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명물이 하나 있다. 아마 상하이뿐만 아니라 중국 전역에서 볼 수 있는 명물일 것이다. 그 명물이란 바로 ‘경비원’이다. 이곳의 거리와 건물에는 경비원들이 그야말로 넘쳐난다. 내 숙소에서 500미터도 안 떨어진 연구실로 출근하는 동안 마주치게 되는 경비원들만 대략 7명에서 9명이다.
일단 숙소 정문을 지키는 경비원이 있고(하나), 숙소를 나오자마자 보이는 길가의 초소에는 검은 군복을 입은 두 세 명의 경비원이 있다(셋). 어디를, 또 무엇을 경비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지만 이 초소 안에는 여러 대의 CCTV를 확인하는 모니터가 켜져 있다.(그런데 이상도하여라. 이 모니터를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맥주를 너무 많이 마신 나머지 노상 방뇨하는 사람들의 안위가 걱정된다.) 큰 길을 하나 건너 연구동이 있는 길로 들어서면 또 초소가 하나 나온다. 바리케이트까지 갖춘 이 초소로 말할 것 같으면... 사실 왜 그 초소가 거기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있다(넷). 그 바로 옆 공회라 불리는 노조 회관 입구에도 초소와 경비가 있고(다섯), 조금 더 가다보면 보이는 주차장에도 경비원이 있다(여섯). 연구동 입구에도 도착하면 거기도 역시 초소와 경비원이 보인다(일곱). 입구 맞은편에 있는 도서관 건물 초입에도 경비원이 보인다.(여덟) 그리고 연구동 건물 1층에도 경비원이 있다(아홉). 집을 나선지 불과 5분 만에 나는 아홉 명의 경비원을 지나치게 된다.
어마무시한 군사 시설도 아닌 대학가의 사정이 이러하니 온갖 보물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지난번 방문한 상하이 박물관도 마찬가지여서 지금까지 다녔던 어떤 박물관보다도 많은 수의 경비원들이 관람객들 사이에서 서성거렸다. 한 경비원은 눈치 없이 내가 보려 하는 그림 바로 앞에 서서 관람객들을 감시하는 통에 그가 비켜주기를 한참이나 기다려야 했었다. 정장 차림의 경비원들이 밀집(?)해 있는 장소에서는 내가 주요 요인이 되어 경호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와 같이 대학이나 박물관 같은 시설만 경비원들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서민들이 산다는 스쿠먼 주택가 입구에도 여지없이 경비원들이 서 있다. 스쿠먼 안으로 들어가 상하이 사람들의 삶을 좀 더 자세히 구경하려고 하다가도 한국 군부대의 위병과 같은 포즈로 경비원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이내 포기하게 된다.
처음 캠퍼스를 드나들 때 경비원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약간씩 움찔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경비원들이 서 있는 곳은 그곳이 내가 일하는 학교라 해도 들어가면 왠지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밤에 캠퍼스를 산책할 때에도 출입문에 서 있는 경비원들이 괜히 나를 붙잡을 것 같아서 일부러 신분증을 들고 가곤 했다. 하지만 이들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이들이 어쩌다 생기를 되찾는 유일한 순간은 대학 안으로 들어오는 배달원들의 스쿠터 진입을 막을 때이다.
그렇다고 경비원들이 항상 장식품처럼 서 있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씩 그들의 권능을 발휘할 때도 있다. 언젠가는 사람이 없는 운동장에서 들어서다가 경비원이 쫓아와서 뭐라고 하는 바람에 다시 발길을 돌린 적이 있었다.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나가라는 소리였다. 또 한 번은 주말에 선생님들과 학교 노조회관의 탁구장에서 탁구를 치다가 경비원에게 쫓겨난 적도 있다. 탁구장 운영 시간인 오후 5시를 살짝 넘긴 시간, 바야흐로 마지막 승부를 내려할 때 건물 경비원이 들이닥쳤다. 딱 15분만 더 치면 그날의 승부를 낼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경비원은 ‘탁구장도 쉬어야 한다(?)’는 물아일체의 논리로 매몰차게 우리 일행을 쫓아냈다. 그의 논리 앞에서는 궈선생의 조근조근한 설득도, 20여 년 넘게 재직 중인 J 선생의 위상도 전혀 먹히지 않았다. 아마 한국이었다면 조금만 더 치고 가시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후 5시가 땡하고 지나자 경비원에게 우리 일행은 말 그대로의 아무 자격 없는 철저한 외부자가 되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그 경비원을 보며 J 선생은 중국인들이 잘하는 일 중 하나가 쓸데없이 문을 닫고 걸어 잠그는 일이라며 푸념을 했다.
J 선생의 푸념을 듣고 나서 길로 나오니 또 다시 무료한 표정으로 서 있는 경비원들이 보였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중국이란 나라가 외부와 내부로 경계를 나누는 데 능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것’과 ‘우리’를 ‘외부’와 철저히 분리하는 문화. (일종의 성(城)을 구축하는 이런 문화가 내게 특히나 낯선 것은 내 유년의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살던 제주도 고향집에서는 언제나 대문을 열어놓고 살았다. 심지어 외출을 할 때도 문을 잠그지 않고 그대로 외출했었다.) 아무튼 경비원들의 진정한 역할이란 경계를 나누고 그 스스로 경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경계를 드나드는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그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사람인지 검열하도록 만드는 것이고.
여기까지만 읽으면 중국인들에게 개인적인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경계가 철저히 구분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상하이의 길을 조금만 걸어보면 그런 경계라는 것이 있었나하는 의아함이 생겨난다.
운동장을 달리다 앞에서 걷는 노인의 복장이 집에서 입는 하얀 난닝구과 도트 무늬가 들어간 사각팬티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그렇고, 도보 위를 좌판과 간이 의자로 점령하고 스피커를 크게 틀어놓는 자전거 수리상과 그 바로 옆 자신의 리어카 위에서 낮잠을 청하는 고물상을 볼 때 그렇다.
이런 의아함이 제일 커지는 순간은 맑은 날 찾아온다. 볕이 좋은 날 상하이는 집집마다 빨래를 창밖 건조대에 널어놓는 장관이 연출된다. 건물의 외벽은 온갖 색상의 이불과 속옷, 옷가지들이 긴 장대에 꼬치구이처럼 걸려 펄럭거린다. 이곳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옆집 사람이 어떤 속옷을 입고 어떤 이불을 덮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빨래를 너는 공간이 건물 외벽의 건조대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길거리 가로수 사이가 빨랫줄로 연결되고, 거기에도 어김없이 속옷과 이불이 널린다. 고급 아파트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1층의 정원수는 알록달록 양말과 속옷이 널려 있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된다.
습도가 높은 기후와 베란다가 없는 건축 양식 때문에 이러한 관습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처음 이런 풍경을 접한 여행객들은 사뭇 큰 충격을 받고 카메라를 꺼내든다. 그 다음 순서는? 자신도 모르게 널려 있는 빨래에 대한 품평을 시작한다. 저 이불은 덮고 자기에는 너무 낡았는데, 저건 구멍이 났고...
널려 있는 빨래는 인간의 몸, 정확히는 개인의 신체가 들어 있던 공간의 기억이다. 장대에 걸려 본의 아니게 ‘전시된’ 옷을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이 쓴 일기를 훔쳐 본 것과 같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영혼과 육체는 빠져나갔으나, 그 사람의 시간과 공간이 통과한 흔적이라는 점에서 옷과 글을 유사하다. 그런 점에서 거리에 널려 있는 빨래는 일종의 지극히 사적인 일기이고, 거리는 일종의 사적 기록이 전시된 도서관이 된다. 사적인 일기들이 서가에 가득 꽂혀 있는 이상한 도서관. (이런 기이한 도서관이 있다면 경계를 넘어선 도발로 받아들여 질 것이다.) 빨래가 건물의 외벽과 길거리에 널려 있는 모습을 생경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내밀한 개인의 사적 영역이 이렇게 외부로 거리낌 없이 노출된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안팎이 뒤집혔다는 뜻의 inside out이란 영어 표현을 떠올렸다.
경계를 나누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적어도) 외국인들이 공적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장소에 빨래를 널어놓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중국인들에게 빨래를 너는 행위는 공적인 영역에서 행하는 행위로 범주화 되어 있을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 모두가 사용하는 공적 공간을 사적 영역으로 편입시키는 유연성이 있는지도 모른다.
장을 보러 가는 길. 모퉁이를 돌아 큰 길로 나섰더니 전에 보지 못했던 빨랫줄이 길을 막아선다. 그 빨랫줄에는 우리의 우주가 여전히 팽창 중이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 원래의 크기에서 서너배는 너끈하게 늘어진 것 같은 빨간색 속옷과 옷가지가 걸려 있다. 여전히 낯선 이 풍경을 보면서 inside out이라는 표현을 다시 떠올리다 영어 숙어 중에서 ‘know someone inside out’이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누군가를 까뒤집은 듯 속속들이 다 안다는 뜻이다. 중국이라는 나라를, 상하이란 도시를 까뒤집어 놓은 듯(inside out) 모두 이해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그래서 수수께끼는 수수께끼로 남겨두기로.
창밖에는 여전히 빨래들이 펄럭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