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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Jul 10. 2024

가족기업 과연 나쁜 것인가

/가족 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적 접근으로 가족기업 지원이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주로 상속세와 가족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가족기업을 통해 가족 결속력을 높이고 경제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족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 이와 관련된 주제를 다룬 책에 대한 서평을 통해 가족기업의 역할과 중요성을 살펴본다.


[북리뷰] 가족기업 과연 나쁜 것인가


DYNASTIES : Fortunes and Misfortunes of the World’s Great Family Businesses by David S. Landes, 2006


하버드대 교수인 저자 데이비드 랜디스(David S. Landes)는 'Dynasties: Fortunes and Misfortunes of the World's Great Family Businesses(기업왕조들:글로벌 가족기업들의 행운과 불행)'를 도전적인 질문으로 시작한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당신이 알고 있고, 우리 모두에게 친숙한 세계적인 기업의 상당수가 가족기업이다. 그런데도 그들을 미워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독자들은 어떻게 답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하며 책을 읽어 내려가야 한다.

JP모건·포드(Ford)·도요타(Toyota)·로스차일드 앤 선(Rothschild & Sons)·피아트(Fiat)…. 늘상 접하는 이들 기업들은 가족기업에서 출발했고, 지금도 3대 이상 창업자 가족들이 경영에 직·간접으로 관여하는 '가족왕조'들이다. 분명한 사실은 12개 기업왕조들은 지금도 전세계를 호령하는 초일류 글로벌 기업들이라는 점이다. 가족기업의 중요성은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미국 기업 10곳 중 9곳 이상이 가족기업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중소기업들만 가족기업일 것이라고 오해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포천지 선정 500대 기업 중 3분의 1이 가족이 지배하거나 창업자 가족이 경영에 참여한다고 반박한다. 미국뿐인가. 유럽연합(EU)에서도 가족기업 비중은 60~90%에 이른다. 더 관심을 끄는 부분은 가족기업의 실적이 더 우수하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 주장을 덧붙인다. "경영인 기업(Managerial Enterprise)을 위한 제도적 여건이 미비한 개도국에서는 가족기업을 경제발전 수단으로 적극 장려해야 한다"고.

어찌 보면 가족기업의 탄생과 성장은 운명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가족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서구에서조차 가족기업의 성장을 막는 악조건이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기업활동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 사회다. 기업활동이 거칠고 저속하다는 사회의 편견이 강했다. 미국도 기업활동에는 우호적이지만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때문에 가족기업에 대해 부정적이다. 자수성가를 높이 평가하는 개척정신 또한 가족기업의 유지를 저해하는 요인이다. '그래도 가족기업들이 살아서 현재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면,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것 아니겠는가'라는 의문은 그래서 가능하다.

의문의 실체 속으로 들어가 보자. 성공요인은 환경요인과 내부요인으로 구분된다. 가장 중요한 환경요인은 가족기업의 비즈니스 성격과 관련돼 있다. 한 예로 금융업은 가족기업만이 성공할 수 있었던 모델이라는 주장이 있다. 금융업의 성패는 신용·인맥에 의해 좌우된다. 기업의 성패는 경영자의 연속성이 중요한 변수인데, 직계 후손이야말로 금융업 창업자의 신용·인맥을 고스란히 인수받을 수 있다. 금융업에서는 전문지식의 중요성도 상대적으로 낮다. 반면 첨단 제조업은 전문지식이 필요하고 고급인력을 지속적으로 생산해야 하기에 가족 내에서 인재를 충원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가족기업 성공의 걸림돌도 내부요인에서 나온다. 가족기업은 가족 중에 후계자를 선정해야 한다. 따라서 가능한 한 많은 자손, 그것도 똑똑한 자손을 많이 거느리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다.


저자는 또 묻는다. "가족기업이 이렇게 중요한데도 왜 '가족기업에 대한 이미지는 좋지 않을까?" 저자는 "가족기업에 대한 편견이 19세기 말 일부 독점기업의 불공정 기업행위 때문에 사회적인 진통을 겪은 미국 역사의 산물"이라고 풀이한다. 가족기업의 대안으로 경영인 기업의 모델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가족기업의 장점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이 책이 우리에게 특별히 와닿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가족기업 문제로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12개 기업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첫째 교훈은 가족기업에 대한 인식이 유연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기업은 선(善)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악(惡)도 아니다. 기업의 성과에 따라 개별적으로 평가받으면 되는 것이다.


가족기업 성공에 정해진 법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로스차일드(Rothschild)는 가족기업 형태의 금융업만 고집한 반면, JP모건은 경영인 기업으로 전환하여 다방면의 금융사업에 진출했다. 전략은 달랐지만 현재 두 기업은 모두 자신의 영역에서 최고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두 번째 교훈은 경제력 집중 우려 때문에 반(反)기업 정서를 조장하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는 것이다. 저자 지적대로 지식경제시대로 진입한 현대사회에서 가족기업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설사 이를 극복한다고 해도 후손들이 창업자의 뜻을 따른다는 보장도 없다. 굳이 가족기업의 독점을 견제하고자 한다면 개방을 확대하고 새로운 엘리트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재벌 2세가 가업의 후계자보다는 사회사업가를 더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사회, 생각만 해도 매력적이다.


데이비드 랜디스
1942년 뉴욕시립대(City College of New York)를 졸업하고 1953년 하버드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4년 하버드대 역사학 교수가 됐고, 현재 하버드대 명예 역사학·경제학 교수다. 역사·정치·경제학을 넘나드는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대표 저서는 1999년 발표한 국제경제에 대한 역사적 고찰과 함께 부의 분배 문제를 다룬 경제이론서 'The Wealth and Poverty of Nations'.


Key Sentences
●가족 업들은 성공적인 발전(개발)을 위한 가장 큰 희망이다.
●가족기업이 권력과 명예를 키워갈수록 이들의 후손들은 경영보다는 더 즐거운 일들에 눈을 돌렸다.
●금융업에서는 인맥이 중요하다. 이는 곧 가문과 그 지속성, 좋은 집안과의 혼인, 상속 등을 의미한다.
●최근까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모건그룹의 사람들은 돈보다는 점잖은 행실을 더 중시한다.
●(가족기업들의) 잔꾀가 먹혀들기는 했지만 희생도 뒤따랐다. 어느 누구도 John D 록펠러를 불법행위로 처벌할 수 없었다. 법적으로 그는 손댈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대중의 적으로 여겼으며 그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들을 믿으려 들었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정치경제학)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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