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도 않게, 악몽이 배달됐다. 새벽 두 시였다.
어슴푸레 천정이 보인다. 조금 전 나는 소설가 K를 살해했다. 어쩐 일인지 그와 나는 시골 어느 밭에 같이 서 있었다. K는 밭의 관리인이었고, 그의 도회적 이미지와는 안 어울리게 새마을 모자를 쓰고 있었다.
커튼 사이로 희미하게 들어온 빛이 천정에서 너울거리며 무늬를 만든다. 무늬를 바라보다 다시 내가 K를 죽였다는 기억이 났다. 내가 왜 그를 죽였지? 그 우스운 모자 때문인가? 이유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대신 사람을 죽였다는 끔찍하고 생생한 감정이 온 몸의 혈관으로 번져왔다. 내가 그를 유기했던가? 사람들이 증거를 찾아내지 않을까? 어디론가 가서 숨어야 할까? 그럼 어디로? 이런 숨 막히는 죄책감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나?
그러다 나는 내가 침대 위에 누워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꿈의 경계를 막 넘어 온 것이다. 불을 켜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침대 맡에 기대앉아서 푸르스름한 페인트가 칠해진 벽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나는 꿈속에서 살인을 저질렀어. 여기서는 아니야. 여기서는 아니라고.
나는, 이른바 내가 ‘도스도예프스키식 악몽’이라고 부르는 그런 꿈을 꾼 것이다.
이런 꿈을 처음으로 꾼 것은 대학 1학년 여름 방학의 어느 대낮이었다. 그 때 나는 1970년대에 출판된 삼성출판사의 세로 쓰기판 <죄와 벌>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잠들기 직전 내가 읽은 장면은 공교롭게도 라스콜리노프가 전당포 노파를 죽이는 부분이었다. 말 그대로 깨알같이 쓰인 소설을 읽다가 낮잠에 빠져든 나는 땀을 줄줄 흘리며 살인자가 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서도 잠시 동안 나는 내가 라스콜리노프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의 악몽이 있지만 이런 도스도예프스키식 악몽은 최악이다. 어느 정도로 최악인가 하면 수업 도중에 나와 친하게 지내는 선생님들이 쳐들어와 너 같이 수업 못하는 인간은 더 이상 못 봐주겠다며 수업에서 나를 쫓아내는 악몽보다 더 심하고, 숙취가 심한 아침 간밤에 술자리에서 직장 상사에게 이 월급으로 어떻게 사냐며 따지다가 ‘너부터 잘라 줄게’라는 말을 들은 것이 꿈이 아니고 생시였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큼 심하다.
끔찍하기는 하지만 악몽에도 좋은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공평함이다. 세금과 달리 악몽은 공평하다. 악몽은 나이나 지위, 빈부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찾아가기 때문이다. 막상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악몽이 그렇게 공평하지는 않는 것 같다. 나는 세상의 악한들과 학살자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괴롭히는 인간들에게 악몽의 누진제가 적용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튼, 국세청은 속일 수 있지만 악몽은 따돌릴 수 없다. 전설에 따르면 400여 년 전 상하이에 살던 슈퍼 리치에게도 악몽이 배급되었다. 그 슈퍼 리치는 ‘반윤단’이라는 명나라의 세도가였다. 그가 얼마나 ‘슈퍼’한 리치인가는 그가 아버지를 위해서 20여 년간 만들었다는 정원인 예원에 가보면 안다. 겸손하게 ‘정원’이라고 하면 우리는 기껏 앞마당이나 뒷마당을 떠올리지만 중국식 정원인 원림은 다르다. 예원은 말 그대로 구중궁궐이다. 지붕과 담에 놓여 있는 조각상, 마당에 기암괴석을 쌓아 만든 인공산, 돌을 하나하나 박아서 만든 바닥의 화려한 장식까지 예원의 모든 것이 그가 시대를 초월한 압도적인 재력가임을 보여준다. 이런 예원의 풍경을 보다 보면 조선의 왕들이 참으로 가난하고 검소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그런 슈퍼 리치 반윤단도 악몽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가 배급받은 악몽은 사람을 죽이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정적이든 황제든 살아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예원의 담과 지붕을 용으로 장식해 황제로부터 역심을 의심 받았지만 자기 집에 있는 용은 발가락이 세 개 뿐이기에 용이 아니라는 궤변으로 빠져나온 그였다.
반윤단이 두려워했던 것은 이미 죽은 자들이었다. 세도가인 자기 집안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 그들이 강시가 되어 예원으로 들이닥치는 꿈. 복잡한 미로 같은 예원을 걷다보면, 반윤단이 죽은 자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정원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 같은 필부가 악몽을 꾸면 쓸데없이 침대 이불보만 땀으로 축축하게 만들 뿐이지만, 슈퍼 리치가 악몽을 꾸면 급이 달라진다. 악몽이 현실이 되는 것을 막을 대책이 세워졌다. 제일 먼저 예원 앞에 호수를 파고 다리를 놓는 방법이 강구됐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죽은 자들은 그 다리를 가득 채울 것이고 기필코 예원 안으로 들어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또 다른 신박한 대책이 추가된다. 그 대책이란 다리를 아홉 번 꺾은 모양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 방향으로 직진밖에 못하는 강시들은 아홉 번이 꺾여 있는 다리를 건너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이렇게 해서 슈퍼 리치의 악몽은 아름다운 건축물인 구곡교로 완성되었다.
400여 년이 지난 지금, 상하이를 여행하는 모든 사람들은 악몽의 무대였던 이 다리를 건너기 위해서 온다. 사람들이 처음부터 이 다리를 찾는 것은 아니다. 여행객들은 수도 없이 밀려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우연히 이 다리를 건너게 된다.
여행객들은 예원으로 가려 하지만 처음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예원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예원은 이제 중국 전통 가옥의 지붕을 얹은 거대한 예원상성(豫园商城이라는 쇼핑 단지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예원상성은 단순한 전통 시장이 아니라 상하이 주식 시장에 상장된 주식회사다.) 예원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팔기 위해 지어진 예원상성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본래 가려고 했던 목적지를 잊는다. 급기야 자신도 모르게 먹을 것을 사고, 기념품 가격을 흥정한다. 그러다 우연히 호수와 그 호수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구곡교를 발견한다. 그리고는 그 다리가 어디로 연결되는지 알지 못한 채 산이 있기에 산을 오른다라는 식으로 다리를 건너기 시작한다. 다리를 건너는 도중 여행객들은 다리 위 여기저기서 단체 사진을 찍는다. 몇 년 뒤에는 그 사진을 어디에서 찍었는지 잊어버리겠지만, 어찌되었든 그들의 표정은 행복해 보인다. 그러다 다리 저편에 매표소가 눈에 들어오면 그곳이 예원 입구임을 깨닫는 것이다. 예원의 입구를 찾은 일부는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예원으로 들어가고 또 많은 일부는 별 거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구곡교를 건너온다.
구곡교 한 가운데 서 있는 150년 된 찻집 호심정(湖心亭) 2층에 앉아 밖을 바라본다. 이렇게 위에서 바라보면 다리를 아홉 번 꺾어 만든 것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확연해진다. 예원으로 가려는 사람들과 예원에서 되돌아오는 사람들이 뒤엉켜 구곡교는 심한 병목 현상과 정체 현상을 보인다. 여행객들은 다른 이들과 부딪힐까봐 온 몸에 힘을 주고 근육이 마비된 사람처럼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며 다리를 건너간다. 강시로 가득 채워진 것은 아니지만 반윤단의 악몽은 다른 방식으로 실현된 셈이다. 그렇게 한참을 구곡교의 모습을 위에서 보고 있으면 어느덧 내가 반윤단의 악몽 속으로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든다. 행복한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구곡교 위를 더듬더듬 걸어가는 그들의 모습은 내게 좀비 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좀비들이 들끓는 구곡교 위의 찻집에 갇힌 나는 어떻게 다리를 건너 도망칠 것인지 궁리하기 시작한다. 어느덧 나는 호심정에 앉아서 나의 악몽을 즐기고 있다.
어렸을 무슨 영화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감염된 자들로부터 쫓기는 영화를 보고 공포에 떨었던 적이 있다. 중세 수도사 같은 복장을 한 감염된 자들은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을 쫓는다. 영화 속 주인공은 결국 혼자가 된다. 자신과 함께 했던 모든 사람이 ‘감염자’로 변해버린 후 자기만 홀로 살아남은 것을 깨닫는 주인공의 마지막 모습. 어린 내 기억 속에는 그 모습은 영화에 등장하는 다른 어떤 장면보다도 공포스러웠다.
그런 기억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나는 좀비 영화나 드라마를 찾는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부분인데, 나는 달달한 로맨스 드라마에서 두 주인공의 오해가 쌓여 갈등이 최고조로 높아지는 부분도 잘 못 보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운 두 남녀를 그렇게 찢어 놓다니, 작가들이란 얼마나 잔인한 작자들인가.) 그런 장면이 나오면 결국에는 잘 풀릴 것을 알면서도 ‘아윽, 못 보겠어’라고 생각하며 물을 마시러 가거나 화장실로 도망을 친다. 사정이 이러하니 공포 영화도 잘 보지 못한다. 어떤 영화를 볼 때는 눈을 자꾸 위로 치켜들며 눈물을 참는다.(그러다 주위를 살펴보면 나만 울고 있다.) 그런 내가 온갖 끔찍한 장면이 가득한 좀비 영화를 보면서 위안을 얻는 것이다.
그 취향을 확인한 것은 몇 년 전이었다. 몸도 마음도 그로기 상태였던 그때 우연히 워킹 데드(Walking Dead)라는 하드 코어 미국 좀비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친구와 가족을 잃고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릭 그라임스라는 남자의 이야기였다. 한밤중 논문을 쓰겠다고 앉아 있다가 막히면 나는 릭 그라임스의 악몽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릭이란 남자의 악몽 속에서 같이 도망을 쳤다. 그런데 그렇게 드라마 속 인물들과 도망을 치고 있으면 살아야겠다,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꿈틀거렸다. 볼 때는 몰입하게 되지만 끝나고 나서는 허무해지는 액션 영화나 SF 영화와는 다른 감정이었다. 이처럼 호심정에 앉아서 반윤단의 사연을 생각하던 나는 뜬금없이 내가 보았던 좀비물들과 그 좀비물들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을 떠올린다. 그러다 어느덧 좀비 아포칼립스가 구곡교 위에서 실현되는 엉뚱한 몽상에 빠져드는 것이다.
여전히 구곡교 위는 사람들로 붐빈다. 만약 여기에 반윤단의 영혼이 있다면, 그리고 그가 여전히 원혼들에게 쫓기는 중이라면 산 사람들로 넘쳐나는 이 구곡교 위는 그에게 좋은 은신처일 것이다.
이렇게 예원 구곡교 위에서 나는 400여 년 전 한 남자의 악몽을 살짝 훔쳐보고, 거기에 나의 즐거운 악몽도 약간 섞어 본다. 이제 곧 밤이 되고 예원상성에는 휘황한 조명이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이 야경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또 모여들고 구곡교를 건널 것이다.
반윤단의 악몽은 이렇듯, 화려하게 번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