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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을 Apr 10. 2023

알지 못해 부끄러운 우리의 이야기

[소설 리뷰]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


내일은 선택의 자유가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자유를 위한 고난이라면
도전해볼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도쿄에는 '조선대학교'라는 곳이 있다.


예외 없이 모든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엄격한 기준의 복장과 통금시간을 지켜야 하며, 소지품 검사는 물론이고, 사상 검열까지 자연스레 당하는 대학교. 일본 한가운데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위대함을 읊고, 정해진 진로에 따라 사람을 기르는 그곳에 관한 이야기다.


오사카에서 자란 박미영은 연극을 광적으로 좋아했다. 그래서 도쿄에 있는 '조선대학교'를 택한 것이다. 도쿄에서 열리는 연극을 더 가까이 많이 보기 위해서. 하지만 첫날부터 잘못 온 것 같다는 말을 입으로 내뱉고 마는 미영. 그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족쇄가 채워졌다. 자유시간이 생겨도 '운동'이라는 핑계를 대지 않고는 학교 밖으로 자유롭게 나갈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그제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재일조선인으로 자란 미영은 중고등학교와 별다르지 않은 대학의 모습에 크게 실망한다.


"여기는 일본이 아닙니다!
조선대학교에 다니는 동무는 공화국,
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십시오!"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 75p


불시에 소지품 검사를 당하고, 그것에 반발하자 미영에게 돌아온 말이었다.


그럼에도 미영은 당당했고, 연극에 대한 열망을 놓지 않았다. 학교에 늦게 들어가 문제가 될지언정 눈앞에 온 기회를 최대한 누리려 발버둥 쳤다. 통금 시간에 늦더라도 동경하던 배우와 직접 만났고, 모두가 반대하는 일본인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됐다.


하지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미영이 자이니치든 조선인이든, 그런 건 신경 안써."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 상냥하게 날아왔다. 큰 부상은 아니지만, 가시가 박혔다.
"그러니까 미영도 걱정하지 말고."
"그게 아니라."
……
"내가 자이니치고 조선인이라는 거, 신경 써달라고!"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 145p


현실은 여전히 조선대학교 안에서 고통받았고,

호감을 나누는 상대에게 이해받지 못했다.


오사카에서 태어났고, 조선인 국적을 갖고 일본에 살고 있으며, 친언니가 북한에서 살고 있는 미영에게 '신경 안 써'라는 단어는 상냥한 가시였다.


자연스레 로맨스가 되겠거니 기대하던 나도 한 방을 맞은 기분이었다. 참 가슴 따뜻한 말을 하는 좋은 사람이라 여겼던 건, 나도 유와 같은 시선으로 미영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미영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지언정 도망치지는 않았다. 늘 정면으로 바라보고 어떻게든 헤쳐 나가려 했다. 그런 미영에게 자신의 상황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이해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말로 느꼈다.


사실 이 이야기에는 작가의 삶이 녹아있다.


[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 [수프와 이데올로기]라는 세 편의 다큐를 만든 양영희 감독의 소설이었다. 주인공으로 나온 박미영은 양영희 감독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져 있다.

한국 전쟁으로 일본으로 피난을 갔고,

일본에서 히로시마 원폭 피해로 제주도에 갔으며,

제주에서 4.3 사건을 겪고 다시 일본으로 떠난 사람.


한 사람이 겪었다고 도무지 믿을 수 없이 기구한 사건들을 양영희 감독의 어머님이 겪으셨다. 어머님은 일본에서 북한 체제를 따르기로 하고, 오빠 둘은 북으로, 양영희 감독은 일본에서 조선대학교를 보냈다. 그렇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디어, 평양]이 되고, 북한에서 살고 있는 조카들의 이야기가 [굿바이, 평양]이 되고, 숨겨진 어머니의 과거를 모두 알게 된 이야기가 [수프와 이데올로기]에 담겼다.


양영희 감독은 아니 작가는 소설 내내 묻고 있다.


저 모두를 빼고 한 사람을 이해하는 게 가능한지를,

'상관없다'는 상냥한 말에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를,

그리고 당신과 우리와 관련 없는 이야기인지를 끈질기게 묻는다.


사실 블라인드 독서 모임에서 만난 책이었다.

표지와 제목을 보자마자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얼어붙었다. 하지만 술술 읽히는 문체와 마치 사실을 말하듯 자세한 묘사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https://youtu.be/motxhoxcMp0


웃으면서,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몰랐다. 따뜻한 편안함 속에 존재하는 작은 위화감. 부드러운 캐시미어로 몸을 감쌌는데 짜임 사이로 튀어나온 가시에 찔린 것 같았다. 뽑고 싶어도 보이지 않아서 내버려둘 수 밖에 없는 작은 무언가.
그러나 계속 찔리다 보면, 피부가 짓물러 피가 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 111p


[수프와 이데올로기] 감독 인터뷰로 그녀를 처음 만났다. 보고 듣는 내내 위의 문구가 떠올랐다. 삶 속에 존재하는 작은 위화감을 놓지 않고 끈질기게 파헤치고, 세상에 드러내 기꺼이 타인에게 가시가 되는 역할을 하는 사람. 때로는 유쾌하게, 또 때로는 진지하게 한국어로 설명하는 그녀를 보고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이렇게라도 인연을 맺게 되어 감사했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기꺼이 읽고 보고 싶어졌다.


나와 관련 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 마음을 곱씹으며, 다시 한번 글로 새겨두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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