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실행뿐.
23년간 수도 없이 세워 봤던 사업계획, 경영계획, 인사기획 등등.
설득의 문서이자 실행의 단초가 되는 문서들이다. 애초에 이런 문서들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어디선가 술만 들이켜고 있는 사람으로 지내고 있을 법하다.
난 언제나 기획안, 제안서는 기가 막히게 썼다. 회사 신입사원 시절부터 팀장의 영향 탓에 문서 정리는 깔끔했고, 내용은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그것이 영업을 할 때에는 제안서로 나타났고 입찰 제안서 평가에서 70% 이상은 언제나 1등이었다.
설득의 문서인지라 논리적으로 물 흐르듯 이어가는 스토리 라인은 꽤나 중요하다. 실현 가능성이 높게 그려져야 하고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다이어그램, 차트 등이 근거를 갖춰 펼쳐진다. 이것이 나를 승승장구하게 했던 핵심적인 역량이었다. 함께 아이디어를 만들고 같은 이야기도 내가 하면 다르게 보였고 난 언제나 회사 내에서 이 분야에 관한 한 Top이었다.
그랬던 난데... 무지했고, 과욕이 나를 지금까지 내몰았다.
책을 읽고, 심리 테스트를 진행하고, 글을 쓰며 나를 옳아 매고 있던 것들을 차츰 벗어던지며 새로운 마음 가짐으로 살아내려 애쓰고 있다.
지난번 회사 내에서 발표한 내용들은 모두가 흡족해했고, 발표한 대로 실행하면 되는 일만 남았다.
실행이라...
갑자기 겁이 덜컥 난다. 제대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어쩌나, 생각했던 것처럼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이럴 때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뿐이다. 그냥 해보는 것밖에는 방법은 없다.
누구나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는 것처럼 해보지 않고서는 결과를 알 방도는 없다.
바로 실행에 옮겼다. 회사소개서를 다듬고 친분은 없지만 과거에 명함하나 주고받은 대표자들이나 실무자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함께 협력하고 싶습니다.
응답은 생각 외로 빨리 왔다. 취지도 알겠고 서로 도움 되는 일이니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의 벽을 넘어섰다. 그토록 끈질기게 나를 힘들게 했던 실행의 벽을 실천에 옮긴 것만으로도 나 스스로 성장하고 발전했다는 안도감을 갖게 됐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스스로 가보지 않은 길에 겁부터 낸다. 부하직원들에게 그토록 강조하지만 나 또한 어려웠던 것을 직접 해보는 것과 못하는 것과는 천지차이라는 진리를 절실히 느낀다.
결과로 어떻게 나타날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언제나 당당하게 원하는 바를 솔직히 나누고 합의점을 찾는 과정에서 좋은 열매가 맺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이렇게 오늘도 한 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