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사용법

분명 몸 쓰는 법이란 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능력이 아니었다.

by 리을

무더운 여름날에 태어난 조카가 열두 달을 자라서 돌이 되었을 즘이었다. 조카의 할머니이자 나의 엄마는 아직 걸음마를 떼지 못한 모습에 걱정하고 있었다. 엄마뿐만이 아니었다. 동생, 올케, 사돈 어르신까지 가족 모두가 조카의 걷는 모습을 한마음으로 간절히 기다리며 속을 태우고 있었다. 한 발짝 떨어진 나는 어차피 평생을 걸어야 할 텐데 좀 누워있게 두라고 우스갯소리로 대꾸하곤 했다. 뒤집기, 기어 다니기, 잡고 일어나기와 같은 과정을 겪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성장마다 주어진 과제를 해내고 있는 조카의 모습은 마치 게임 시작 전에 진행하는 튜토리얼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인생이라는 게임에 참여하려면, 알아야만 하는 최소한의 움직임들이 있다. 성장과 함께 기본적인 움직임을 익히고 나면, 저마다 개성적인 경험으로 새로운 사용법을 쌓아나간다. 내게는 그 튜토리얼 진행했던 때의 기억은 없지만, 응용하며 사용법을 터득해 나가던 순간의 기억 몇 가지는 선명하게 남아있다.


어렸을 때 무릎이 성할 날이 없을 정도로 많이 넘어졌다. 걷는 모양이 이상했는지 스스로 넘어진 게 대부분이었다. 달리는 자세도 우습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누군가는 흉내 내기도 했다. 다리를 엉덩이 바깥쪽으로 번갈아 올리며, 팔을 이상하게 흔들고, 앞으로 느리게 나아가는 모습. 믿을 수 없지만 내 달리기 자세라고 했다. 나를 놀리던 사람의 얼굴은 잊었지만, 그 우스꽝스러운 실루엣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달리기가 무서워졌다. 그렇게 운동회가 싫어 얼른 집으로만 가고픈 어린이로 자랐다.


열 살이 되던 해, 남동생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보조 바퀴를 달고 있는 우리 집 자전거가 시시하고 재미없다는 말을…. 당시 집에는 어린이용 두발자전거가 있었는데 중심 잡기를 도와주는 작은 보조 바퀴가 양쪽에 달려있었다. 함께 그 자전거를 타던 동생은 어디선가 두발자전거 타는 법을 익혀왔다. 보조 바퀴를 생명줄과 같이 여기는 나와는 다르게, 동생에겐 그저 속도를 떨어뜨리는 시시한 장치에 불과했다. 물론, 생명줄을 지키는 것보다 자존심을 지키는 게 더 중요했던 나는 이튿날 보조 바퀴를 떼러 수리점으로 향했다. 심란한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보조 바퀴는 순식간에 떼어졌다. 수리점에서 우리 집까지는 야트막한 오르막이 있었는데, 안장에 앉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짐작을 끌듯 자전거를 굴리며 돌아왔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두발자전거를 탔던 날이 되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자전거를 끌고 왔던 뒤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자전거를 타고 있는 아이들 틈에서 어떻게든 중심을 잡으려 애를 썼고, 그러다 어느새 양발을 페달에 올리고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몇 번이나 뒤를 잡아주고 타는 법을 가르치려 고생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싱겁게 나는 두발자전거를 탔다.


떨어질 뻔한 자존심을 아슬하게 지켜냈지만, 찰나와 같이 스쳐 지나갔다. 나이를 먹을수록 동생과 차이는 벌어졌다. 롤러블레이드, 줄넘기, 술래잡기 등 내 실력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종목이 점점 늘었고, 자존심만으로 그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이상한 자세 때문에 콤플렉스가 된 달리기는 또래보다 턱없이 느렸고, 자유시간에 친구들이 즐기는 피구는 무서웠다. 몸 쓰는 걸 잘하지 못하던 당시의 내가 체육 시간이 지겹고 재미없게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 내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사건이 생겼다.


때는 열세 살 가을 운동회, 푸른 하늘 아래 떠들썩한 분위기의 사람들. 그리고 마지못해 출발선 앞에 서 있는 나. 달리기를 못했던 내가 어떻게 경기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실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한번은 뛰어야 하는 경기였을 것이다.


'두근두근'


기대 없이 차분한 머릿속과 다르게 출발선 앞에서 심장은 눈치 없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해보나 마나 뻔한데, 자꾸 입은 바싹 말라오고 주먹 쥔 손은 미세하게 떨려왔다. 생각해보면 매 순간 그랬다. 결과가 좋지 않아 굳이 내세우지 않았지만, 일부러 느리게 달렸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꼴등이라고 열심히 달리지 않았던 게 아닌 것처럼 출발선에 선 나는 언제나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고 싶었다.


"탕-"


총소리와 함께 먼발치 있는 쪽지를 향해 달렸다. 그 경기는 저마다 라인 앞에 있는 쪽지를 읽고, 내용에 맞춰 임무를 수행해 결승선에 들어오는 방식이었다. 잠깐의 달리기로 세차게 뛰는 심장과 가쁜 호흡을 몰아쉬며 쪽지를 열었다.


'우산 가지고 결승선에 들어오기'


눈부시게 푸르른 하늘 아래 우산이라- 아마 지금의 내가 그 쪽지를 읽었다면 바로 포기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당시의 나는 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운동장과 학교 건물 사이, 많은 사람이 빼곡하게 앉아있는 계단식 야외 좌석에 유난히 눈에 띄는 물건이 있었다. 맑은 하늘 아래 활짝 피어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검은색 양산이. 머리보다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저 양산 좀 빌려주세요!!"


그곳으로 달려가 어떤 설명도 없이 그렇게 소리쳤다. 양산의 주인인 아주머니는 계단의 중턱에 앉아 계셨는데, 흔쾌히 운동장 쪽으로 양산을 건네주셨다. 펼쳐진 양산이 몇 사람의 손을 거쳐 계단을 타고 내려왔고 양산대를 손안에 거머쥐었다. 그리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레인 위, 결승선과 나 사이에는 아무도 없었다. 콤플렉스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내달렸다. 귓가를 울리는 심장 소리에 맞춰 앞만 보고 다리를 굴렸다. 그렇게 난생처음 하얀색 결승선을 넘어 손등에 1등 도장을 받아냈다. 나중에 부모님께 전해 들은 바로는 내 뒤를 맹추격하는 학생이 있었다고 한다. 결승선이 조금만 더 멀리 있었다면, 내가 1등이 될 수 없었을 거라고 덧붙였다. 도무지 칭찬인지 모를 그 말이 그땐 아무렇지 않았다. 짧은 순간의 선택과 감각을 통해서 얻어 낸 그 모두가 온전히 내 것이었기에.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후 나는 달라졌다. 보여주기 싫어서 피하던 달리기가 재미있었다. 하굣길 가로수 사이를 달리며 지나가는 차와 경주할 만큼. 그리고 지겹기만 하던 체육 시간이 다르게 느껴졌다. 50m 달리기를 하고, 줄넘기 이단 뛰기를 연습하고, 배구공으로 토스를 하는 게 재미있었다. 자격지심을 부추기던 체육 시간의 평가는 조금 더 해보고 싶게 만드는 자극제가 되었다. 서툴더라도 시간을 들여 노력하면 더 빨라졌고, 더 많은 개수를 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몸을 쓰는 순간의 매력에 빠졌다. 어느새 점심시간 종이 울리면 급식실이 아닌 체육관으로 달려가는 학생이 되어 있었다. 배드민턴 라켓을 잡고 30분가량을 즐겁게 뛰어놀다 느지막이 밥을 먹으러 가곤 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빠져나와 친구와 깔깔대며 배드민턴 게임을 하던 그땐- 움직이는 게 즐거웠다. 익숙해질수록 머리와 몸의 간격이 줄어들었고 해냈을 때의 성취감, 실패했을 때의 아쉬움 그리고 다시 도전할 때의 설렘, 그 모두가 즐거웠다. 덕분에 달리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기록이 반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게 되었고, 고등학교 3학년에 체육 성적으로 전교 2등이라는 영광을 누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십여 년이 지나 그때를 떠올려보면 아득하게 느껴졌다. 달리기 속도는 물론이고, 배드민턴, 줄넘기 그 어떤 것도 당시를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때만큼 열정적으로 몸을 써봤던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얼마 전부터 막연히 몸을 쓰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그 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가벼워 차마 운동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그저 '몸 쓰는 일'이라고 붙여놓은 폭신하고 말랑한 것이었다. 어디선가 들려온 ‘등산’이라는 단어가 그 마음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다짜고짜 남편을 붙잡고 산에 오르자고 했다. 바쁜 일 때문에 잠깐 출근했다 돌아온 사람을 부추길 정도로 말랑한 마음과 등산이라는 말의 결합은 강렬했다. 오전 11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산을 오르기 위해 간단히 코스 공부를 하고 물을 챙겼다. 도시락은 가는 길에 있는 유부초밥 집에서 몇 개를 고르는 것으로 대신했다. 정상에 앉아 시원한 바람이 부는 그늘에서 유부초밥 한 입을 베어 먹는다면- 그 상상은 내가 원하던 일, 그 이상이었다. 설레는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무들이 우거져 햇살을 가려주고 오랜만에 맡는 신선한 공기가 반갑게 느껴졌다. 앞서 걸어가시던 어르신을 지나쳐 걸었다. 경사가 조금 가파르게 보였지만 걷는 게 어렵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는데 조금씩 무거워지는 다리의 감각마저도 좋았다. 호흡이 조금 불편했지만, 마스크를 꼈기 때문이라 여겼다. 지나는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면, 마스크를 살짝 내려 숨을 고르고 또 한 걸음씩 올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마스크를 턱 밑까지 내려도 가쁜 호흡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고, 왼쪽 가슴 부위를 누르는 듯한 압박이 느껴졌다. 그러다 괜찮아지겠지, 아니 괜찮아져야만 했다. 일하고 왔음에도 지친 기색 없이 걷고 있는 남편에게 미안해 입을 뗄 수가 없었다. 경사로가 시작된 지 10분이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나도 내 상태를 납득할 수 없었다. 결국 몇 걸음 더 옮기지 못해 멈춰서고 말았다. 누군가 심장을 꽉 쥐고 쿡쿡 누르는 느낌에 도저히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머리로 짐작하고 있던 내 몸 상태와 실제의 괴리가 어느 정도인지를.


한참을 멈춰서서 심호흡하다 보니 내가 따라잡았던 어르신이 나를 앞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해 못할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남편의 얼굴. 괜한 심통에 진짜 아프다고, 꾀병이 아니라고 말해보지만, 기분은 나아지질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 꾸역꾸역 다시 한 걸음씩 걸었고 해발 497m 정상에 섰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먹고 싶었던 유부초밥은 두 개도 먹지 못했다. 목구멍이 좁아져서 아무리 잘게 씹어도 밥알이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타는 듯한 갈증을 조금이라도 벗어나고자 물만 계속해서 들이킬 뿐이었다.


지금의 내가 가볍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과거의 기억에 묻혀 등산쯤이야 기분 내킬 때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가볍게 여겼다. 나이를 먹어서라고 핑계를 대고 싶지만, 얼마 전 제주도 올레길(제주도 한 바퀴를 걸어서 도는 코스)을 완주한 부모님이 떠올라 그러지 못했다. 몸 쓰는 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원인을 찾다 보니 고등학교 졸업 직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체육 시간이 인생에서 사라졌고, 마음만 먹으면 달려가 배드민턴을 할 수 있던 공간과 친구도 없어졌다. 대신 조금이라도 눈 붙이기 위해 점심을 빨리 먹는 직장인이 되었다. 가끔 시간과 비용을 들여 운동을 했지만, 꾸준히 하지 못했다. 어느새 출퇴근하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간이 몸을 쓰는 일의 전부가 되어 있었다.


분명 몸 쓰는 법이란 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능력이 아니었다. 한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그마한 계기들에 용기를 내어 조금씩 쌓아왔던 것인데, 잊고 있었다. 아마도 만들어왔던 시간만큼 서서히 사라져 갔을 것이다. 출근길에 지하철 계단 오르기를 힘들어하는 모습과 달릴 때 삐걱거리는 관절의 느낌 그리고 퇴근 후 다른 무엇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지친 체력은 굳이 등산이 아니었어도 현재 내 몸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한심하다거나 후회가 되기보다는 아쉬웠다. 등산의 즐거움을 오롯이 느낄 수 없는 몸 상태가 다른 어떤 것도 온전히 즐길 수 없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어쩌면 몸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말을 걸고 있었는데, 눈치가 없는 내가 이제야 알게 된 게 아닌지 머쓱해졌다. 집안 구석에 박혀있는 요가 매트를 꺼내서 거실 한가운데 펴냈다. 똑바로 서서 목을 이리저리 기울이고 돌렸다. 그 간단한 동작에도 목 주변이 얼마나 굳어 있는지가 느껴졌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팔을 돌리고 허리를 풀고 종아리를 쭉 뻗는 것까지- 천천히 움직이며 그간 외면해온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자존심 때문에 보조 바퀴를 떼어냈던 날이 자전거를 탈 수 결정적인 날이 되었다. 얼떨결에 1등으로 들어온 달리기 경기는 6년간의 체육 시간을 즐겁게 만들고, 전에는 알지 못했던 행복감을 선사해주는 출발선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리숙했던 '등산'을 자그마한 계기로 삼기를 마음먹었다. 낮은 단계의 움직임부터 다시 익히고, 그를 위한 시간을 마련해 내기로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이 계기는 또 어떤 일의 시작이 될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가보기로 정했다. 몸을 사용하는 법은 일회성 퀘스트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면서- 꾸준히 지치지 않고 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