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복통에 못 이겨 결국 눈을 뜨고 말았다. 속이 더부룩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그 느낌은 윗배를 묵직하게 누르다가 가끔은 찌르는 듯했다. 옆에 잠들어 있는 사람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이리저리 돌아누웠다. 편안한 자세를 찾아보려 노력했지만, 이미 자각한 감각은 좀처럼 사그라들 줄을 몰랐고 결국 몸을 일으켜 세웠다. 새벽 2시, 깜깜한 거실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아 배를 감쌌다. 땅땅하게 부풀어 오른 배를 쓸어내리듯 만져보지만 불편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선명해졌다. 서랍을 열어 소화제를 찾아 먹고는 등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거실을 빙빙 걸었다. 한 시간가량 앉았다 일어났기를 반복한 뒤에야 윗배의 묵직함이 사라졌다. 조심스레 침실로 발을 옮겼다. 잠잠해진 속과는 다르게 이번엔 말똥해진 정신 때문에 또 이리저리 돌아누웠다. 포기한 듯이 휴대폰을 손에 집어 들고 관심도 없는 기사를 읽어 내리다, 갑자기 눈가가 뜨거워졌다. 지겹도록 반복하던 일인데 익숙해지기는커녕 갈수록 괴로웠다. 답답함, 자괴감, 억울함 그리고 수치심까지 덮쳐 잠들지 못했다.
잊을 만하면 나를 괴롭히는 한밤중의 통증은 2년 전 난생처음 위내시경을 받은 후부터 시작됐다. 불편한 부분이 있어서 했던 검사가 아니었다. 그냥 서른을 넘긴 나이에 한 번은 해볼 만하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의무도 아닌 검사를 자진해서 예약했다. 수면으로 대장 내시경까지 함께 예약한 터라 검사 전날 금식하면서 대장 약을 먹었다. 500mL 플라스틱 통에 약 한 포를 넣고 물을 가득 채워 몇 통이나 마셔야 하는 약은 악명이 높을 만했다. 인위적인 레몬 향에 정체불명의 짠맛이 더해져 비릿한 맛이 나는 물을 겨우 삼키고 나면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게 만드는 경험은- 검사를 사칭한 고문 같다랄까. 자비로 이십만 원이나 내면서 검사를 받겠다고 한 과거의 내가 원망스러웠다. 심리적으로 홀쭉해진 몸을 이끌고 병원에 도착해서도 할 일은 많았다. 옷을 갈아입고 몇 개의 층을 돌아다니며 기본 검사를 하고, 틈틈이 사그라지지 않는 약 기운 때문에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모든 검사가 끝난 후 마지막으로 남겨둔 내시경을 위해 침대에 누웠다. 기나긴 준비 시간에 비해 검사는 순식간에 지났다.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얼른 병원을 벗어나려는 나를 간호사가 붙잡았다. 이상소견이 있어서 의사를 만나고 가야 한다며 진료실로 안내했다. 몇 분간 멍하니 의사를 기다렸고, 조금 뒤 큰 키에 하늘색 수술복을 입은 의사가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가볍게 인사를 건네는 내게 살짝 목례하는 의사의 얼굴은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마치 조금 전까지도 내시경 검사를 하다 잠시 진료실에 들렀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던 의사가 말을 시작했다.
"역류성 식도염이 심하고, 위염도 오래도록 있었요. 여기 보시면-"
화면에 알 수 없는 붉은 빛 사진을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쉴 새 없이 다른 환자의 사진과 내 사진을 비교하며 이상한 부분을 짚어주며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이해하기 어려웠다.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병명은 뜻을 몰라서가 아니라, 내 이야기라는게 믿을 수 없어서 제대로 반응할 수 없었다.
"매운 것, 짠 것 조심해서 드셔야 합니다. 그리고 비슷한 연령대에 비해서 위가 나이 들어있어요. 염증은 약으로 치료해서 없앨 수 있지만, 나이 든 위의 모습은 예전처럼 돌아가기 힘들 거예요. 한 달 치 약을 드릴 테니 챙겨 드세요."
그렇게 진료 시간도 순식간에 끝났다. 나에게는 처음이고 생소해서 이해하기 힘든 말들이 바쁜 의사에게는 수백 수천 번 반복되어 지나가는 상황 중 하나일 뿐일 테니까. 집으로 돌아온 내게 남은 것은 매 끼니 식전, 식후로 챙겨 먹어야 하는 수북한 양의 약들과 해결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대체 언제부터 그랬던 걸까?'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실 때면 두세 시쯤 명치 쪽에 쓰린 느낌이 들곤 했다. 좀 쓰릴 수도 있겠거니 하며 물을 연거푸 마시며 속을 달랬다. 남들 못지않게 즐기던 술이 점점 마시기 힘들어졌다. 술자리에 가서 한두 잔을 마시다 내려놓는 날이 많았고, 아예 마시지 않는 날도 늘었다. 야식을 먹고 잠든 다음 날 아침에는 속이 더부룩해서 점심시간까지 불편하기도 했었고…. 스쳐지났던 작은 일들이 떠올랐고, 그 중심에 위염이 있었던 것이다. 상처 부위를 눈으로 확인했을 때 아프기 시작하는 것처럼 속쓰림은 점점 더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무 일도 없다고 생각한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들 정도로.
점심시간 전에 쓰린 속을 달래려 아침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 급할 때는 사과 하나에 양배추즙 하나, 시간이 조금 있을 때는 계란 프라이에 토마토를 익혀서 먹었다. 카페에서 커피가 아닌 허브티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날이 더워서 참지 못하는 게 아니라면 따뜻한 음료를 고르고 평상시에도 미지근한 물을 마시려 애썼다. 즐겨 먹는 자극적인 음식도 피하려 점심시간에 혼자 밥을 먹는 걸 택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노력했던 부분은 먹는 양이었다. 아무리 앞에 늘어놓은 일들을 잘 지킨다고 해도 많이 먹으면 소용없었다. 밥 한 공기를 받자마자 숟가락으로 절반 선을 긋고,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덜어주고 반 공기만 먹었다. 그래도 배는 불렀고 다음 끼니를 불편하지 않게 기다릴 수 있었다. 다행히 병원에서 받아온 한 달간의 약 뭉치가 사라져갈 즈음에는 속쓰림을 느끼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 먼저 젓가락을 내려놓는다는 게 아쉽긴 했지만, 전과 다르게 편안해진 속을 보고 식욕도 자연스레 거기에 맞춰 줄었다고 생각했다. 편해진 속만큼 식탁 위에서 날 세우지 않았다. 좋아하는 반찬이 나오면 남은 반 공기에 몇 숟갈을 더 먹기도 했고, 치킨을 시켜 맥주 한 잔을 들이켰다. 오랜만에 맛보는 음식에 숨겨온 욕구가 스멀스멀 피어나는 줄도 몰랐다.
고등학교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오랜만에 네 명이 모여서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신났다. 집 주변에서 점심을 먹고 산책하며 놀고 있는데, 점심을 너무 건하게 먹어서 저녁 시간이 되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 한 명이 집에 가서 저녁도 먹고, 야식까지 챙겨 먹고 싶다고 말했다. 나를 포함한 세 명은 불가능할 것 같다고 했지만, 그 친구는 먹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먹고 싶다면, 조금이라도 소화를 시켜보자는 의미에서 집까지 걸어서 가기로 했다. 오르막을 걷는데 생각보다 경사가 심해서 쉬다가 걷다가를 반복했다. 그렇게 또 잠시 쉬는 중에 고집을 부리던 친구가 말했다. 야식은 도저히 못 먹을 것 같다고. 그러자 모두 그 말을 반기며, 억지로 더 먹으려 하지 말자고 했다. 곁에 있던 나도 한마디 보탰다.
"잘 생각했어. 먹는 것에 욕심부리는 것만큼 미련한 게 또 없어."
눈을 뜨니 어두운 공간 속 낯익은 천장이 보였다.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 아직도 내 입안에 맴돌고 있었다. 꿈이었다. 생생하던 장면들이 희미해지고, 윗배에 더부룩한 느낌이 점점 또렷해진다. 미련하다는 말은 정확히 나를 향한 말이라는 걸, 꿈이 비웃듯이 보여줬다. 통증과 같은 더부룩함에 괴로워하면서도 또 먹었다. 특히나 야식을 잘못 먹었을 때면 새벽녘에 깨어나 고독한 수선을 떨고 나서야 겨우 다시 자리에 누울 수 있었다. 예상보다 먹는 것에 대한 감정은 남달랐다. 생존 본능을 넘어서는 이 감정은 애정인지, 애착인지, 집착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매 끼니 식탁에서 나를 괴롭혔다. 식탁 위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 전부를 맛보고, 모든 접시를 비워낼 정도로 많이 먹고 싶었다. 아파진 위장 따위 생각하지 않고 포만감을 넘어 도저히 먹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까지 먹고 싶었다. 참다 참다 결국 폭발하듯 과식을 해버린 날이면 통증과 자괴감에 휩싸여 헤어 나오기 힘들었다. 전혀 낫고 있지 않다는 절망감과 평생 참으면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이 삐죽 나왔다. 마음대로 못 먹는 게 억울해서, 고작 그런 걸로 억울해하는 내가 비루해 보여서, 결국 이렇게까지 만든 건 누구도 아닌 '나'라서… 답답한 가슴이 나아지지 않았다.
'차라리 망가진 걸 몰랐더라면 편했을까?'
모든 게 자각한 후에 벌어진 일 같았다. 먹는 것에 아끼지 않고, 부족한 것보다 남는 게 낫다고 말하며, 한 끼 식사에 가득 올린 반찬에 설레며 진득하게 앉아서 먹는 내가 훨씬 익숙했다. 하루의 스트레스를 맛있는 야식으로 풀고, 스치듯 떠오른 음식을 먹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 나는 행복했었다. 남들처럼 소화하고, 누군가와 함께 먹는 시간이 좋았는데, 더 이상 식사 시간이 즐겁지 않았다. 그만큼 먹는 즐거움이 컸었다. 내시경 결과를 계기로 그 즐거움이 몽땅 식탐으로 추락해버리고 만 것이다. 식탐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 배부름을 넘어 한계치까지 밀어 넣는 것은 꿈에서도 말했듯이 미련함에 가까우니까. 하지만 단순히 욕심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없었다. 단박에 식탐을 잘라내듯 없애는 건 불가능했고, 오히려 폭식을 불러 잠 못 드는 날의 횟수만 늘릴 뿐이었다.
어쩌면 평생 밥상에서 식탐과 전쟁을 치르며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억누를수록 거센 후폭풍을 몰고 와 괴롭게 했고, 외면하고 내버려 두기엔 망가진 위장이 견디지 못할 것이다. 승리의 기쁨이 고작 편안한 속일 뿐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전쟁…. 어차피 평생을 줄다리기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해 보였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나와 동생을 시장에 데려가야 할 때면, 꼭 밥을 챙겨 먹이셨다. 그리고 먹고 싶은 딱 한 가지를 사주겠노라 약속하고 집을 나섰다. 지척에 깔린 군것질에 눈이 돌아갔지만, 한 번의 기회를 후회하지 않기 위해 신중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고른 어묵꼬치는 아쉬움보다 만족감이 컸다. 이미 먹고 온 밥 덕분에 하나만 먹어도 포만감이 돌았고, 선택에 대해 뿌듯함까지 맛보았다. 어쩌면 식탐은 칼로 도려내야 하는 못된 습관보다 생떼 부리는 아이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현명한 예방책과 연막작전을 고루 썼던 어머니처럼, 따뜻한 시선이 필요한 순간이 아닌지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