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W MUST GO ON

Quelle âme est sans défaut?

by 백승주

상하이 구푸루 30-1. 401호. 내가 살고 있는 집이다. 이 집을 먼저 거쳐 갔던 선배 선생님들은 이 집이 리모델링이 되어 좋아졌다고 했다. 전에 없던 세탁기와 건조기도 생겨 생활하기에도 편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처음 문을 열고 들어가자, 베이지색 페인트칠이 된 넓은 거실과 침실이 보였다. 작은 방 장롱 안에서는 선배 선생님들이 남기고 간 온갖 세간살이들이 쌓여 있었다. 큰 방 두 개와 거실. 침실 탁자 옆에는 고풍스러운 중국 도자기 모양의 스탠드. 두 달 간 비어있던 집이라 엄청나게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지만, 내가 자취 생활을 할 때 기거했던 집들을 생각해보면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었다. 거실 밖에는 베란다가 있었는데 베란다는 얇은 유리창이 달린 섀시 문으로 거실과 연결되어 있었다. 섀시 문을 열고 나가려 할 때 문틀에 쓰인 영어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THE SHOW MUST GO ON. 글자에서 장난 끼가 느껴졌다. 이런 문장을 누가 썼을까? 선배 선생님들이 이런 글을 썼을 리는 없고...아마 오래 전에 이 집에 살았던 외국인 교수가 썼을까? 이 집을 떠나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마지막으로 이런 글을 남겼을까? 떠날 때는 어떤 마음, 어떤 기분이었을까? 여러 가지 상상이 머릿속에서 꼬리를 물었지만 관리인의 안내를 받느라 나는 이내 꼬리 물기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그 쇼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 집에서 진행되는 쇼는 다름아닌 ‘고장 쇼’였다. 그러니까 이 집에서는 한 주나 두 주 간격으로 물건들이 고장이 난다. 만약 이어달리기 대회 대신, 이어서 고장 나기 대회가 있다면 이 방은 거뜬히 우승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작은 인터넷 무선공유기였다. 처음에는 중국 당국이 한참 인터넷 검열에 열을 올리던 시기여서 인터넷 접속이 안 되나 싶었다. 한참을 지난 후에야 공유기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관리인에게 공유기가 고장났다는 것을 설득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공유기는 영혼이라도 있는 것인지 내가 집에 혼자 있을 때는 인터넷 신호를 잡지 못하다가, 관리인만 들어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빵빵하게 신호를 잡아냈다. 교체해달라고 말을 했지만 관리인은 알았다는 시늉만하고 교체를 해주지 않았다. 결국 한국에서 사온 무선공유기를 설치하면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커피포트, 청소기, 세탁기, 건조기, 전등, 방충망, 벽면의 전기 콘센트, 에어컨, 라디에이터, 전기장판, 스탠드...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노트북까지, 화려한 고장 쇼는 계속되었다. 고장 나는 패턴도 비슷해서, 세탁기나 건조기는 되다 안 되다를 반복했는데 희한하게 관리인이 오는 시점에는 작동이 잘 됐다.


이상한 일도 반복이 되면 질서가 된다. 처음에는 짜증이 났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고장 나는 게 이 집의 질서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는 평정심을 유지한 채 반드시 고쳐야 할 것들은 고치고 포기할 것들은 포기했다. 풍향 조절이 안 되는 에어컨에 두꺼운 종이를 끼워 풍향을 조정하는 것처럼 어떤 것들은 임시방편을 쓰기도 하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이번 주에 생긴 고장과 그 대책을 궁리하다보면 어쩌면 이 집이 내게 이런 방식으로 말을 걸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밤이 되면 방에서는 규칙적으로 뚝, 뚝하고 꺾이는 원인 모를 소리가 난다. (아마 천정에 붙어 있는 나무나 벽에 붙어 있는 가구들이 수축하면서 나는 소리가 아닐까?) 아침이면 바닥에는 자잘한 시멘트 파편들이 방구석에 떨어져 있는데, 괴기스럽지는 않아도 처음에는 무척 거슬렸던 그 소리와 광경도 이제는 이내 익숙해졌다. 그리고 은연 중에 프랑스 시인 랭보의 이 말을 떠올리는 것이다.


Quelle âme est sans défaut? 흠결(결함)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그리고 이 말은 나를 대학원 시절의 첫 번째 자취방으로 데려 간다.


삶의 총합은 아닐지라도, 삶의 일정한 부분 집합은 내가 살았던 방의 기억이다. 만약 삶의 기억이 건물로 지어져 있다면, 그 건물의 각 층은 자신이 살았던 방들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각각의 방에서는 각각의 다른 ‘나’들이 그 시절의 사건들을 재현 중일 것이고. 삶을 추억하는 일이란 그 건물 안의 층과 층 사이를 오르내리고, 방과 방 사이를 뛰어다니는 일이다.


그 방들 중 대학원 시절 살았던 서울 이대역 뒤에 있던 반지하 방에 잠깐 들러 본다. 반지하라고 하지만 사실상 지하라서 낮에도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던 방. 화장실이 없어서 볼일을 보려면 계단을 올라가 옥외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던 방. 펌프가 고장 나면 샤워실로 하수가 역류했던 방. 그 펌프 점검한다며 집주인이 예고 없이 수시로 문을 따고 들어오던 방. 베니어판 한 장으로 만든 벽 너머로 알코올 중독인 옆집 아저씨의 울부짖음이 밤낮으로 들리던 방.


그 방에 들어간 지 한 달 반쯤 조금 넘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아침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이었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낼 상황이 아니었다. 며칠 뒤 월세를 내야 하는데 잔고는 5만원 밖에 안 남아 있었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아르바이트 자리는 도무지 구해지지 않았던 때였다. 아무튼 그 날 아침 화장실에 가려고 계단을 올라가려는데 이미 볼 일을 보고 내려오는 룸메이트가 계단 저 위쪽에서 뭔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SJ야.”

“어?”


잠시 침묵.


“눈 온다. 그것도 완전 예쁜 함박눈.”


또 잠시 침묵.


“씨바.”


둘의 입에서 동시에 이 말이 튀어 나왔다.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욕설에 우리는 멋쩍어하면 웃었다. 계단 위로 올라와 보니, 정말 함박눈이 곱디곱게 온 세상에 쌓여 있었다. 하나 그 아름다운 풍경은 나나 내 친구와는 관계가 없었다.


그리고 그 당시 내가 부적처럼 마음에 품고 다녔던 말 중에 하나는 바로 앞서 말했던 랭보의 시구였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Quelle âme est sans défaut?’라는 말을 ‘흠결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가 아니라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는 뜻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나는 이 말을 세상에 상처를 입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으니 버티자고, 버터야 한다고 주문하는 시구라고 멋대로 해석했었다.


가슴 속에 너울대던 불안함이 목구멍을 넘어와 욕설로 변하는 시기였다. 위악과 냉소는 나의 무기였다.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으니 날카로운 칼처럼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내가 위악으로 똘똘 뭉쳐있었구나, 그 위악이 나를 참 힘들게 하는구나라는 자각을 조금씩이나마 하게 된 건 직장에 들어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동료들을 만나면서부터 인 것 같다. 그래도 그 위악은 내게서 잘 떨어져 나가지를 않았다. 랭보 시의 뜻이 ‘상처’가 아니라 ‘흠결’이나 ‘결함’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잘 와 닿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참 흠결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행했던 어처구니없는 실수와 행동들을 떠올리면서 나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리기도 한다. 이제 나는 세상이 내게 준 상처보다는 나의 흠결을 더 부끄러워하는 남자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흠결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는 시구로 제멋대로 위안을 받는 남자.


자기의 흠결이 보이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나의 흠결을 받아주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위악을 떨 때는 몰랐던 고마움 또한 생겨난다.


‘défaut’라는 말을 ‘상처’에서 ‘흠결’로 읽어내기까지 20년이 걸렸다. 아직도 위악을 떨 때가 있지만 그 때마다 사람들이 흠결 많은 나를 어떻게 받아줬는지 떠올린다. 그 많은 흠에도 ‘불구하고’ 나를 받아준 아내, 친구들, 동료들. 그래서 조금 더 웃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내 눈에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흠결도 이해해 보려 노력한다. 아니, 프랑스의 위대한 시인이 흠결 없는 영혼은 없다지 않는가?


그러니까 내 말은, 집 안의 물건이 고장 나기로는 우승감인 상하이의 이 집을 조금은 좋아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어쩌다보니 정이 든 것인지 모르겠지만.


약 한 달 반 동안 이 집을 비운다. 그 사이에 이 집의 물건들은 또 무엇인가 고장이 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흠 많은 삶도 계속 될 것이다.


하지만, 흠결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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