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다
완벽주의자, 불안함에 늘 감싸여온 나는 언제나 끊이지 않고 떠 오르는 질문이 있다.
“나는 뭘 하고 싶은 거야”
“너는 뭘 잘할 수 있는 건데”
시도 때도 없이 떠 오르는 이 질문 덕택에 어느 순간부터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늘어나는 건 한숨이고 자괴감뿐이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장보를 탐색하고 누군가 전해주는 명언에 때로는 깨달음을 얻었다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혼잣말로 수시로 나오는 욕설과 그 반대로 언제나 사람들에게 친절하며 점잔은 사람으로 비친 내가 힘들다, 도와달라 말하는 것은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남기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이전의 나와는 사뭇 달라졌다 말한다.
나 자신 스스로 완벽주의가 나를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또한 완벽하게 해내려고 노력하는 자세야말로 사회인으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믿어 왔다. 동료가 힘들게 하고 있으면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라는 생각이 앞섰고 그것이 리더로서 당연하다 생각했다. 완벽하지 않은데 어찌 시작할 수 있냐며 부하직원들을 나무랐다. 그런데도 난 언제나 훌륭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 믿어왔다.
자존심 따위 버리고 그냥 돌진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 이면엔, 얼마나 생각 없이 살았으면 그랬을까 라며 그들을 비판했다.
나 역시 다를 바 없는 인간이며, 제눈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책을 읽었고, 나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들을 보내며 하나씩 하나씩 마음의 벽들을 깨나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마음의 여유를 찾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차례대로 실행에 옮기는 중이다.
사실 이 노력과 마음가짐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또한 언제까지 해야 하는 것일지는 더더욱 알기 어렵다. 다만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야 말로 평생토록 내가 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은 안다.
일로 따지면, 아직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다. 그런데 신기한 건 작은 희망들이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나라면 피하고 싶고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도망치기 바빴을지도 모를 일이다.
마음의 기준이 생기니 나를 지키고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 일이라면 다시 협의를 거치고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생긴다. 그러면서 신뢰가 쌓여가고 무엇이든 해보자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저 타인의 눈에 거슬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내가 손해 보면 된다라는 생각은 이제는 저만치 물러가 있음을 안다. 타인과 일하는 방법들에 대해 새로운 것들을 느끼는 요즘이다.
오늘도 출근한다.
그리고, 노트북을 켜고 아직 불안하지만 희망의 불씨를 놓지 않기 위해 오늘도 걸어간다. 나를 찾아,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한 바대로 실행에 옮기는 여정은 오늘도, 내일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