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과 선

by 백승주

이윽고 그는 2호선 신촌역 6번 출구 앞에 도착했다. 계단을 내려가려 할 때, 저 밑 계단 아래에서 멈칫하는 중년의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잠시 자신이 올라가야 할 계단을 가늠해 보더니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이내 무거운 걸음으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오늘 아침의 출근길에서의 나의 표정과 발걸음이 저 남자와 같았으리라, 하고 그는 생각한다.


계단을 내려가니 달콤한 머핀 냄새와 커피 향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프랜차이즈 머핀 가게가 보인다. 계산대에서 주문을 하는 사람들을 보다가 그는 잠시 망설인다. 그러나 그는 이내 아니야 오늘 벌써 다섯 잔이나 마셨잖아하며 생각을 고쳐먹는다. 그래 커피 다섯 잔으로 버텨야 했던 피곤한 하루였지. 머핀 가게를 지나 그는 개찰구로 향한다. 카드를 찍자 ‘띡’하고 통과를 허락하는 효과음이 들린다. 지하철이 방금 도착했는지 빽빽하게 줄을 지어 계단을 올라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서울에 올라와서 처음으로 지하철 역사를 걸을 때의 충격을 기억하고 있다. 신당역 환승 통로였던가. 사람이 몇 명 없는 환승 통로를 걸어가다가 순식간에 사람들이 홍수처럼 몰려드는 광경을 보고 그는 얼어붙고 말았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겨울이라 온통 검은색 톤의 외투를 입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쥐떼 같아’라고 중얼거렸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피리 부는 사나이만큼이나 우아한 동작으로 사람들을 피하면서 정거장으로 내려간다. 그 많고 많은 사람들은 이제 그에게 아무런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대신 그는 다른 이들과 아슬아슬하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걸어가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이런 기술은 대도시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익혀야 하는 것이다.


지하철에 올라탄 그는 자신이 만들었던 지하 도시와 인생 최초의 미스터리를 떠올린다. 다섯 살 때였던가, 어느 날 그는 동네 공사판에서 높이 쌓여 있는 모래더미를 발견했다. 묘한 설렘에 빠진 그는 신발을 벗고 앉아서 모래를 파기 시작했다. 마른 모래가 잡히던 손에 금세 축축한 모래가 잡혔다. 어느 정도 파내려 간 그는 이제 반대편에서 모래를 팠다. 얼마 후 갑자기 손에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았다. 터널과 터널이 연결된 것이다. 희열을 몸을 떨며 아이는 이제 다른 방향에서도 조심스럽게 터널을 팠다.


여러 개의 터널이 연결되고, 터널과 터널이 만나는 지점은 어느덧 커다란 지하 광장이 됐다. 이제 아이는 신발을 벗어 터널 속으로 최대한 깊숙이 집어넣는다. 지하 광장을 통과한 신발을 다른 쪽 터널에서 꺼낼 요량이다. 아이는 다른 쪽 구멍으로 가서 다시 손을 집어넣고 신발을 꺼내본다. 그런데 어라? 신발이 잡히지 않는다. 당황한 아이는 다시 처음 신발을 집어넣었던 구멍에 손을 넣어본다. 아까까지만 해도 손끝으로 느껴지던 신발이 느껴지지 않는다. 구멍에 얼굴을 대고 신발을 있는지 확인해 보지만 어두운 구멍 속에서 보이는 것은 없다. 그렇게 그는 신발을 잃어버렸고, 벗어 놓았던 신발 한 짝만 신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 신발은 어디로 갔을까? 모래더미 속 지하 광장과 다른 세계가 연결되어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이런 지하철도 그럴지 모르겠다. 지하 세계란 모두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그가 자기 인생 최초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고민하고 있을 때, 정차 역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지하철에서 내린 그는 사람들을 따라 계단을 올라간다. 개찰구에 교통카드를 찍지만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통과해도 될지 잠깐 망설이다가 그는 여기가 상하이 10호 선, 우지아창(五角場)역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개찰구를 나온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인파를 따라간다. 우지아창역 4번 출구 계단 아래에 선 그는 잠시 망연자실 계단 끝을 쳐다본다. 갑자기의 그의 눈의 커진다. 계단 끝 쪽에 어린아이의 낡은 신발 한 짝이 보인다. 그는 터덜터덜 계단을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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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서 지하철을 탈 때 이런 몽상을 할 때가 있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상하이의 지하철역에서 내리는 한 남자의 이야기. 그만큼 상하이의 지하철이 내게 낯설지 않다는 뜻이다. 상하이가 생경한 여행자라 할지라도 거대 도시에서 지하철로 통근을 했던 사람들은 상하이 지하철의 익숙한 풍경에 안도감을 느낄 것이다. 지하철 안에서 서로를 의식하지 않는 듯 의식하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그렇고, 앉을 자리라는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그렇다. 수시로 안내 방송과 노선도를 대차대조하면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 확인하는 모습도 그렇고.


남태평양 마셜 제도의 한 부족은 야자수 막대로 만든 전통 지도인 ‘스틱 차트(stick chart)’를 가지고 바다를 건넌다. 한 다큐멘터리에서 노인이 자신의 손자에게 스틱 차트를 설명한다. 이 야자수 막대기는 바닷길이란다, 막대기 위에 붙어 있는 돌이 보이지? 이건 섬이야, 이 조개는 환초를 가리키는 거고. 이렇게 구부러진 막대는 조류의 방향을 말하는 거란다. 그리고 조심해라. 여기 끊어진 막대는 큰 파도가 있어서 가지 못하는 곳이야. 노인이 소년에게 건네는 스틱차트 안에는 태평양이란 거대한 바다가 들어 있다. 이제 소년은 카누를 타고 스틱차트 하나에 의지해 바다를 건널 것이다.


마셜 제도의 소년은 스틱차트를 들고 남태평양을 건너지만, 상하이(上海)라는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은 지하철 노선도를 들고 이 바다를 건넌다. 상하이는 서울의 10배가 되는 도시여서, 지하철역도 서울의 보통 지하철역의 10배 만큼 크다. 하지만 결국 상하이도 서울과 마찬가지로 지하철 노선도 한 장에 들어가는 도시이다.


거대한 도시를 점과 선의 묶음으로 만들어 놓은 이 한 장의 지도는 마셜 제도의 스틱 차트와 묘하게 닮아 있다. 상하이로 처음 흘러들어온 사람들에게 지하철 노선도의 점은 곧 섬이고, 선은 바닷길이다. 아날로그로 만들어진 지상 위의 상하이에서 조난당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점과 선으로 만들어진 디지털 세계인 지하철로 모여들고, 안전하게 바다를 건너 원하는 섬으로 간다.


내게는 서울도 그랬었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내게 신촌역과 이대역은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 곳이 아니었다. 방향 감각을 잃고 조난당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이대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신촌역으로 갔다. 지금도 내게 서울은 섬들의 모임처럼 느껴진다. 물론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보다 그 섬들이 커지기는 했지만.(예를 들어 신촌과 홍대, 이대는 같은 섬이다.)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거대 도시는 험난한 바다와도 같고,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고 점과 점, 아니 섬과 섬 사이를 이동한다.


약 90 여 년 전 프로프(Propp)라는 러시아의 학자는 100여 개의 민담들을 모아 마녀의 머리카락, 용의 발톱과 함께 거대한 항아리에 넣고 오랫동안 푹 끓였다.(농담이다) 그리고 그 항아리에서 모든 마법의 이야기의 골격을 이루는 31개의 뼈대들을 건져냈다. 그 뼈대 중 하나가 ‘장소의 이동’이다. 마법 이야기의 주인공은 어디론가 가야만 한다. 그가 이동하지 않으면 마법 이야기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실 이 세상 모든 이야기는 여기가 아닌 어디론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하철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곳이다.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러 간다. 나 또한 서울의 지하철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만들었던가.


상하이의 10호선 지하철 칸. 나와 같은 칸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본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함께 탄 이들의 이야기를 추측해 본다. 내 맞은편에는 왜소한 체격에 주름진 얼굴을 한 남자가 앉아 있다. 그가 입은 청바지는 한눈에 보기에도 떼가 많이 타있고, 신발 또한 검은 기름으로 절어 있다. 그는 자신의 상체만한 크기의 박스를 소중하게 안고 있었는데, 그 남자의 외모와는 달리 반짝반짝 빛나는 그 박스 위에는 언뜻 보기에도 꽤 비싸 보이는 하얀 색 드론과 무선 조종 장치의 사진이 박혀 있었다. 아마 그 남자는 하루하루 힘겨운 노동을 팔아 어렵게 마련한 돈으로 아이를 위한 선물을 샀으리라. 남자는 뿌듯한 표정으로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다. 아빠가 너 사고 싶어 했던 드론 사서 가는 길이야. 뭐 이런 말일까? 남자의 모습을 보다 갑자기 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뜨거움을 겨우 주워 삼킨다.


예전 서울에서 지하철을 탔을 때,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추측하기는 했어도 그들과 나는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박정희 시절 중앙정보부에서 부장님을 모셨다면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노인과, 전화로 자기 재산이 얼마 있다고 크게 방송하는 중년 남자, 서로 쉴 새 없이 욕을 하면서 낄낄대는 고등학생들을 이해하기에는 나는 너무 바쁘고 피곤했다.


그러나 지금, 상하이의 지하철 칸에 같이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나의 또 다른 얼굴을 찾는다. 나는 저기 앉아서 초조함에 책을 펴고 공부하는 대학생일 수도 있고, 그 옆에서 전화로 뭔가 따지고 있는 중년 남자일수도 있다. 아니면 부지런히 같이 앉을 자리를 노리는 저 아이의 엄마일 수도 있다. 이렇게 상하이의 지하철은 나와 나를 닮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고 어둠 속을 흘러간다.


세계의 대도시들은 그 밑에 지하철이라는 점과 선으로 이어진 영원한 밤의 도시를 하나씩 품고 있다. 그리고 이 점과 선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흐른다. 그것이 신파이든, 아방가르드이든, 지루한 일상의 이야기이든. 상하이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지하철이 있는 도시에 산다는 것은 그 밤의 도시의 시민이 된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밤의 도시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을지도.


오늘 밤은 몰래, 상하이 10호선 우지아창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신촌역에 다녀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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