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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JEONG Oct 08. 2023

잊고 싶지 않아서? 잊고 싶어서?

걸으며 생각한 것들

한강의 기쁨을 만끽하고 난 후 이 감각을 유지해야 했다. 매일이면 좋겠지만 아침에 출근하기도 힘들 테고 저녁엔 어두우니 힘들다는 게 핑계다.


일요일 아침 둘째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오늘은 집 가까운 용왕산으로 향했다. 산이라고 하기에는 그냥 뒷동산 정도지만 그래도 이러한 숲길이 있는 것만도 반갑다.


평소 이 산을 갈 때 초입에 꽤 가파른 길을 타야 해서 나처럼 운동부족인들은 헐떡거리기 일쑤다. 그래서 오늘은 평소 보아둔 주유소 옆에 길을 타고 계단을 오른다. 훨씬 편한 느낌은 들지만 그래도 점점 가팔라진다.


용왕정까지 직선코스가 아니라 많이 걷는 게 목적이다 보니 완만하게 산책길을 따라 걷는다. 강아지와 함께 나온 사람들 손을 꼭 붙잡고 산책하는 노부부의 모습이 부러워진다. 나도 과연 저런 모습으로 예쁘게 살 수 있을까?


코스를 따라 정상인 용왕정에 올랐다. 나무가 많이 자라 전망을 가리는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끝까지 온 게 더 중요하다. 전망은 그저 곁들여지는 사은품이다.


사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꽤나 귀찮은 일이었다. 쉬고 싶고 책이나 읽을걸 하는 후회도 든다. 그러나 이내 이까짓 거 뭐 얼마나 힘들다고 그러는지 스스로를 나무란다. 정말 힘든 길도 아닌 동네 마실 수준인데 말이다.


이거 하나 못하면서 뭘 하겠다는 건지…


인간이 동기를 부여하는 순간은 크게 두 가지 유형이라 본다. 과거로부터 오는 것과 미래를 위한 것.


잊고 싶어서, 되찾고 싶어서, 잃지 않으려 과거로

부터 동기를 찾는다. 아니라면 과거는 과거일 뿐 앞으로 목표를 세워 그곳으로 가려한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래서 미래를 보고 살고 싶은 사람이다. 그래야 나 스스로

인간이자 아빠이자 남편일 것 같다.


그토록 오랜 기간 나를 괴롭히던 것들을 있는 힘껏 던져내고 밀어내는 중임을 인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들이 많이 올라온다. 이젠 용왕정의 자리를 넘겨줘야겠다. 벤치에서 뜬금없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어쨌든 해냈기 때문에 얻은 선물이다.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와서 내 냄새를 맡는다. 이 강아지와 주인에게 벤치 자리와 시원한 바람과 휴식을 넘겨드리고 난 또 나만의 길을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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