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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JEONG Oct 15. 2023

즐거울 수만 있다면

그저 나를 믿고 그냥 가보자

둘째를 데리고 야구 아카데미에서 하는 야외 훈련을 나왔다.


두 아들 녀석들은 야구 마니아다.


집이 야구장이랑 가깝고 나도 야구를 좋아하다 보니 커서도 함께 즐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가르쳤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함께 야구하며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매년 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를 구매하고 읽어보는 건 연례행사고 신인 드래프트 결과를 보고 열띤 토론이이어진다.


그런데 야구를 하나의 취미 정도로 생각하는 큰 아이와는 달리 둘째에게는 때로는 한일전을 방불케 하는 격전의 장이 된다.


나나 형도 엄마도 승부욕이 별로 없는데 유독 둘째는 승부욕이 강하다. 응원하는 팀이 지거나 자기가 게임에서 지기라도 하면 그렇게 억울해할 수가 없다. 그 모습에 짜증도나고 화가 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최대한 그 이기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어느 날 둘째가 엄마에게 와서 이런 말을 건넸다. “엄마. 나 야구 선수 하고 싶어 하는 거 알지? 그런데 나 야구 언제 배워?” 동네에 야구 아카데미 광고를 본 모양이다.


며칠 후 아내는 둘째를 데리고 야구 아카데미에 방문했다.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철학이 마음에 든다며 시범 수업을 보내보고 맘에 든다고 하면 보내자고 했다. 삼 일 후 시범 수업에 다녀온 녀석에게 어땠냐고 물아봤다.


너무 좋아. 즐거웠어!


그냥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즐거웠다니.


순간 속으로 내 모습이 떠오른다.


일을 즐겁게 한 적이 언제였더라, 회사가 즐거웠던 적이 언제였더라… 분명 없지는 않았는데 너무 짧아서 기억이 잘 안 난다. 곰곰이 그런 시절을 떠올려보니 공통점이 있다.


스스로 자신감에 넘쳐 살던 시절이었다. 잘 되고 안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자신 있게 해 나가던 시절이다.


그런데 한두 번 실패를 하다 보니 나를 믿지 못하게 돼버렸다. 자신이 없어졌다. 남의 눈치만 보게 됐다. 그러다 보니 삶이란 것이 참 힘들게 변해버렸다.


야외 훈련을 나온 오늘. 타격이 잘 안 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본다. “안타 치면 좋지만 못 쳐도 돼. 기회는 또 와. 그러니까 즐겁게 하고 가자”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은 나에게 하는 말이다.


돈 잘 벌고 성공했단 소리를 듣기 전에 내가 먼저 즐거운 일을 즐겁게 하고 싶다. 자신감이란 다른 게 아니라 나를 그냥 믿는 거다. 그냥 믿고 해 보는 게 중요하다.


어느덧 아둘은 네 번째 타석이다. 두 번의 삼진과 한 번의 안타다.  삼진을 당했어도 이제는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즐기고 있다는 거다.


아빠도 이젠 더 즐겨보려고 할게, 아빠 많이 응원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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