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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JEONG Oct 04. 2023

걷기 예찬

나에 집중하고 순간을 즐길 줄 아는 내가 되는 시간

집 주변을 걷는다.


처음엔 1km 남짓 걷는 것도 힘들고 지겨워서 혼자 먼저 들어오던 내가 이제는 혼자서 걷고 오겠다며 집을 나선다. 쌓인 게 많아서다. 걷다 보면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경험치가 있다 보니 선호하는 편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는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다.  출퇴근도 지하철 속에서 부대껴야 하고 회사에 와서도 집에 있어도 주변엔 사람들이 존재한다. 혼자만의 시간은 방해받지 않고 하루의 일기를 마음속에 써 내려가는 시간이다.


연휴 셋째 날, 신목동역 건널목을 건너 안양천 산책로로 들어섰다. 그동안 이곳에 갈 때면 으례히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이대목동병원 방향으로 육교를 건너 오는 코스였지만 이번엔 한강이 있는 방향인 좌측으로 돌아섰다. 그 길을 따라 오른쪽 안양천을 보면서 한강을 보면 새로움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만 가지고 걷는다.  처음으로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생각하며 걷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선선한 바람이 좋다. 안양천을 따라 함께 한강으로 향하는 물고기들이 반갑다. 풀숲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산비둘기와 까치들에 깜짝깜짝 놀라지만 그래도 이들의 동행이 반갑다. 


집을 나와 정확히 30분. 눈앞에 한강이 펼쳐진다. 안양천과 한강이 만나는 합수부 지점에 다다랐다. 주변을 살펴보니 헬멧을 쓰고 여럿이 줄지어 이동하는 자전거의 행렬과 따릉이를 타고 웃으며 주행하는 커플들, 아빠 엄마 손잡고 산책하는 가족도 보인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물고기를 잡고 있는 분들도 보인다. 저마다 목적이 다르지만 여유 있고 이 순간을 즐기려는 목적은 같다고 느껴진다. 나도 이들과 함께 이 순간을 즐겨보기로 한다.



휴대폰 카메라를 켜서 주변 사진을 찍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월드컵 대교의 모습도 새롭게 다가온다. 왼쪽을 보면 끝없이 흘러가는 한강의 절경이 펼쳐진다. 마침 벤치 하나가 비어있어 그 자리에 냉큼 앉았다. 하염없이 바라보다 휴대폰을 다시 열고 e-book 앱을 켰다. 그리고 이내 잘 들어오지 않던 책을 실행시켜 읽어 내려갔다. 바람 소리와 사람들의 대화 소리는 배경음악으로 여겨졌다.  


자리에 앉아 30여 분을 책을 읽고 나니 스스로에게 놀라게 되었다. 안양천 길로 들어선 이후로 지금까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고민거리들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는걸 알았다. 그저 한강까지의 목표지점만 생각하며 주변을 즐기면서 지금 이 순간까지 난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주변인들로부터 걷거나 뛴다는 건 건강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를 잊게 만들어준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체험으로 느껴본 건 처음이었다. 


혼자서 흐뭇하게 웃었다.


8km 남짓을 걷는 동안 나는 가장 건강한 사람이었다. 걱정거리 하나 없이 그저 이 순간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언제나 괴로운 일이고, 버텨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감쌌다. 그럼에도 그런  순간들 속에서 잠시 동안이라도 탈출할 수 있는 일탈의 시간이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듯 이 순간을 즐기고 난 이후의 머릿속은 단순해졌고 순간순간에 충실하자는 일종의 결심도 생겨났다.  여행도 주지 못했던 즐거움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얻었다.  일상의 탈출은 돈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마 최소 한 달은 이 느낌은 유지될 것이다. 이것이 익숙해질 때면 또 다른 시도를 하게되지 않을까. 텀블러에 커피를 가득 담고 한강에서 마시는 즐거움을 느껴볼 수도 있고, 힘들어하는 아이들과 아내를 억지로 이끌고 한강의 새로운 모습들을 느끼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지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문제들은 나로 인해 벌어진 일들보다는 그렇지 않은 것들이 훨씬 더 많다. 영웅심, 책임감 등등의 따위로 나 스스로를 옭아매고 힘들게 하는 상황을 '걷기'에서 배운 순간순간에 집중하고 즐김으로써 탈출해 보는 힘을 키우고 싶다. 어차피 고민만 한다고 해결되지 않은 뿐더러 이따위 것들로 인해 이 순간의 행복과 즐거움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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