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와 미궁의 세계사: 1933 라오창팡(老场坊)

by 백승주

1. 1981년, 제주



제주시의 한 골목. 한 아이가 같은 길을 한참동안이나 왔다갔다하고 있다. 처음에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던 아이의 얼굴에는 서서히 두려움이 깃들기 시작한다. 아이는 조금 전까지 분명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길을 당당하게 걷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모르는 공간에 갇혀 버린 것이다. 만약 아이가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표현을 알았다면 그 말을 썼을 것이다. 모르는 중년 남자가 아이를 보더니 귀엽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이의 머리를 쓱 쓰다듬고 지나간다. 중년 남자가 사라진 골목 저편은 아이가 전혀 모르는 곳이다. 그곳으로 가면 분명 길을 잃을 것이다. 욕설을 알면 좋았겠지만 아이가 알고 있는 욕은 없다. 대신 두려움과 후회가 아이의 마음을 뒤흔든다. 아이는 다시 한 번 자신이 들어왔다고 기억하는 골목 입구 쪽으로 뛰어가 본다. 그러나 역시 입구는 사라지고 없다. 그저 막다른 길이다.


아이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2. 기원 전 3500년 경, 지중해 크레타의 미궁



괴물은 횃불을 들어 청동 거울을 비춘다. 일그러진 황소의 얼굴이 거울 속에서 어른거린다. 차라리 내가 온전한 황소였다면. 도살당할 운명이지만 차라리 그게 더 낫지 않았을까? 익숙하지만 여전히 낯선 그 얼굴을 보면서 괴물은 중얼거린다. 괴물의 바람과 달리 괴물은 황소의 얼굴에 인간의 몸을 하고 있다. 괴물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만 자신의 얼굴과 몸 사이의 모순을 설명하지 못한다. 괴물은 자신이 기거하는 방을 알지만 매일 무한히 번식하는 것 같은 방과 복도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어렸을 적 자신에게 장난감을 만들어주던 다이달로스의 꾐에 빠져 이곳에 들어온 지 27년째다. 9년마다 괴물의 먹잇감인 제물들을 들여보냈으니, 괴물은 이제 곧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괴물은 배고픔을 해결하기 보다는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괴물은 소년 소녀들을 마주할 때마다 말을 걸었으나, 제물들은 괴물의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잃었다.


멀리서 길을 잃은 제물들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 미궁으로 들어온 제물들은 사력을 다해 도망칠 터이지만, 결국 괴물을 만나게 될 것이다.



3. 기원 후 8년, 로마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황소의 얼굴에 인간의 몸을 한 아이에 대해 쓰고 있다. 평생 연애시를 쓰던 오비디우스는 어쩐 일인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미움을 샀고, 그래서 그리스 신들과 괴물들의 이야기를 써서 황제의 마음을 바꾸려 한다. 그가 지금 쓰고 있는 아이는 지중해의 크레타 섬에서 태어난 미노타우로스. 부정한 왕비를 어머니로 둔 이 아이는 왕궁의 수치였고, 아이의 (의붓) 아버지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그 유명한 이카루스의 아버지)라는 장인에게 명해 그 유명한 미궁을 만들어 아이를 가두어 버렸다. 그리고 9년마다 아테네로부터 14명의 소년 소녀를 공물로 바치게 했고, 미궁 속으로 들어간 소년 소녀들은 미궁 속을 헤매다 미노타우로스의 먹잇감이 되었다. 그러나 세 번째 공물로 바쳐진 제물들 속에 섞여 들어간 영웅 테세우스는 크레타의 공주 아리아네드의 도움을 받아 미노타우로스를 해치우고 무사히 미궁을 빠져 나온다.


이 이야기를 듣다보면 누구나 미궁의 구조를 상상하게 된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이 미궁은 ‘통로를 분간하는 표지가 될 만한 것은 모두 뒤헝클어 버리고, 수많은 우회로와 굴곡으로 사람들의 눈을 홀리는’* 곳이었다. 이런 미궁 속에 갇힌 인간의 공포를 구경하는 것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수많은 작가들과 건축가들은 스스로 다이달로스가 되어 자신의 책과 영화, 건축물을 미궁으로 만들고 자신의 피조물들을 집어넣었다.

이런 다이달로스들이 만든 작품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1933년 상하이에도 있었다.



4. 2017년, 상하이


상하이 지하철 10호선 하이룬루역(海伦路站)을 나와 후줄근한 내복 빨래가 걸려있는 서민 주택가 스쿠먼 사이를 10분 정도를 헤매다보면 유럽식 건물의 외양을 한 낡은 공장 하나를 만나게 된다. 1933년에 지어진 이 건물의 이름은 ‘늙은’(老) ‘공장’(场坊)이다. 그러나 그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이 건물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통유리 너머 크로스핏짐(Crossfit Gym)에서 멋진 몸매의 남녀들이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바로 옆 스타벅스에서는 사람들이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다. 1층 입구로 들어가면 걸어오면서 봤던 늘어진 내복에 대한 기억을 한 방에 날려버릴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인테리어를 한 갤러리와 레스토랑들이 시선을 끈다. 건물 내부에서는 소위 인생 사진을 건지려는 젊은 남녀들이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서성거린다.


사각형 모양의 공장은 내부에 또 하나의 구조물인 원형 건물을 숨기고 있다. 각 층은 완만한 경사로와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고, 건물의 외부와 내부인 원형 건물은 26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5층 밖에 되지 않지만 이 건물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길을 잃어버린다. 만약 이 건물 안에서 일행과 헤어진다면 전화로도 서로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설명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 건물을 찾은 지 세 번째이지만 나는 또 길을 잃었고, 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공간들을 발견했다. 올라가는 계단이 곧 내려가는 계단이 되고, 유한하지만 무한하고, 어디론가 가는 것 같지만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는 에셔의 그림을 현실화시켜 놓은 것 같은 이 건물은 그 자체로 혼돈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기꺼이 그 매혹적인 혼돈 속에서 길을 잃으려 이 건물을 찾는다.


여기는 도살장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이 건물을 찾았을 때 나는 넌지시 이 말을 같이 온 일행에게 전했다.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일행들의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일행들의 머릿속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마주쳤을 때처럼 복잡해졌을 것이다. 하늘에 흩뿌려진 별들 사이에서도 사자니 전갈이니 하며 구체적인 형상들을 찾아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에, 사람들은 자신이 걷는 거리와 건물에서도 이야기를 ‘읽어내려’ 한다. 그러나 눈앞에서 보이는 건물의 화려한 이미지와 ‘도살장’이라 단어가 충돌하는 순간(거기다가 1933년이라는 시간이 더해지면) 라오창팡이라는 건물은 읽어내기 힘든 복잡한 텍스트가 된다. 내가 세 번이나 이 건물을 찾은 것도 어떻게든 이 건물을 읽어보고 싶은 심정 때문이었다.


영국의 건축가에 의해 설계되어 1933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한 때 아시아 최대의 도살장이었다. 늙은 공장의 생산품은 다름 아닌 ‘죽음’이었던 것이다. 소들은 감옥문처럼 보이는 4개의 문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경사로를 따라 만들어진 ‘우도’(牛道)로 걸어 올라갔다. 미끄러지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긴 홈이 파여 있는 그 길 위로 올라간 소는 꾸역꾸역 뒤에서 밀고 올라오는 다른 소들에게 밀려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다리를 건넜다. 라오창팡이 가지고 있는 구불구불 복잡한 구조는 소떼들의 정체를 막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었다.


건물 1층에 있는 안내문에서는 4각형으로 된 외부 건물이 땅을, 원형인 내부 건물은 하늘을 상징한다며, 1933 라오창팡이 중국 사상을 반영하여 만들어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눈썰미 좋은 이들은 이 건물이 효율적인 감시를 위해 탄생한 근대의 감옥 판옵티콘(Panopticon)의 또 다른 버전이라는 깨달을 것이다. 일반적인 판옵티콘과 다른 점이라면 감시탑이 여러 개의 다리로 감옥과 연결되어 있고, 탑 안에서는 감시가 아닌 도살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렇게 보면 라오창팡의 구조는 미궁으로 상징되는 고대와 판옵티콘이라는 기계적 근대의 만남, 아니면 잘 정리된 혼돈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미로와 미궁이라는 말이 비슷하게 쓰이기는 하지만, 리베카 솔닛 같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이 둘은 조금 다른 개념이다. 간단히 말해 미로(maze)는 ‘헤매기’ 위해 만들어지고 미궁(labyrinth)은 ‘빠지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 같아도 미궁은 그 안에 들어온 이들을 결국 목적지로 정확하게 인도한다. 그런 점에서 라오창팡이 도살장으로 쓰이던 시절, 소들이 걷던 길은 그들을 죽음으로 정확하게 인도하는 미궁이었던 셈이다. 미궁의 종착점에는 미노타우로스가 아닌 인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그리고 지금 라오창팡의 우도와 계단 위를 헤매는 이들은 웨딩 촬영을 하는 신혼부부들과 사진 찍기를 핑계로 연애를 시작하는 남녀들이다. 이들에게 라오창팡은 미궁이 아닌 미로이다. 이들은 길을 잃는 묘한 흥분을 상대방에 대한 매력으로 착각하면서 자신들의 미래를 만들어내고 있다. 1933년의 라오창팡이 삶을 ‘끝’내는 미궁이었다면, 2017년의 라오차팡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를 새로운 삶을 낳는 미로이다.



5. 1933년, 상하이


치욕적인 1842년의 난징 조약 이후 상하이는 외국인들의 치외법권을 보장하는 조계지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치욕의 땅은 훗날 많은 중국인들에게 피난처가 되어 준다. 20세기 청나라가 해체되면서 중국 대륙은 구원자를 자처하는 수많은 군벌들의 싸움터가 되었고, 많은 중국인들은 그 전화를 피해 상대적인 안전과 자유가 보장된 이 땅으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상하이로 흘러온 사람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마약 왕이 되고, 어떤 이들은 모여 중국 공산당을 만들었다.


사람과 돈이 몰려드는 상하이는 20세기 초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금융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1932년 상하이를 노리는 일본 제국이 사변을 일으켜 어수선하기는 했지만 1933년의 상하이는 여전히 전성기의 발전을 구가하는 도시였다. 그리고 이 도시에는 도시민들의 필요로 하는 고기를 공급할 거대한 도살장이 필요했다. 말하자면 아시아 최대의 도살장 라오창팡은 번영의 증거였다.


라오창팡이 건설된 1933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1933년, 세상에는 구원자 테세우스가 넘쳐났다. 그리고 그 테세우스들에게는 괴물이 필요했다.


먼저 그 해 1월, 한 실패한 예술가가 독일의 수상으로 취임한다. 바로 아돌프 히틀러라는 남자였다. 히틀러는 자신이 독일과 세계를 구원할 테세우스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생각에 독일인들이 갇혀 있는 미궁 속에 도사린 괴물은 유대인들이었다. 독일인들에게 히틀러의 언어는 자신들을 미궁에서 빠져나가게 해 줄 아리아네드의 실이었다. 급기야 독일인들은 그해 5월 히틀러의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들은 모두 불태웠다. 수많은 책들을 쌓아놓고 불을 질렀던 독일인들은 얼마 후 사람들도 불태우게 된다. 히틀러의 아리아네드의 실은 바야흐로 거대한 죽음의 미궁의 재료이자 설계도가 되었고, 결국 그들을 미노타우로스로 만들 것이었다. 그리고 이 미노타우로스의 운명은 16년 전 독일이 러시아로 보낸 한 선물과 연결되어 있다.


16년 전, 1차 세계 대전 중이던 독일은 봉인된 열차편으로 러시아에 선물을 하나 보낸다. 그 선물이란 바로 레닌이라는 남자였다. 러시아를 전쟁에서 떼어놓고 싶었던 독일은 러시아가 전쟁에서 손을 떼는 조건으로 레닌에게 막대한 혁명 자금을 들려 보냈다. 레닌은 4월 테제라는 새로운 언어를 내놓았고, 그 언어를 따르는 사람들은 혁명에 성공했다. 이 소문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고 많은 이들이 마르크스와 레닌의 언어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 꿈을 꾸기 시작했다.(1921년 상하이에서 모여 중국 공산당을 만든 13명도 그들 중 하나였다.) 이렇게 레닌의 언어 위에 탄생한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국가는 훗날 히틀러의 독일 제국에 치명상을 입힐 예정이었다. 미로는 이렇게 두 국가의 운명을 엮어 놓았다.


한편 1933년의 팔레스타인 땅에는 20 여 만 명의 유대인들이 몰려들었다.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인과 유대인을 모두 구원하겠다는 영국의 거짓 약속 때문이었다. 영국의 거짓말은 훗날 팔레스타인 땅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또 다른 죽음의 미로와 미궁을 만들 것이었다.


그리고 1933년, 미국에서는 영화 킹콩이 상영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거대하지만 가련한 괴수인 킹콩이 아니라 뉴욕이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오르내리던 킹콩은 뉴욕이라는 자유의 도시가 가진 부의 거대함과 화려함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다. 뉴욕이라는 도시를 쌓아올린 ‘자유’란 무엇이든 사고 팔수 있고, 무엇이든 소유할 수 있는 자유였다. 미국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자유’의 언어를 말하기 바랐다. 그러나 미국이 권하는 ‘자유’를 거부할 ‘자유’는 없었기에 이 ‘자유’의 언어 또한 거대한 미로와 미궁을 건설할 재료가 될 예정이었다.

이렇게 1933년의 세계는 각자 부르짖는 해방의 언어로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통째로 갈아 넣을 미로와 미궁을 건설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미로와 미궁은 1948년 한국의 작은 섬 제주로까지 연결된다.



6. 1948년, 제주


경찰은 조용히 마을 안으로 걸어들어 갔다. 그는 훗날 ‘red hunt’라고 알려진 사냥을 하는 중이었다. 마을 중간 쯤, 마당을 서성거리는 건장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마을의 모든 남자가 사냥감이었다. 경찰은 방아쇠를 당기고, 총알은 남자의 골반에 박혔다. 사냥감이 쓰러진 것을 확인한 경찰은 또 다른 사냥감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경찰은 뒤에서 젊은 여자의 울음소리 섞인 말을 듣는다. 호끔만 참읍써. 호끔만.(조금만 참아요. 조금만.) 여자가 흐느끼며 말을 건네는 대상은 아까 쓰러뜨린 사냥감이었다. 남자의 아내인 여자는 울면서 남자가 정신을 잃지 않도록 말을 건네고 있었다. 사냥감이 아직 살아있었구나. 경찰은 다시 남자가 쓰러진 마당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경찰은 여자의 눈앞에서 남자를 확인 사살했다. 집 안에서는 이제 갓 백일을 넘긴 여자의 막내아들이 울음소리로 엄마를 찾고 있었다.


1948년 제주도는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온,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들을 구출했다는 미군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런데 미국인들의 눈에 제주도는 레닌의 붉은 실이 거미줄처럼 칭칭 감겨 있고, 그 거미줄 위에는 빨갱이(red)라는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붉은 섬 ‘red island’였다. 이 괴물들은 미국의 ‘자유’를 위협할 것이고 그래서 괴물들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치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렇게 제주도는 말 그대로 탈출할 곳 없는 미궁이 되었고, 남자, 여자, 아이를 가리지 않고 이 섬의 사람들은 빨갱이라는 괴물이 되어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죽은 남자의 아내와 4명의 어린 아들들은 용케도 학살의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았다.


죽음의 미궁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자신의 말 때문에 남편의 죽음을 마주해야 했던 여자는 나의 할머니이고, 백 일 정도 밖에 되지 않은 막내아들은 나의 아버지이다. 언제가 할머니는 해방 후 할아버지의 일본행 밀항을 막았다는 얘기를 하셨다. 해방 이후 경제적인 기반이 없는 제주의 남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본행을 택했고, 그 선택은 삶과 죽음을 갈랐다. ‘그 때 일본 가켄헌 거 안 막아시문 너네 하르방 살아실 건디...’(그 때 일본 가겠다는 거 안 막았으면 네 할아버지 살았을 텐데...), ‘그 때 나가 속솜해시믄 하르방 살아실 건디...’(그 때 내가 조용히 했으면 할아버지가 사셨을 텐데...) 이렇게 할머니는 평생을 자신의 말이 남편을 죽음으로 몰았다는 후회에 시달렸고, 그 기억의 미궁 속에서 마지막까지 빠져 나오지 못하셨다.


한편 나의 아버지는 아버지처럼 어릴 적에 아버지를 잃은 나의 어머니를 만나 결혼을 하고 나를 낳았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동병상련의 처지의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룬 평범한 얘기인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는 작은 반전이 숨어 있다. 젊은 나이의 세상을 뜬 나의 외조부의 직업은 경찰이었던 것이다. 경찰에게 학살당한 남자의 아들과 경찰관을 아버지로 둔 여자의 만남. 미로는 이렇게 얽히고 설켜 이런 인연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미군부대에서 군복무를 하던 시절 나는 종종 나의 처지와 가족사를 함께 떠올렸다. 할아버지의 학살을 지위한 미국 군대에서 군복무를 하는 손자라. 거기다가 경찰관을 외조부로 둔. 그럴 때면 나는 나 자신이 뭔가 섞이지 않아야 할 것들이 섞여 있는 모순의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찌되었건 군대 막사에 앉아 궁상을 떨던 이 모순의 존재는 세상 이곳저곳 떠돌다 상하이로 흘러들어 라오창팡이라는 미로를 보게 된다.



7. 2017년, 상하이


라오창팡에 설치된 TV에서는 영화 헝거 게임을 모티브로 한 라오창팡의 서바이벌 게임장 광고가 방송되고 있다. 영화 헝거 게임 속에서 등장하는 캐피톨이라는 도시의 지배자들은 자신들에게 반역을 한 12구역의 소년 소녀들을 모아 놓고 서로 죽고 죽이는 서바이벌 게임을 시킨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미노타우로스와 테세우스의 이야기의 SF 버전이다. 그런데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의 현대판 버전인 라오창팡에서 그 영화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서바이벌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로 활을 쏘며 가짜 죽임과 죽음을 연출하는 서바이벌 게임을 하고, 유명한 연예인들이 참석하는 포르쉐의 신차 론칭 기념 파티가 열리며, 때로는 화려한 결혼식장으로 변신한다는 도살장 라오창팡에서 헤매다 보면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크레타 섬에서 아우슈비츠, 거대한 이야기에 휩쓸려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지 못하고 괴물로 이름 붙여진 채 사라진 사람들, 그리고 나의 가족사까지. 그렇게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는 이유는 라오창팡에서 만날 수 없는 것들이 부딪히면서 만들어내는 풍경 때문일 것이다. 죽음과 삶, 과거와 현재라는 연결될 수 없는 것들이 미로와 미궁이라는 구조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곳.


일설에 따르면 크레타의 미궁을 만든 다이달로스는 아리아네드에게 미궁을 탈출할 방법을 알려 준 일로 미노스 왕의 분노를 샀고, 그 벌로 자신의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미궁에 갇히게 되었다고 한다. 미궁을 탈출할 방법을 궁리하던 중 다이달로스는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를 만들고 아들 이카루스는 이 날개를 입고 미궁을 탈출하게 된다. 그 뒤의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는 바다.


다이달로스처럼 인간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로 세계를 만들어 왔다. 인간들은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하지만, 때로 그 세계는 어느 순간 미로와 미궁이 되어 버린다. 그 미로와 미궁 속에서 우리는 테세우스가 되기를 꿈꾸지만 어느 순간 미노타우로스가 되어 있기도 하고, 미노타우로스의 제물이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다이달로스처럼 미로와 미궁의 설계자인 동시에 희생자인 셈이다. 우리가 이 미로에서 탈출할 방법은 없다. 그저 기꺼이 길을 잃고 걷고 걸으며 새로운 길을 찾을 뿐. 그것이 또 다른 미로일지라도.


라오창팡 4층. 막다른 벽처럼 보이는 곳으로 다가가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공간이 옆에서 나타난다. 그 공간에는 한 남자 아이가 당황한 기색으로 서 있다. 마치 1981년의 나처럼.



8. 1981년, 제주


아이는 계속 골목 안에 갇혀 있다.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 골목에서 아이는 우두커니 막혀 있는 벽만 바라본다. 갑자기 막혀 있는 벽 옆에서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제야 아이는 그 벽이 막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착시 현상이었던 것이다. 아이는 벽이 막혀 있다는 상상 속에서 갇혀 있었던 셈이다. 아이는 남자가 들어온 길을 따라 후다닥 뛰쳐나간다. 남자는 고개를 돌려 뛰어가는 아이를 쳐다본다.


저 아이는 또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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