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이 있을 때는 차라리 하는게 맞지 않을런지...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투둑투둑,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눈을 떴다. 비 오는 날 특유의 서늘한 공기가방 안 가득 들어차 있었다.
비가 오면 꼭 걷고 싶어진다.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충동이다. 우산을 들고 천천히 걸으면서 물에 젖은 나무 냄새도 맡고, 축축한 공기도 마시고,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도 듣고 싶다. 그런 것들이 마음 깊은 곳에 쌓여 있던 뭔가를 살짝 건드린다.
그래서 옷을 입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누군가 중요한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기분으로.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데, 창밖을 보니 바람이 생각보다 세다. 빗방울이 이리저리 날리고, 우산 하나로는 어림없어 보인다. 나갈까, 말까. 순간 망설여진다.
결국 다시 들어와서 커피를 내렸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컵을 책상에 두고 노트북을 켰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은 여전한데, 몸은 이미 의자에 붙어있다.
이상한 일이다. 사람 마음이 처음 생각을 끝까지 밀고나가지 못하는 게. 비 오는 날 걷고 싶다는 단순한 충동도 몇 가지 핑계만 있으면 쉽게 꺾인다. 옷이 젖겠다, 감기 걸리면 어쩌나, 아니면 그냥 귀찮다. 분명히 비를 좋아한다고 했고, 빗속을 걸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걸 아는데, 지금은 따뜻한 방에서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다.
이럴 때마다 궁금해진다. 왜 처음에 떠올린 생각을 그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걸까. 왜 이런저런 변명을 만들어가며 다른 일을 하게 되는 걸까. 그리고 그 마음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 구석에 남아서 계속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살면서 이런 경험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거다. 할까 말까 고민하고, 해야겠다 싶으면서도 망설이고 꺼리고… 그러면서 온갖 핑계를 찾아내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계속 속삭인다. "그거, 하고 싶었던 거잖아."
그럴 때는 차라리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잘못되면 어쩌나 걱정은 되지만, 그래도 마음에 찌꺼기 같은 건 남지 않을 텐데. 손해가 얼마나 클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모르는 상황 속으로 한번쯤은 뛰어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생각만 하다 끝나는 하루보다는, 조금 후회하더라도 실컷 부딪혀본 하루가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래, 걸으러 가자. 빗소리도 듣고, 빗방울이 땅에서 튀어오르는 것도 보자. 무겁고 더웠던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는 기분을 온몸으로 느껴보자. 지금 나가면 신발도 젖고 옷도 눅눅해질 거다. 그래도 마음 어딘가는 조금 가벼워질 것 같다.
계절은 망설임 없이 다음으로 넘어간다. 나도 그렇게, 한 걸음이라도 내딛어보고 싶다. 오늘, 이 비가 그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