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스타킹 위 프릴이 달린 군청색의 원피스, 색색의 머리 방울로 긴 머리를 공들여 땋은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 먼지 쌓인 앨범에서 볼 수 있는 어린 시절 내 모습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옷이나 머리모양이 겹치는 것 하나 없다. 양쪽으로 묶어 동그랗게 말아올려 고정한 머리, 눈꼬리가 당겨지도록 잔머리 한 올 없이 이마를 드러내 예쁜 방울로 묶은 머리, 양 갈래로 땋은 머리를 하나로 묶어 내린 머리 그리고 색색의 원피스에 맞춰 신은 작은 구두들까지 신기하게 보인다. 어머니는 당시 가사, 육아, 일 모두 고되게 하고 있었음에도 나를 꾸미는 일에는 열심이었다는 사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머리 길이가 허리춤까지 왔던 것도 어렴풋이 기억한다. 아마 당시의 나도 예쁘게 꾸미는 게 좋아서 귀찮다는 생각도 없이, 어머니의 손길을 받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분명 그대로만 자랐다면 치마에 공주 옷을 좋아하는 초등학생으로 자랐을 것 같은데 그러지 않았다. 우스갯소리로 내 외모의 전성기가 유치원 때라고 말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매일 했던 꾸미기에 엄마가 먼저 지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더 이상 원하지 않았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입학을 기점으로 치마 입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유난히 '분홍색'을 싫어했다. 스스럼없이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분홍색 머리 방울을 하고 분홍색 신발을 신던 내가 변한 것도 그때쯤인 것 같다. 입는 옷은 물론이고 내 것이 되는 모든 물건에 분홍색이 들어가는 게 싫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은 겨울 이불을 새로 바꾸는 날이었다. 솜이불을 극세사 이불로 바꾸려다가 사달이 난 것이다. 극세사는 재질의 특성상인지 쨍한 색감의 원단이 대부분이었는데, 어머니가 사오신 이불도 촌스러워 보이는 짙은 하늘색과 자줏빛에 가까운 분홍색 이불이었다. 아마도 별 뜻 없이 다른 색의 이불을 사 온 어머니는 난데없이 벌어진 남매의 혈투에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분홍색이 여성스러운 색이라고 생각하는 남동생은 하늘색을 택했다. 성별에 상관없이 그저 분홍색이 미치도록 싫은 나도 하늘색을 포기할 수 없었다. 커다란 분홍색이 침대를 뒤덮은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렸다. 책가방, 공책, 하물며 칫솔 손잡이에 들어가는 자그마한 부분에도 '타도 분홍색' 정신을 굽힐 수 없었다. 어깨를 살짝 넘는 머리카락을 하나로 질끈 묶어 넘기고, 무난한 티셔츠에 바지를 입은 학생. 전성기가 지난 나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큰 변화 없이 6년간 이어졌고, 머리 길이가 귀밑 3센티미터를 넘길 수 없는 중학생이 되었다. 똑같은 옷을 입고 개성 따위는 철저히 무시하는 교실의 풍경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구석도 있었다. 외모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합리적인 이유가 되어준다랄까? 치마를 입는 게 불편했지만, 매일 아침 고민 없이 입기만 하면 되는 옷은 감당할만했다. 그러던 내가 2학년쯤에 커트 머리를 해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허리춤까지 길러 본 적은 있지만 짧게 잘라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3센티보다 짧은 커트 머리는 교칙 위반도 아니었다.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머리 스타일에 도전하고 싶으면서도 왠지 용기는 나지 않았다. 한참을 혼자서 고민하다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심각하게 고민한 시간이 머쓱할 정도로 친구는 단박에 잘 어울릴 것 같다며 해보라는 말을 했다. 그 길로 동네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짧게 잘랐고, 고등학교 졸업하는 순간까지 커트 머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짧은 머리가 주는 시원함과 가벼움이 좋았고, 무엇보다도 크게 손질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았다. 단발머리는 조금이라도 잘못 말리면 끝이 삐죽 뻗어나가 종일 신경이 쓰였다. 그와 다르게 커트 머리는 대충 바람에 말려 삐치더라도 반경이 짧아서 거슬리지 않았다. 제한된 환경 안에서 어떻게든 예쁘게 꾸미려는 친구들과는 달랐다. 취향도 마찬가지였다. 그 무렵 나는 남자 옷, 신발이 멋있어 보였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옷들이 걸려있는 가게보다도 펑퍼짐한 후드티와 투박한 맨투맨이 가득한 가게가 좋았다. 운동화를 사러 매장에 갔을 때도 밝고 화사한 톤의 신발보다도 어둡고 채도가 낮은 색감이 섞인 운동화가 마음에 들었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레 남성용 신발이 전시된 곳에 멈추어 섰고, 그곳에서 신발을 골랐다. 그래서 스무 살이 되도록 발 크기가 245~250인 줄로만 알았다. 실제 사이즈와 10mm 이상 차이가 났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취향과 다른 신발을 매일 신고 다는 것보다 마음에 드는 헐렁한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것을 택했다. 작은 키에 5:5 가르마를 한 커트 머리는 날씨에 따라 멋대로 뻗쳐있고, 펑퍼짐한 후드티 아래 헐렁한 신발을 신은 학생. 외모에 1도 관심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나름의 취향으로 중무장한 청소년이었다.
커트 머리 여고생이 스무 살이 되었다. 스무 살이 되면 저절로 살이 빠지고 예뻐진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물론- 살을 뺄 생각도, 예뻐지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스무 살이라는 기점으로 모습이 바뀌는 친구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쇼핑을 즐기고, 화장에 관심을 두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어색했다. 나는 여전히 분홍색이 달갑지 않았고, 투박한 옷과 어두운색의 신발이 좋은 스무 살일 뿐인데- 주변의 친구들은 변해갔다. 마치 변하지 않는 내가 부자연스럽다는 듯이. 그 묘한 이질감은 대학교라는 문턱을 넘어서며 늘어만 갔다. 남성 운동화를 골라도 아무 말 하지 않으시던 부모님의 태도가 바뀌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기 좋다던 말이 사라지고, 그렇게 먹으니 살이 안 빠진다는 말이 자리를 잡았다. 내가 입는 옷을 보다 못한 어머니는 시간을 내어 옷을 사 오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자기관리의 평가 기준이 외모가 되었고, 몸무게가 인생 최고점을 찍고 있는 나는 누가 봐도 실패한 사람이었다. 머리로는 부모님이 걱정하는 마음에 하는 말이란걸 알면서도 곱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관심도 가지 않는 일에 굳이 시간과 돈을 쓰면서까지 할애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내게는 지독한 잔소리일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들까지 입을 대기 시작했다.
"살 빼고 예쁜 옷 입고 싶지 않아? 제일 예쁠 때를 그렇게 보내도 되겠어?"
대학교 동아리 선배가 내뱉은 말이었다. 어차피 제멋대로인 성격에 내게 호감이 없는 사람이었다는걸 알았기에 충격은 없었다. 자기가 만든 기준에서 미달로 보이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으니까, 이성적으로는 이해했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외모를 평가하고, 함부로 말하는 행위에 화가 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나는 내 기준에 인성 미달인 그 선배와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것도 싫었지만, 예의를 지키며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그 선배가 널 위해서 그런 말 하는 거야."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친구에게 열변을 토하며 선배를 욕한 내게 돌아온 말이었다. 동아리에서 가장 마음을 터놓고 말하던 친구였다. 그 선배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그동안 어떤 취급을 당해왔는지를 아는 친구의 말은 멈출 줄 모르고 가슴 속 깊이 파고들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거야?'
'그런 배려 없는 말을 들어야 할 만큼 내가 잘못 살고 있다고 말하는 거야?'
자존심이 상해서 차마 뱉어낼 수 없는 말들이 뒤죽박죽 떠올랐다. 더는 얼굴을 마주할 수 없어 출발하는 버스에 도망치듯 올라탔다.
살을 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팔팔한 이십 대에 건강해지겠다는 목표는 아니었고, 누군가의 말 때문에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사춘기와도 같은 방황을 하고, 휴학하면서 그렇게 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어쩌면 신경 쓰지 않는다며 넘겼던 내 외모에 관한 말들이 사라지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 짓누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디선가 날아와 불쑥 자라나고 들판을 가득 메우고 마는 잡초처럼 변덕스러운 마음이 일상에 번졌다. 집에서 4km 떨어진 아르바이트 장소까지 걸어서 출근하기 시작했다. 날이 좋고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돌아오는 길도 걸었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던 커피믹스를 마시지 않았다. 점심은 다이어트 시리얼 한 줌으로 때웠고, 먹고 싶은 음식을 참으려 애썼다. 좋아하는 음식을 맛보면 적당히 먹는 게 어려웠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약속을 잡지 않으려 했다. 머리를 기르고, 렌즈를 끼고, 화장하는 법을 배웠다. 밀린 숙제를 하듯이 이미 능숙하게 자신을 꾸미는 친구들에게 가서 묻고 따라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고 몸무게 10kg을 감량했다. 가지런한 앞머리에 긴 생머리, 아이라인까지 그린 뽀얀 얼굴, 분홍색 블라우스 밑에 짧은 치마를 입고 있는 모습이 거울에 보였다. 내 변화에 주변도 달라졌다. 잔소리하시던 아버지는 더는 살을 빼지 말라며 식탁 위 반찬을 내 앞으로 밀어주셨다. 아버지를 말리면서도 조곤조곤한 말투로 타이르던 어머니도 더 이상 그 주제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친구들은 쇼핑과 화장품, 다이어트에 관한 이야기들을 터놓기 시작했고,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했다. 살을 뺀 노하우를 물으며 부럽다는 말을 건넸다. 나를 괴롭히던 말과 시선은 그렇게 사라져갔다.
기준 '미달'에 관한 사람들의 시선은 냉정했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나 상처보다도 눈에 보이는 모습을 바로 잡는 게 중요하다 느끼는 듯했다. 잘못되었다 말을 건네면서 정의감을 챙기는 것 같기도 했다. 아주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많은 사람이 변화된 내 모습에 자신이 한몫했다고 뿌듯해할지도 모르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들여 만든 그 모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마를 간질이는 앞머리를 참지 못했고, 미용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힘들어 다시 염색하는 건 꿈도 꾸지 않았다. 애당초 흥미 없는 쇼핑을 꾸준히 하는 게 힘들었다. 누군가가 몸에 딱 맞는 옷을 가져다주면 좋겠다는 상상을 몇 번이고 할 정도로 귀찮기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먹는 게 즐거운 나는 절식으로 만든 인생 최저 몸무게를 길게 유지할 수 없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한 씨앗과 같은 존재였다고. 그 말을 떠오를 때면 상상하게 된다. 어떠한 나쁜 경험 하나 없이 긍정적인 양분만 먹고 자랐다면, 지금 내 모습은 어땠을까? 씨앗이 갖고 있던 장점들을 최대한 발휘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겉모습이 중요하지 않은 사회에서 자랐다면 어땠을까? 타인의 시선에 맞춰 급하게 바뀌었던 게 아니라 나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가꾸는 법을 익혔더라면- 잘 어울리는 커트 머리 아래 수트를 입고, 넥타이 매는 걸 즐기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타인의 기준에 맞추느라 진짜 내 취향을 잃어버린 것만 같아서, 좋아하지 않는 옷을 고르고 입다 보니 귀찮고 재미없는 일이 된 것만 같아서 못내 아쉽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열심히 꾸며왔던 모습, 커트 머리에 분홍색을 싫어했던 모습, 몸무게 최고점과 최저점을 찍었던 모습 모두 내게 있다. 그 모습들은 응어리 없이 누군가의 시선에 당당할 수 있는 맷집이 되어 주고 있다. 또 언제 어디선가 날아와 불쑥 들판을 메울 잡초 같은 계기가 생긴다면, 그 잡초를 키울지 뽑아낼지 결정하는 힘으로 남아있다. 그러니 화장기 없는 얼굴로 대충 옷을 입는 지금의 나는 감히 꿈을 꾼다. 누군가가 만들어준 것이 아닌 내 멋대로 꾸며낸 모습이 전성기라고 말할 시기가 언젠가 올 거라고. 아직 백발 커트 머리에 레오파드 무늬 옷을 입는 멋쟁이 할머니가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남아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