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포그래피 스터디] 타이포그래피의 역사 4편
타이포그래피 스터디 시리즈로 연재되는 본 글은 『타이포그래피의 탄생』책 내용을 토대로 핵심 내용을 정리, 요약하였습니다. 글쓴이의 덧붙임 문장 앞에는 *을 별도 표기하였습니다.
<타이포그래피의 탄생> 로빈 도드 Robin Dodde 지음
19세기는 변화와 개발의 시대였다. 18세기에 행해졌던 많은 발명과 발견이 실생활에 사용되기 시작했고, 1800년에 이르러 영국과 네덜란드의 농업은 점점 상업화되어 효율성을 추구하게 되었다.
1차 산업혁명 시대 배경 (18세기 후반~19세기 초)
– 산업혁명의 출발점: 영국에서 면직물 수요의 급증, 철도 건설과 증기기관의 발명을 바탕으로 기계에 의한 생산
– 혁신적인 발견 세 가지: 직물, 증기력, 철강의 발견으로 비약적인 경제 발전
– 자유주의 경제체제로 도약: 왕족과 귀족 지배 체제가 무너지고,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선거법 개정을 달성(차티스트 운동)
– 사회주의 운동의 물결: 자본가들의 노동자 인권 유린으로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운동
– 대량생산 체제의 영향으로 상업적이고 획일화 된 디자인
– 낭만주의 사조: 신고전적 계몽주의의 억제된 객관성에 대립, 인상주의, 20세기 현대미술의 첫걸음
1. 팻페이스와 슬랩세리프 이집션체
: 유럽 모던페이스를 활용한 최초의 제목 활자
19세기 초에 들어 활자주조소에 제목용 글꼴을 요구하는 소규모 인쇄업자 고객들이 등장했다. 소규모 인쇄업자들의 나날이 복잡해지는 상업 활동과 함께 광고 인쇄물의 필요성이 증가했다. 제목활자의 제작은 영국 활자 주조소에게 새로운 영역이었고, 더 많은 종류의 글꼴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였다. 로버트 손은 제목활자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최초의 활자를 만들게 되는데, 이는 후에 팻페이스라고 알려진다. 손은 당시 유행하던 보도니와 같은 유럽 모던페이스를 활용했다. 그의 명성이 대륙 전체로 퍼지면서 파리에 있는 프랑스 왕립인쇄소를 위한 팻페이스 폰트 제작이라는 유례없는 요청을 받게 된다.
1-1. 첫 슬랩세리프
: 로버트 손의 이집션체와 빈센트 피긴스의 안티크체
1820년 로버트 손이 세상을 뜨기 얼마 전, 제목용 슬랩세리프 활자를 깎아 이집션(Egyption)이라 명명했다. 이 활자는 이름과 같이 고대 이집트의 건축 유물과 각지고 두꺼운 세리프가 닮아 있었다. 더욱이 당시 1798년 나일강 전투에서 나폴레옹 함대가 패배한 지 얼마되지 않았고, 로제타석을 비롯한 각종 유물로 인해 이집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을 때였다. 슬랩세리프 이집션체는 대성공을 거두어 이내 미국과 유럽에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한편 1815년, 손의 경쟁자였던 빈센트 피긴스는 첫 번째 슬랩세리프를 만들어낸다. 피긴스는 그 글꼴의 이름을 안티크(Antique)라 짓고 4가지 서로 다른 크기의 제목용 글꼴을 제작한다. 촉망 받는 런던의 활자주조가였던 피긴스는 윌리엄 캐슬론 1세의 도제였던 조셉 잭슨 밑에서 도제 생활을 했다. 유능했던 그는 홀번과 런던에서 주조소를 시작해 우수하고 창조적인 활자주조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2. 슬랩세리프 활자들
: 새로운 미적 기준으로 정제된 슬랩세리프의 부흥
19세기 말로 향하면서 슬랩세리프의 인기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1930년대에 슬랩세리프의 부흥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이 때의 새로운 버전은 이집션체의 느낌을 유지하고 있었다. 처음 등장한 것은 1929년 프랑크푸르트 슈템펠 활자주조소에서 개발한 멤피스체(Memphis)였다. 20세기의 슬랩세리프는 극단적으로 강한 외양을 가졌던 19세기와 다른 모습이었다. 새로운 활자들은 모더니스트의 미적 기준에 맞게 디자인되었고, 산세리프의 기하학적 간결함과 세대를 함께 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록웰체의 a는 전통적인 2단 구조이고 멤피스체는 1927년의 푸투라체처럼 a가 1단 구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세로획 끝부분에서도 차이를 확인할 수 있으며, 록웰체는 j의 점이 둥글지만 멤피스체에서는 사각형이다.
3. 판 스트리트 주조소
: 기회를 성공으로 이끈 새로운 활자주조가, 윌리엄 소로굿
1820년에 윌리엄 소로굿은 경매에 붙여진 로버트 손의 판 스트리트 활자주조소를 구입해 경영권을 인계받았다. 그는 이전에 활자주조와 전혀 관련이 없었지만 우연한 복권 당첨을 계기로 활자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주조소를 성공으로 이끌어 타이포그래피 업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도록 만들어냈다.
3-1. 꼭 필요했던 발명
: 글자를 강조하기 위해 탄생한 클라렌돈체
활자주조가들이 신선한 제목용 글꼴 디자인을 찾게 되면서 슬랩세리프체가 새로운 형식으로 대두되었다. 1845년 소로굿은 클라렌돈체라 부르는 새로운 글꼴을 등록했다. 클라렌돈체는 이집션 슬랩세리프체를 차용한 것이지만, 제목용 글꼴로 썼을 때 이집션 슬랩세리프체보다 더 세련되어 보인다. 클라렌돈체는 그 당시 인쇄업자들의 모음집에 꼭 필요한 글꼴이었다. 이는 글자를 강조하기 위해 디자인되었기 때문에 본문용 글꼴 크기에서는 볼드체를 대신해서 쓰였다. 인쇄업자 사이에서 클라렌돈체는 볼드체를 대변하는 일반적인 용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최초의 클라렌돈체는 1845년 소로굿의 판 스트리트 활자주조소에서 로버트 베슬리가 디자인했다고 알려져있다. 클라렌돈체는 활주조가들의 견본서에서 거의 변하지 않은 형태로 남아있다. / 출처: 위키백과
클라렌돈은 로만체의 굵고 얇은 대비와 점점 좁아지는 느낌으로 섬세하게 다듬어진 까치발, 묵직한 세리프가 특징이다.
4. 19세기의 기술 발전
: 인쇄 기술의 두 가지 혁신적인 발전, 속도와 방법 개선
19세기는 인쇄 산업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에너지 넘치고 혁신적인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상업적 목적과 더불어 다양한 종류의 인쇄물에 대한 수요가 증대되었다. 18세기 말 무렵, 프랑스 디도 가문의 제지공장에서 일하던 니콜라 루이 로베르는 기계로 종이 만드는 법을 연구했다. 그는 자신이 고안하던 장치를 영국에 가져가 존 갬블의 도움과 브라이언 던킨의 공학 기술로 결실을 맺었다. 더욱 빠르고 싼 조판에 대한 욕구는 혁신을 가져왔다. 이 혁신은 두 가지 방법으로 다루어졌는데, 주조하는 속도를 개선하는 것과 조판 방법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이전의 손으로 하나하나 인쇄지를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 끊지 않고 길게 종이를 짜내는 릴 방식으로, 현대적인 제지 기계의 시초가 되었다.
4-1. 이미지 생산 방법
: 일러스트레이션 인쇄부터 사진복제까지
서적과 정기간행물의 일러스트레이션은 대중적인 독자층이 늘어나면서 더욱 많이 필요해졌다. 여러 해에 걸쳐 개발된 연판인쇄술은 글과 일러스트레이션이 들어간 주조판을 만드는 과정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인쇄를 위해 목판화와 동판화가 수세기에 걸쳐 많이 사용되었다. 특히 목판화 기법은 18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광고에서도 많이 쓰였다. 훗날에는 더 정확한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이 발명된 초기부터 사진을 복제해 인쇄하려는 시도가 생겨났다. 1881년에 게오르그 마이젠바흐가 ‘사진 제판술’을 만들면서 비로소 효과적인 사진복제가 가능해졌다.
5. 윌리엄 모리스와 전진을 위한 반성
: 현대 디자인 역사의 시조, 윌리엄 모리스
모리스의 예술과 디자인, 사회에 대한 글과 가르침은 후대에 귀감이 되고 있다. 그는 시인이자 소설가였고, 화가이자 직물 디자이너였다. 또한 사회 정치 운동가, 중세 연구가로 당대의 르네상스인이었다. 모리스는 성직자가 되고자 했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 건축가의 길을 걸었다. 그러던 중 로제티를 도와 옥스퍼드 유니온의 천장 벽화를 그리면서 모리스의 관심은 다시 순수 예술 쪽으로 옮겨갔다. 1861년 그는 동료들과 모리스 마셜 포크너사를 설립하여 스테인드 글라스, 가구, 자수 등을 제작하는 일을 했다. 그리고 1875년 그는 단독으로 모리스사의 경영자가 되어 런던 옥스퍼드 거리에 상점을 차렸다.
모리스는 19세기 자본주의와 도시화, 그리고 인간 소외 현상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산업화가 자연을 파괴하고 노동자들이 일에서 얻는 만족감과 성취감을 잃게 하며, 그 결과로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5-1. 미술공예운동
: 산업화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장인정신
윌리엄 모리스와 그 동료들은 값싸고 저속한 대량생산품에 질려 있었다. 그는 기계를 부정하고 중세시대의 수공예 생산방식으로 복귀하는 것을 주장했다. 존 러스킨과 애시비의 영향을 받아 대량생산품과 산업사회에 대한 대안으로 장인정신을 부흥시키는 운동을 하게 된 것이다. 1887년에는 미술공예전시협회가 조직되었고, 그 일원들은 공예길드와 공예위원회를 만들어 방치되고 있던 예술을 다시 활성화시키려고 했다. 윌리엄 모리스는 자연에서 얻은 소재로 각종 공예품을 아주 정교하게 장식했다. 라파엘 전파와 미술공예운동의 정신은 근대의 새로운 양식을 원하던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훗날 아르누보를 형성하는데 기여하게 된다.
5-2. 캘리그래피
: 중세시대에 뿌리깊게 박혀있던 모리스의 미적 기준
윌리엄 모리스는 캘리그래피와 책, 그중에서도 특히 15세기경의 서적에 관심이 쏠려있었다. 그는 인쇄소를 차리기로 결심했고, 서적 인쇄와 디자인에서 보기에 즐거운 인쇄물과 활자 배치를 만들길 원했다. 그는 기존 방식 대신 15세기 인쇄업자들에게 적합했던 바스커빌 이전 종이의 질을 가진 수제용지를 사용했다. 모리스는 읽기 어렵다는 이유로 모던페이스에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그래서 15세기 인쇄업자들의 작업을 기초삼아 자신의 서체를 디자인하기로 했다. 모리스는 니콜라 장송의 책에서 본을 뜬 후 마음에 들 때까지 두께를 변형했고, 나중에는 그 글꼴이 더 확연히 고딕체에 가깝기를 원했다.
5-3. 켈름스콧 출판사
: 예술과 수공예의 결합을 이끈 정교하고 아름다운 책
모리스는 1890년, 켈름스콧 출판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장송의 1476년 서체를 기초로 한 첫 번째 활자를 만들었고, 모리스는 그 활자를 골든체라고 이름 붙였다. 두번째 글꼴은 캑스턴이 발행한 <트로이전>의 판본을 위해 만들었는데, 블랙레터체를 읽기 쉬운 형태로 만들기 위한 시도였다. 켈름스콧 출판사는 미술공예운동과 비슷한 목적으로 만든 최초의 사설 출판사 중 하나였다. 그곳에서는 훌륭한 타이포그래피와 양질의 재료로 만든 인쇄물을 한정된 양으로 생산했고, 이런 사설 출판사의 활동은 많은 곳으로 퍼져나갔다. 그 영향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모리스는 극도로 장식적인 디자인의 책을 만들어 영국 최초의 인쇄업자 윌리엄 캑스턴에게 헌정했다. 베스트셀러의 원조격인 <황금전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발행되고 있다.
6. 버트램 굿휴의 첼튼햄체, 올드스타일
: 트렌드를 이끈 첼튼햄 올드스타일
19세기 활자 형식을 뜻하는 ‘올드스타일’이라는 용어를 ‘올드페이스’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여기서 중요한 ‘스타일’이라는 말은 ‘어떠한 방식으로’라는 뜻이다. 즉 원본이 아니라 원본을 모방하거나 비슷한 것을 의미한다. 19세기 초반에는 특히 모던페이스가 대부분의 출판물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으나 독점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버트램 굿휴는 올드스타일을 발전시킨 타이포그래퍼다. 그는 건축을 전공하면서도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을 가졌다. 1894년 메리마운트 출판사의 업다이크를 위해 모리스처럼 장송의 1475년형 활자를 바탕으로 글꼴을 디자인했다. 굿휴는 뉴욕 첼튼햄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잡지 제작에 관여하기도 했다. 올드스타일의 특징에서 영향을 받은 판독성 높은 활자 디자인으로 당대 가장 인기있는 미국활자를 만들었다. 첼튼햄 올드스타일은 다양한 종류를 사용할 수 있어 본문용 글꼴보다는 제목용 글꼴로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았다.
굿휴의 디자인은 특징이 뚜렷하다. 다소 폭이 좁고 세리프는 땅딸막하며, 엑스하이트가 작다. 이탤릭체에서 소문자 e와 p는 카운터가 열려 있고, s는 세리프가 아니라 물방울 형태로 획을 맺는 특징을 보인다.
7. 19세기의 활자 제작
: 미국의 천재 활자주조가, 린 보이드 벤튼
19세기에는 활자 주조와 조판에 굉장한 노력과 재능이 투입되었다. 그 중 활자 제작 발전에 가장 크게 공헌한 것은 린 보이드 벤튼의 혁신적인 제작방식과 장치다. 린 보이드 벤튼은 인쇄업과 연관 없는 집안 출신이었지만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창의력을 갖춘 미국 활자주조가였다. 그의 1882년 첫 발명품은 활자 사이를 띄우는 도구를 위한 복합적인 거푸집이었다. 그는 자동으로 양끝이 맡춰지는 조판 기계를 연구하기도 했다. 1884년, 벤튼의 활자 주조소에서는 그가 만든 최고의 발명품인 팬터그래프 기계를 이용해 강철로 만든 펀치를 깎을 수 있게 되었고, 이듬해 이 기계는 특허를 취득했다. 벤튼의 펀치조각기는 다른 활자주조소보다 더 다양한 적용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7-1. 미국과 영국의 파이카 표준화 작업
: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노력으로 고안된 새로운 표준화 체계
프랑스에서는 1775년에 이미 활자의 몸통과 관련 공목을 위한 표준치가 제정되어 다른 유럽 국가로 전파된 바 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에서는 19세기 말엽까지도 산업분야에서 표준화에 대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 문제는 많은 주조소들에게 기존 활자와 장비를 처분하고 값비싼 재정비 과정을 요했기에, 어느 정도 공적인 압력 없이 합의를 달성하기 어려웠다. 표준화 과정의 첫 단계는 대규모 활자주조소였던 마더 루스사가 1871년 시카고 대 화재로 건물과 장비, 거푸집, 활자를 잃게 된 것을 계기로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마더 루스 컴퍼니의 사원 넬슨 혹스는 인쇄업자들의 장비와 재료를 담당하며 매일같이 비표준화로 생기는 문제와 맞닥뜨려야 했다. 그는 활자 몸통 표준화 체계를 고안해냈고 다른 주조소들의 동참을 장려하는 일에 열성을 다했다. 그의 노력이 마침내 성과를 거두면서 다른 주조소들이 새로운 체계의 가치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발상은 1898년 영국에서도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17* 1871년의 시카고 대 화재와 수년에 걸친 홍보 이후에, 넬슨 혹스의 미국 활자크기 표준화가 마침내 영어권 국가에서 공식 채택되었다.
8. 테어도어 드 빈과 새로운 세기
: 세기말 전환기에 미국 인쇄산업에 큰 영향을 미친 인쇄의 대가
미국인 인쇄업자이자 인쇄역사가 테오도어 드 빈은 상업 인쇄의 상황에 관심을 기울였다. 윌리엄 모리스처럼 그는 상업 인쇄의 전반적인 기준과 모던 글자꼴의 퇴행이라고 여기던 현상에 대해 확고한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모리스와 달랐던 점이라면, 드 빈이 노련하고 식견높은 인쇄업자이며 활자 디자인의 상업적이고 실제적인 문제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19세기가 끝나갈 무렵 인쇄 산업의 발전에 막대한 진전이 있었다. 책, 잡지, 신문 등 다른 인쇄매체에 대한 수요가 기술 혁신을 촉진시킨 것이다. 기술적 조판이 보편화되기 이전, 19세기 신문이나 서적에는 평범한 모던 로만체가 여러 가지 쓰였다. 19세기 동안 생명력을 잃지 않은 영국 모던페이스는 세 종류가 있었지만 그들 모두 국제적으로 칭송받는 보도니체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드 빈은 모던 로만체의 형편없는 판독성과 작업 편의성 때문에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그는 근대의 기계인쇄에도 견딜 수 있는 활자를 만들고자 했다. 가는 획을 더 두껍게하고 세리프를 더 강하게 만들어 판독성을 향상시킬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한 단에 많은 수의 단어를 넣기 위한 폭이 좁은 글꼴 세트의 필요성도 주장했다.
미국 활자주조소의 기술감독 린 보이드 벤튼은 드 빈의 잡지 <센추리 Century>를 위한 활자 의뢰를 받는다. 벤튼의 마지막 디자인은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아들 모리스 풀러 벤튼은 일련의 변이형을 만들어냈고, 거의 30년이 넘도록 모리스 벤튼은 센추리체 변이형 18종을 디자인했다. 그 중 일부는 디지털화되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1924년에 발표된 센추리 스쿨북체이다.
드 빈의 활자 디자인은 새로운 디자인이라기보다는 기술발전에 발맞추지 않았던 모던페이스에 대한 기술적 향상이었다. 센추리 스쿨북체를 확대한 이미지를 보면 클라렌돈체의 성격을 담고있어 오늘날까지도 빈번하게 널리 사용하는 글꼴이 되었다는 점을 알수 있다 /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요약>
팻페이스와 슬랩세리프 이집션체 (1821), 로버트 손 (1754-1820)
– 팻페이스: 제목 활자의 조건을 충족시킨 최초의 제목 활자, 유럽 모던페이스 활용
– 이집션체: 고대 이집트의 건축 유물을 닮은 제목용 슬랩세리프
– 안티크체(1815): 손의 경쟁자 빈센트 피긴스가 제작한 제목용 슬랩세리프
슬랩세리프의 부흥 (20세기)
– 이집션체의 느낌을 유지한 멤피스체
– 산세리프의 기하학적 간결함을 추구하는 모더니스트의 미적 기준에 맞게 정제됨
클라렌돈체 (1845), 윌리엄 소로굿
– 새로운 형식의 슬랩세리프체
– 볼드체를 대변하여 글자를 강조하기 위해 디자인
미술공예운동, 켈름스콧 출판사, 골든체 (1890), 윌리엄 모리스 (1834-1896)
– 미술공예운동: 산업화와 기계를 부정하고 중세시대 수공예와 장인정신을 부흥시키기 위한 운동, 훗날 아르누보 형성에 기여
– 켈름스콧 출판사: 미술공예운동과 비슷한 목적으로 만든 최초의 사설 출판사
– 골든체: 장송의 1476년 서체를 기초
첼튼햄 올드스타일 (1894), 버트램 굿휴 (1868-1924)
– 올드스타일의 특징에서 영향을 받은 판독성 높은 디자인의 활자
– 당대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제목용 글꼴
– 20세기의 기하학적 정교함과 격식있는 유기적 형태의 조합이 특징
팬터그래프 기계 (1884), 린 보이드 벤튼 (1844-1932)
– 강철로 만든 펀치를 깎을 수 있는 펀치조각기계
영어권 활자 표준화 체계 (19세기 말)
– 마더 루스 컴퍼니의 넥슨 혹스가 고안한 새로운 활자 표준화 체계
– 영어권 국가에서 공식 채택
테어도어 드 빈 (1828-1914)
– 세기말의 전환기에 미국 인쇄산업에 큰 영향을 미친 인쇄업자이자 인쇄역사가
– 근대의 기계인쇄에 적합한 활자의 필요성 주장
– 린 보이드 벤튼이 드 빈의 잡지 <센추리>를 위한 활자를 디자인함
– 라이트브레인 가치 디자인그룹 박다운
[참고 서적]
로빈 도드, 『타이포그래피의 탄생』, 홍시&홍디자인(2010), p16~25.
[참고 자료]
네이버 블로그, 클라렌돈과 록웰 비교 이미지,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angyoosun&logNo=202423371&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포드리니어 초지기 이미지, http://americanantiquarian.org/millgirls/items/show/70
위키백과, 윌리엄 모리스, https://en.wikipedia.org/wiki/William_Morris
윌리엄 모리스의 골든체 이미지, https://michaelgimberblog.com/2017/11/10/william-morris-his-golden-type/
윌리엄 모리스의 <황금전설> 이미지, https://www.britishmuseum.org/research/collection_online/collection_object_details/collection_image_gallery.aspx?assetId=1090027001&objectId=3386852&partId=1
팬터그래프 기계 이미지, http://www.galleyrack.com/images/artifice/letters/pantocut/mergenthaler/
미국 활자크기 표준화 체계 이미지, https://www.flickr.com/photos/sos222/5809620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