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 평론가의 문장 덕질을 계속하기
오늘 오전 발제한 뜨뜻한 책. 작년에 나온 신형철의 <인생의 역사>를 같이 읽었다. tmi를 남발하자면, 대학에서 국문학을 복수 전공하면서 현대 산문과 비평론 수업을 들으며 신형철 평론가를 알게 되었다. 국문학 수업을 들으며 수확이라 생각하는 부분이 '좋아하는 작가'와 '즐겨있는 평론가의 글'도 생긴 것이다. 수업을 듣기 위해선 <몰락의 에티카>를 읽어야만 했으며, 그 이후의 <느낌의 공동체>, <정확한 사랑의 실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자의적으로 사서 읽었다. 오랜만의 신간인 <인생의 역사>의 소식도 반가웠지만, 책을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던 지난해 말을 지나 올해 봄에야 완독했다.
비평집 독서의 장점은 명확하다. 누군가 신중하게 고른 작품(내가 이제껏 본 적 없는)을 처음 접하게 되는 것, 혹은 내가 알고 있던 작품(교과서에 나왔던)을 조금 더 깊게 읽어내게 되는 것. '작품+비평'을 '1+1'의 구성으로 즐길 수 있는 점도 너무나 좋다. 비평집이라고 하면 독서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겐 허들로 느껴질 수 있지만, 오히려 자신의 독서 취향을 찾지 못했거나 무얼 읽어야 할지 모를 때 읽으면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인생의 역사>는 보다 친근하게 시작할 수 있다. 초반부엔 우리가 모를 수 없는 <공무도하가>와 최승자의 시가 나오니까. 내가 알고 있던 시와 시인의 마음을 한번 더 헤집어 보는 경험을 하고 나면 빗장이 하나 풀리고 독서에 힘이 붙는다. 다소 충격적이다 싶을 작품과의 신선한 첫 만남은 필사까지 하게 만들고.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글을 읽게 된다.
시를 제대로 즐기기는 늘 어려웠다. 다 드러내놓는 게 아니라, 숨김으로써 힘을 갖는 문장들이니까. 함축된 문장을 읽고, 읽고, 또 읽어서 이해를 해내야만 생각을 했으니까. 하지만, <인생의 역사> 속 비평을 가이드 삼아 부담 덜고 시를 즐길 수 있었다.
‘시’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대단한 예술이다. 시는 행(行)과 연(聯)으로 이루어진다. 걸어갈 행, 이어질 연. 글자들이 옆으로 걸어가면서(行) 아래로 쌓여가는(聯) 일이 뭐 그리 대단할 게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건 인생이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도 행과 연으로 이루어지니까.
이번 책에선 이영광 시인의 <사랑의 발명>이 충격적일 정도로 좋았다. 시를 다 읽고 정말, 거짓말 안 하고 이마를 빡빡 쳤다. 두개골까지 (물리적) 울림이 전해졌으니 정말... 충격일 정도...로 좋았다는 점.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견해만 했네
가장 감화된 문장은 인생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이성복 시인의 <생에 대한 각서>를 비평한 부분이다. 이성복 시인은 '내 안의 스승'을 찾으라 말한다. 그리고 비관적인 카프카의 문학에서 우리가 역설적으로 위로를 얻는 까닭에 대해선 이렇게 말한다.
인생이라는 화마를 잡기 위한 '맞불'
하나의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 임의의 다른 절망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인생이라는 불에 대해 문학은 맞불이라는 거다. 맞불은 궁극적으로 불을 끄기 위한 방식인 걸 잊고 이 단어를 쉬이, 어쩌면 다른 의미로 쓰던 나는 이 말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정말이지 문학은 인생의 맞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의 역사>를 완독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갹... 진짜 좋은 책이니 추천합니다. 좋은 문장에 형광펜을 칠하자면 컬러링북이 될 책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