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History 09
대학 입시 시절, 저는 미술로 대학을 가기 위해 미술학원을 다녔습니다. 그 당시 초현실주의가 무언지도 모르는 저에게 학원에서는 카피해도 좋다는 두 명의 거장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첫 번째는 백신스키였고, 두 번째는 르네 마그리트였습니다. 저와 르네 마그리트의 첫 만남은 다소 자의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위의 그림은 <겨울비>라는 작품으로 제가 학원에서 카피한 첫 작품입니다. 제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기분은 “기이하다”였습니다. 훗날 하나의 미술 사조로 접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그 기이한 수수께끼가 풀리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들었음을 고백합니다.
대입 시절 느꼈던 그 기이함의 근원은 바로 르네 마그리트가 자주 사용했던 데페이즈망(Dépaysement)이라는 표현 기법 때문이었습니다.
데페이즈망은 추방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초현실주의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 기법입니다.
조금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특정한 대상을 상식의 맥락에서 떼어내 이질적인 상황에 배치함으로써 기이하고 낯선 장면을 연출해 보는 이로 하여금 신선한 충격을 주는 것>입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들 중 꽤 많은 작품은 데페이즈망으로 해석이 됩니다.
그럼 데페이즈망과 관련 깊은 그림들 위주로 우선 살펴보겠습니다.
위의 그림은 1928년에 제작된 <연인들>이라는 작품입니다.
1921년에 르네 마그리트의 어머니는 강에 몸을 던져 자살했는데 어린 그는 어머니의 시체를 건져내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입고 있던 드레스가 얼굴에 덮인 채 건져진 어머니의 이미지는 내면에 깊은 충격으로 자리 잡았을 것입니다. 그 사건은 후에 그의 그림에 많은 영향을 남깁니다. 위의 <연인들>은 그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개인적 가치>라는 작품입니다.
전형적인 데페이즈망의 표현 기법이며 사물의 크기를 기존의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보다 키워 묘한 느낌을 연출했습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속에는 다양한 모양의 <공>이 등장합니다.
마그리트는 “말방울”에서 공의 모티브를 따왔다고 합니다. 그 당시 20세기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말의 목에는 방울이 달려있었는데, 방울은 그러한 과거의 소리를 회상하는 매개체의 역할로 그의 작품에서 종종 등장하곤 합니다.
위의 그림은 <데칼코마니>라는 작품입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는 양복 입은 신사는 마그리트의 가족사와 관계있습니다.
르네 마그리트는 사실 양복 재단사와 모자 상인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에서 등장하는 양복 입은 신사는 르네 마그리트 본인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르네 마그리트가 즐겨 사용한 표현기법인 데페이즈망으로 해석이 안 되는 그림이 있습니다.
바로 위의 < 이미지의 배반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이라는 작품입니다.
그림을 보면 백과사전에나 나올법한 딱딱한 기법으로 파이프가 하나 그려져 있고 바로 밑에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필기체로 쓰여 있습니다.
이 그림을 통해, 르네 마그리트는 미술가가 대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대상의 재현일 뿐, 그 자체일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르네 마그리트는 또한, 사물이 이름을 가진다고 해서 우리가 그보다 더 적합한 이름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선언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위의 시는 김춘수의 유명한 <꽃>이라는 시입니다.
꽃에 나오는 시의 내용 중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꽃이라는 하나의 이름 즉 기표(Signifiant)가 있습니다. 만약 시 속의 화자가 꽃이라고 명명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오래도록 그저 익명의 존재로만 남겨지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꽃이라고 부르는 소리 즉 기표(외적 형식)는, 사회적 합의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뿐 꽃이라는 존재가 담지하고 있는 내적인 의미(기의)와는 관계성이 떨어집니다.
즉 기표(외적 형식)와 기의(의미) 사이에는 끊어지기 쉬운 자의적 연결고리가 존재합니다.
즉,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보고 느끼는 수많은 기호 체계들은 이러한 자의적 연결관계 아래에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 언어철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는 기호의 탄생을 기표(Significant)와 기의(Signified)의
자의적 결합이라고 정의 내렸습니다. 그는 더 나아가 이러한 자의적 관계에서 벗어나 기표와 기의가
서로 충분히 반영하는 유기적인 관계에 놓인 상태를 상징이라고 규정짓습니다. )
이러한 자의적 연결성에 대한 여러 가지 근거 중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들은 번역에 관한 것입니다. 가령 우리나라의 “알쏭달쏭”이라는 말을 영어로 번역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intricate”나 “motley”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알송 달쏭”이라는 말속에 담긴 기의(의미)를 한 스푼도 흘리지 않고 모두 옮겨 담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위의 기호학적 관점에서 드러나듯, 르네 마그리트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인 세상에 대한 반론을 제기합니다.
다시 한번 위의 파이프 그림을 봅시다. 가까이서 보니 픽셀로 이루어진 망점들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이 정말 파이프가 맞나요?
이렇듯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은 먼저 우리의 상식적인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는 평소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사물과 관습화 된 사고에 이의를 제기하고 뜻하지 않은 충돌을 작품 속에 펼쳐 놓습니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신선한 경험이며, 그의 작품에서 만나게 되는 낯섦과 수수께끼와 같은 의문은 보는 우리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줍니다.
– 라이트브레인 가치 디자인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