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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을 Apr 06. 2023

일상을 바꾸는 작은 만남

[소설 리뷰]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언젠가부터 아쿠아리움에 가는 일이 즐거웠다. 푸른색이 감도는 공간 안에 있는 물고기를 보면 어린아이처럼 설레고 신기했다. 내 몸집보다도 더 큰 상어, 물속을 날아다니는 모양새의 가오리, 사람의 얼굴을 묘하게 닮은 열대어들까지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내게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이란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진기한 생명체들이 가득한 곳이 문을 닫으면, 그 밤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마셀러스'라는 거대 태평양 문어가 주인공이다. 늘 신선한 먹이를 먹으며 자유롭게 살던 마셀러스는 소월베이라는 작은 마을 아쿠아리움에 갇히게 되었다. 그곳에서 주는 냉동 먹이에 질려, 밤마다 탈출을 감행했다. 옆 수조의 가리비는 물론이고, 사람의 음식까지 그렇게 자유롭게 넘나들던 마셀러스는 어느 날 '토바'와 만나게 된다.


토바는 나이를 지긋하게 먹은 아쿠아리움 청소 직원이었다. 밤마다 껌이 붙은 바닥이며, 지문이 가득한 유리를 닦으며, 수조마다 있는 생명체들에게 인사를 건네던 상냥한 할머니. 토바는 전선에 감겨 고립된 마셀러스와 만난다. 놀란 것도 잠시 위험을 겪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도움의 손길을 뻗어냈다. 그렇게 말도 통하지 않는 두 사람은 완전히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


소설에는 소외된 생명체가 주인공이다.


홀로 살면서 타인에게 안쓰러운 눈빛을 받는 할머니, 토바

수족관 안에서 냉동 먹이에 지치고 죽는 날을 세고 있는 문어, 마셀러스

제대로 된 직장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청년, 캐머런까지.


우연히 소월베이에서 만난 아픔을 가진 존재들이 따뜻한 이야기를 빚어간다.



어쩌다 보니 토바는 방충문을 수리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생명체들이 자신만의 작은 구멍을 누리게 두자고.
그렇게 생각하며 토바는 소리내 웃었다.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170p


마셀러스가 수족관을 넘나드는 작은 틈을 발견한 토바. 직원에게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토바의 집에는 고장 난 방충문으로 집을 넘나드는 길고양이 캣이 있었다. 당장 수리를 하려 했던 마음이 전혀 다르게 바뀌었다. 고장 난 방충문은 캣이 누리는 '작은 구멍'으로 보였다. 한 생명과의 교감이 시각을 바꾸고, 일상을 바꾸어 토바는 캣과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


소외되고 아픔을 가진 존재라면, 종을 넘어서서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작은 만남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왠지 설득당해버렸다.


기적 같은 만남이라...

다가오길 바라면서도 또 이미 곁에 있지 않은가? 하고 돌아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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