옆에 앉아 가끔 수학 문제를 풀곤 했다. 주말에 약속을 잡아서 함께 시내를 거닐고, 맛있는 걸 먹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 비바람을 맞고 쫄딱 젖은 채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었다. 물론, 색다른 경험을 하기도 했다. 할머니 혼자 장사를 하는 구멍가게에 가서 담배 사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선생님 눈을 피해 옥상 구석자리를 찾아 함께 쪼그려 앉기도 했다. 담배 피는 여러 순간을 함께 했지만, 효정이는 내게 한 번도 담배를 권한 적은 없었다. 나 또한 한 개비 달라는 말을 건넨 적이 없었다. 우리는 그랬다. 외모도, 말하는 방식도, 주변에 있는 친구들도, 담배를 대하는 자세도, 모두 달랐지만, 서로를 존중했다. 함께 있지 않은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다른 자세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비난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그대로 보고 함께 있는 순간을 나눴다. 오히려 오묘한 간극에서 오는 차이를 똑바로 바라보며 즐겼다.


아쉽게도 어떻게 연락이 뜸해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친구. 이십여 년이 지나 온갖 색안경과 선입관이 가득한 세상에서 문득 담배 냄새를 맡을 때면 그리워진다. 설명할 필요도 없이 친구가 되고, 곁에서 웃을 수 있었던 그 친구와의 순간이…. 그래서 지금은 다른 이유로 지독하게 싫어진 담배 냄새를 마음껏 싫어할 수가 없다. 내 머릿속에 선명히 남은 그때의 그 담배 냄새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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