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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JEONG Jan 09. 2024

지금이라면 어땠을까

의미를 갖는 건 타이밍도 중요하지만 다름을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2011년의 여름의 어느 날. 그날따라 유독 비가 많이 내렸다.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 준비를 하고 차 시동을 걸어 사무실로 출발했다.


출근 시간의 올림픽 대로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을 지날 즈음 문득 왼쪽 갓길로 역주행하는 차 한 대가 보였다. "미친 거 아냐? 이 시간에 저기서 역주행 이라니.." 그렇게 중얼대던 차 여러 대가 같은 길로 역주행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무슨 일 있나? 사고라도 난 건가?" 하며 별 의심 없이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그러나 이윽고 내 눈앞에 빗물이 점점 더 도로를 채우고 있는 모습이 펼쳐졌다.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도로에는 물이 차 올랐다. 그래도 조금만 더 가면 빠지는 길이 나오니까 조금만 더 가 보자며 전진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물은 점점 도로에 차 오르는 것이 실감 나게 보였다.   점점 더... 물은 차오른다. 버스가 옆을 지나가면 물살에 차가 둥둥 떠다니는 느낌도 난다. "차를 돌려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던 순간 무언가 내 발목을 톡 친다. 신발이다. 운전할 때 편한 신발로 갈아 신는 습관이 있는데, 벗어놓았던 구두가 물에 떠다니다가 내 발목을 건드린 것이다. 아래를 보니 이미 발 등까지 물이 차 올랐다.


주저 없이 어렵게 어렵게 차를 오른쪽 차선으로 몰아 갓길에 차를 대고 시동을 껐다. 그리고 짐을 챙겨 차 문을 열고 내렸다. 내리고 보니 주변이 가관이다.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차를 버리고 물이 허벅지 높이까지 차오른 올림픽 대로를 걸어 오른쪽 경사로를 오르고 있었다. 여의도에서 대방역으로 연결되는 다리 밑이었다. 나 역시 사람들을 따라 한 손에는 짐을 들고 한 손에는 우산을 펼쳐 들고 경사로를 올랐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더 가관이다. 도로에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벤츠, 아우디, 에쿠스... 웬만한 고급 차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결국 그날은 어찌어찌 여의도까지 차를 몰고 온 직장 선배와 만나 회사에는 출근 불가 통보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3~4일 뒤 CCTV를 통해 도로에 물이 빠져 견인 차량들이 이동하는 것을 보고 보험사에 전화해 이동을 요청했다. 결국 그 차는 폐차를 했더랬다. 운전석 대시보드 까지 물이 차 올랐으니 수리 불가였다. 그리고 그 주말에 주차된 정비소에 가서 문을 열어보니 그 역한 냄새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몇 가지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와 물로 씻어내며 말렸지만 CD 이 외에는 건진 건 없었다. 그날 입었던 양복/구두 등은 버렸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바로 새로 맞이할 차를 살폈다. 그리고 맞이한 녀석이 나의 가장 애착 물건이다.


차 높이가 조금 더 높았으면 좋겠고 안정감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찾아보다가 이 녀석을 맞이했다. SUV를 처음 운전 하자니 어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시운전을 해보긴 했지만 운전석 높이도 다르고 반응이 다르기 때문에 며칠간은 다소 고전했지만 지금은 어딜 가더라도 든든하기 그지없다. 14년째를 맞이했지만 지금까지 전구나 브레이크 패드 같은 소모품 정도 교체 이외에는 고장 한번 없다. 아이들을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차 뒷자리에 태우고 어디든 다녀올 수 있는 든든한 동반자이자 사고가 나도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것만 같은 호위 무사다. 기능적으로만 보면 요즘 나오는 차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후진 것들이지만 굳이 그러한 첨단 기능이 없다 하더라도 불편한 것은 없다. 그저 다름일 뿐이다.


애착은 그냥 생기지는 않는다. 어떤 순간, 어떤 의미를 가지고 만나느냐에 따라서도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만일 차량 침수/폐차라는 순간을 맞이하지 않고 맘에 안 들어 바꿨더라면 과연 나는 이 녀석을 맞이했을까. 지금 평상의 일상에 맞이했다면 그저 사륜구동에 짐 많이 실을 수 있는 SUV일 뿐이지 않았을까.


사람 역시 마친 가지 일터.  만난 타이밍과 함께 걸어가는 여정 등 수많은 이유에 따라 애착을 가졌다가 헤어지기도 한다. 차량도 사람도 애정을 가질 만한 이유가 필요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친했던 사람도 애정이 식어 자연스레 멀어진다. 못 내 아쉬운 건 필요에 따라 만나게 되는 그러한 만남들이 손가락질하며 헤어지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나 역시 함께 미래를 꿈꾸며 함께 창업을 했다가 서로를 비난하며 헤어진 적도 있다. 또한 서로를 이해하지 않아 비난한 적도 수 도 없이 많다. 뒤를 돌아보면 그 타이밍이 아니었다면 싸우지도 않았을 일이고, 조금만 더 존중했더라면 그리 될 일들은 아니었다. 적당한 거리를 두되 적어도 서로를 존중하는 사이가 되길 바란다. 두 사람이 만나도 서로의 일상에서 타이밍이나 의미는 각자 다르다. 그 차이만 존중하면 된다. 누가 맞고 틀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사람일 뿐이다. 


나이를 먹으며 겪는 인간관계의 흐름 속에서,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함에 따라 관계의 의미는 변할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각별하고 소중한 순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날의 홍수는 가르쳐 주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장 근본적인 태도다.


그 SUV와의 첫 만남이 주었던 깊은 의미를 되새기며, 나는 오늘도 다름을 존중하는 세상을 소망한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우리가 각자의 길을 가도 서로의 곁을 든든하게 지킬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그리하여 내리는 비와 같이 예기치 못한 순간에도 우리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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