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또는 외국인 되기

by 백승주

지금 당신에게는 무엇이 보이는가?


외국의 공항에 내리는 순간은 일상의 자동조종장치(autopilot)가 꺼지는 순간이다. '눈 감고도 갈 수 있는 길'은 이제 없다. 대신 다른 리듬과 호흡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해독할 수 없는 문자와 언어 속으로 걸어가는 순간, 나는 내 눈 앞에 벌어진 광경을 결코 외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적어도 상하이에 있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될 1년 동안은. 나는 여기에 관광객으로 온 것이 아니다. 나의 동공은 끊임없이 확대된다.

상하이 푸동 공항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떠나온 한국의 서늘한 가을비가 아니라 열기와 함께 투명한 막을 만드는 수증기를 품은 비. 그 비는 내가 비로소 상해가 아닌 상하이의 시공간에 속에 있음을 알려 주었다. 비행기에 몸을 실은 두 시간은 나를 내 머릿속의 ‘상해’에서 실재하는 ‘상하이’로 데려왔다.

상해. 김구의 도시. 20세기 초 수많은 혁명가들의 암투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신화 속 도시. 그런데 여기는 상해가 아닌 상하이다. 붉은 오성기를 자랑스럽게 들고 있는 코 묻은 아이, 그리고 허름한 옷차림을 한 그 아이의 부모가 외국 명품으로 세련되게 치장한 남녀 옆에 나란히 서서 지하철을 타는 곳.

내가 상하이에 있음을 알려주는 것은 공기 뿐만은 아니다. 초현대식 건물 위에 빨간색으로 쓰여 있는 힘찬 필체의 한자들 또한 나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간체자로 쓰인 글자 중 내가 아는 것들을 띄엄띄엄 뽑아 글귀들을 풀어보려 하지만 제대로 풀리는 것은 많지 않다. 그 글자들은 고대 시대부터 존재했지만 멸종하지 않은 ‘살아있는 화석’들이 현대의 도시를 활보하는 것처럼 보인다.

‘니하우’라는 인사말 외에는 중국어를 하나도 익히지 않은 내게, 이 도시에 사용할 수 있는 언어는 없다. ‘아메리카노’라는 단어가 스타벅스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나는 ‘다리오 마에스트피에리’라는 무시무시하게 외우기 힘든 이름을 가진 영장류 학자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는 영장류 게임이라는 책에서 서로 모르는 붉은 원숭이 두 마리를 한 시간 동안 같은 우리에 가두어 놓는 실험을 소개한다.

우리에 갇힌 원숭이들이 허공을 쳐다보는 등 서로 모르는 척 무시한다. 그러다가 첫 번째 특징적인 행동을 보이는데 그 행동이란 바로 이빨을 드러내며 웃음을 보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표시이다. 그리고 원숭이들이 마지막으로 보이는 행동은 서로의 털을 골라주는 것이다. 털고르기를 통해 서로의 유대감을 키우는 것이다. 다리오 마에스트피에리(여전히 외우기 힘들다)는 이 실험을 교묘하게 우리 인간의 경험과 연결한다. 그 경험이란 바로 엘리베이터에서 모르는 사람과 조우하는 일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들은 허공에 있는 어떤 가상의 지점을 응시한다. 그러다 긴장감을 견디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요컨대 털이 없는 인간에게 말하기는 원숭이의 털고르기와 같은 행위이다.

이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한 중년의 여성이 나에게 중국어로 무엇인가를 물어본다. 길을 묻는 모양이다. 미안합니다. 바보 같겠지만 나는 니하우라는 중국어 밖에 할 줄 몰라요. 이렇게 말해 주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나는 어쩔 줄 몰라하다 ‘이빨을 드러내며’ 어색한 웃음만 지어 보인다. 내가 영장류의 일원임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외국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털이 없는 영장류임을 확인하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순도 100%의 외국인. 이런 외국인이 되는 모험은 사실 내가 열망했던 것이기도 하다. 서버이벌 중국어조차 익히지 않고 중국땅을 밟은 것은 ‘100%의 외국인’의 눈에 무엇이 보이는지, 그리고 그 눈으로 무엇을 볼 수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을 때 내 눈에 새롭게 보이는 것은 별로 없었다. 지하철을 타도 스마트폰만 들여다 볼 뿐 아무 것도 보지 않았다. 같은 출퇴근 길, 같은 식당에서의 점심 식사, 언제나 비슷한 주말. 모든 것이 변하고 새로웠을 터이지만 나의 눈은 바라보는 것을 거부했었다.

그러나 100%의 외국인은 다르다. 그는 봐야만 한다. 봐야할 것이 너무 많다. 그는 그의 눈을 바꿔야 한다. 언어를 잃어버린 외국인은 제대로 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외국인이 된다는 것은 몸을 바꾸는 일, 즉 변신을 하는 일이다.

순도 100%의 외국인이 된 나는 새로운 눈을 가지고 이 땅 상하이의 풍경을 부지런히 바라보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당신에게는 무엇이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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