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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JEONG Jan 03. 2024

후회 없는 죽음은 가능할까

언제 생을 마감할지 안다는 건 좋은 일일까?

BC490년 제2차 페르시아전쟁 때다. 그리스의 페이디피데스라는 병사가 42.195km를 달려 페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음을 알리고 죽었다는 일화가 있다. 물론 전설에 불과한 이야기다.


만일 이 이야기가 사실이었다면, 이 병사는 죽는 순간 그저 기쁨만 가득한 채로 생을 마감했을까. 과연 내가 이렇게 승전보를 전하고 죽을 운명이란 것을 알았을까. 나를 둘러싼 가족, 친구, 전쟁이 끝나면 하려고 마음먹고 있던 일 등등은 떠오르지 않았을까. 이렇게 죽을 줄 알았다면 진작에 했어야 할 일을 하고 죽을걸 하는 후회 따위는 없었을까. 또한 이 병사의 죽음을 둘러싸고 그를 알고 있는 주변인들은 그에 대해 어떤 이야기들을 할까. 아직 죽어본 적이 없는 터라 무척이나 궁금한 것이 많다.


최근 어떤 글을 읽으며 인상 깊은 구절이 있다.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를 때 내가 죽었다고 가정해보세요.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해 주었으면 하는지를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이 추도사를 읽으며 나에 대해 나는 어떤 사람이었다라고 말하기를 원하는지 떠올려 보세요. 그것이 내 인생의 가치고 살고 싶은 방향성일 겁니다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 인가에 대한 질문은 내가 세상에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를 밝혀주는 일종의 미션과 같다. 삶의 방향성이고 내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떻게 목표들을 이루며 살아갈 것인지를 근본적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 이 삶을 마칠 것인지를 안다면... 이런 질문과 답이 과연 필요할까.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이 힘들고 벅차기에 언제 죽을지를 알면 좋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무언가 끝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끝이 어디인지 알고 달려가는 것은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삶에 대한 여유는 없을 것 같다. 마지막 순간까지, 아니 언제까지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데 그것이 안된다면 더 힘든 삶을 살다 갈 것 같다.


한번 사는 인생... 기왕이면 웃으며 가고 싶다. 가족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했노라, 남은 인생 잘 살아내길 바라며 그렇게 가고 싶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아내보다는 내가 하루라도 더 살고 싶다.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한다면 분명 나 없는 하루를 살아내기 힘들 것이 뻔하다. 그래서 아내에게는 그런 날들을 겪게 하고 싶지는 않다. (아내는 과연 이 말에 동의할까..?)


그래서 나는 내가 언제 죽을지를 알고 싶지는 않다. 낼모레 죽는다고 오늘내일 동안 아내를 죽일 수는 없다. 결말을 아는 순간 책이건 영화건 긴장감은 떨어진다. 어차피 그날 죽을 건데 뭐 하러 아등바등 살아갈까. 오히려 하루하루 줄어드는 것을 느껴가며 더 슬프고 점점 더 폐인과 같은 날들을 살게 되지는 않을는지. 그러다 보니 마지막 에서야 인간이 언제나 그렇듯 이걸 더 했어야 했고, 저걸 더 했어야 했는데 라며 후회만 가득한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을까.


후회 없이 가자. 언제 끝날지 모를 인생 적어도 나를 잃어버리지 말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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