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고 짧은 소설들을 읽는 마음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정말 단순하다.
제목과 추천사 때문.
제목은 정말 어떤 게 함축되면 저렇게 유려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한 문장.
이 책을 읽어서 꼭 저 제목이 나온 대목을 내가 봐야겠다! 하는 마음이 먼저였으며, 눈익은 작가들의 추천사가 몫을 더했다.
그리하여 읽기 시작한 ‘파리 리뷰’
파리 리뷰는 1953년 파리에서 창간된 영문학 계간지인데 줄곧 소설의 실험실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이 책은 파리 리뷰에 실린 스무 편의 단편 소설 중에서 열다섯 편을 추려 옮겼다.
초반에 실린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 <어렴풋한 시간>은 읽으면서 이해력이 달리는 나에 대한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러다 <춤추지 않을래>부터 비교적 읽기 쉬워졌다. <궁전 도둑>에선 너무 재밌어서 폭주해서 읽게 됐다. 한번 흥미를 붙이고 나니 뒤의 단편들을 읽는 건 즐거웠다.
이 책의 좋은 점은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점이다. 소설 바로 뒤에 비평이 붙어있기 때문. 물론 스스로 이해하게 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모든 사람이 단번에 이해한다면 그게 예술일까 싶기도 하고, 개개인이 작품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다를 수밖에 없는 점을 생각하면 가벼운 마음으로 비평을 읽을 수 있다. 읽음으로써 선명해진다. 내가 읽어내지 못한 문장과 작가의 마음이. 그리하여 나는 작가가 아닌 다른 이의 글 한 편을 더 읽게 되고, 하나라도 더 알게 된다.
가장 좋았던 리뷰는 <춤추지 않을래>에 대해 쓴 데이비드 민스의 글이다.
위대한 이야기는 영원히 긁어야 하는 가려움과 같다. 이런 이야기는 전형적이면서 특별한 감정을 영원히 안겨준다. 우리에겐 대답보다 더 많은 질문이, 질문보다 더 많은 대답이 주어진다. 좋은 이야기는 역설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우는 듯하면서도 완벽하게 충만하지는 않다. 주어진 거라고는 조금 더 큰 존재의 작은 조각, 사소한 것들의 집합체, 관점의 전환, 몇 주 늦게 듣는 진술이 전부다.
단편 소설은 가려움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문장을 줄여야 하고, 장면을 생략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그 가려움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마음의 문제가 생긴다.
의뭉스러움과 찝찝한 감정으로 퉁칠지, 여운을 느끼거나 여러 갈래로 해석하는 자세를 취할지.
긴 긁을 잘 못 읽는 시대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소설에서만큼은 줄이고 줄인, 단편 소설을 읽어내는 게 더 힘든 시대라 생각한다. 장편을 읽는 데에는 끈기가 필요하지만 단편을 읽을 땐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고 몇 천 개 되지 않는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미루어 생각해야 한다. 나에겐 후자가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내가 아직 읽어보지 않은 이야기를 보다 호전적인 자세로 대했던 독서였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