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상공인, 소도시에 대한 지식인의 책임
지역발전 논의를 한 단계로 높이려면, 지역에 대한 한국 엘리트의 뿌리 깊은 불신을 극복해야 한다. 소상공인와 소도시에 대한 불신 역시 지방 편견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지방, 소상공인, 소도시에 대한 편견을 자주 접하는 곳은 언론이다. 미디어는 주기적으로 '지방소멸', '바가지', '상권붕괴', '장인 정신없다', '창업하지 마라', '낙후됐다', '폐쇄적이다'식의 부정적 보도를 쏟아낸다.
이로 인해 지방은 '기회가 없는 곳', 소상공인은 '실패한 사람들', 소도시는 '발전이 뒤처진 곳'이라는 왜곡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편견은 국가 균형 발전과 사회 지속 가능성을 저해하는 구조적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이러한 격차와 편견이 존재하지만, 이를 상쇄하는 강력한 문화적 대응 논리가 있다. 미국의 경우, 19세기 이후 중앙을 상징하는 워싱턴과 연방정부를 불신하는 '진보주의 운동(Progressive Movement)' 전통이 중앙 우월성을 통제한다. 남부의 인정과 예의, 중서부의 근면과 정직 등 각 지역의 전통을 국가의 핵심 가치로 삼는다.
"소상공인이 미국 경제의 근간이다(Small businesses are the backbone of the American economy)", "월스트리트와 메인스트리트(Wall Street vs Main Street)”라는 말로 소상공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스몰 타운 아메리카(Small Town America)" 개념으로 소도시의 공동체 정신을 미화한다.
미국의 이러한 문화적 대응 논리 발전에는 지식인들의 중요한 기여가 있었다. 토마스 제퍼슨의 '농경 민주주의(Agrarian Democracy)', 에머슨과 소로우의 초월주의 철학, 프레더릭 잭슨 터너의 '변경 이론(Frontier Thesis)' 등이 그 예다.
한국에는 이러한 강력한 문화적 대응 논리가 부족하다. 농촌운동과 마을운동의 전통이 있지만, 지방이나 자영업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문화는 미약하다. 강한 반지성주의와 반워싱턴 전통이 엘리트 집단을 견제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 사회는 중앙, 대기업, 서울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엘리트 집단을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한국의 지식인들이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할 때다. 첫째, 언론에 지방, 소상공인, 소도시에 대한 공정하고 균형 잡힌 보도를 요구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올바름(PC)을 넘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언론의 모습을 요구하는 것이다.
둘째, 지식인들 스스로 이들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연구와 담론을 주도해야 한다. 지방의 고유한 문화, 소상공인의 경제적 기여, 소도시의 공동체 정신 등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해석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체계적인 논리 개발과 대안 제시 없이는 지역에 대한 편견과 폄하를 극복하고 한국 사회의 균형 있는 발전과 지속 가능한 미래를 실현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