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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Sep 22. 2024

도시와 국가의 부: 제인 제이콥스 도시 3부작의 결론

도시와 국가의 부: 제인 제이콥스 도시 3부작의 결론


제인 제이콥스(1916-2006)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도시 이론가 중 한 명이다. 정규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독학자였지만, 예리한 관찰력과 독창적인 사고로 도시계획과 경제학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저널리스트로 경력을 시작한 그녀는 이후 저술가와 활동가로 활약했으며, 도시의 본질과 경제 발전에 대한 혁신적인 이론을 제시했다.


제이콥스의 도시학 관련 주요 저서는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 1961), "도시의 경제" (The Economy of Cities, 1969), 그리고 "도시와 국가의 부" (Cities and the Wealth of Nations, 1984)이다. 이 세 저서는 제이콥스의 도시에 대한 사상과 이론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나간 결과물로, 현대 도시계획과 도시 경제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첫 번째 저서에서 그녀는 재개발로 대표되는 기존의 하향식 도시계획 패러다임에 도전하여 자연 발생적 마을의 역동성과 창조성을 분석했다. 두 번째 저서에서는 수입대체와 수출 개념을 통해 도시 경제의 성장 메커니즘을 탐구했다. 세 번째 저서인 "도시와 국가의 부"는 두 번째 저서에서 제시한 도시 성장 이론을 지역발전에 응용하여 도시 중심 지역발전 이론을 제시했다.   


1. 책의 주요 내용

제이콥스는 "도시와 국가의 부"에서 도시의 경제적 역할과 발전 과정에 대한 독창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그는 도시, 더 정확하게 도시 지역(city region) 또는 도시권이 경제 발전의 핵심 단위라고 주장하며, 국가 단위 경제 성장 모델의 실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제이콥스는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도시 지역의 중요성과 경제적 역동성을 설명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세 베니스다. 베니스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주변 지역과 긴밀히 연결된 도시권으로, 무역과 혁신을 통해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다. 제이콥스가 주장하는 도시 지역의 자생적 성장 모델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현대적 맥락에서는 도쿄를 분석하는데, 도쿄 대도시권이 어떻게 주변 지역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경제적 다양성과 혁신을 창출하는지 설명한다. 베니스와 도쿄는 제이콥스의 핵심 주장, 즉 도시권이 국가보다 더 중요한 경제 발전의 단위라는 점을 뒷받침하는 사례다.


제이콥스가 제시하는 지역 발전 모델은 도시 중심의 자생적 성장이다. 이를 실현하는 방안 중 하나가 지역화폐의 도입이다. 그는 국가 화폐가 지역 경제의 실제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보고, 각 도시나 지역이 자체 화폐를 발행할 것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지역 경제의 자율성을 높이고, 지역 간 교역을 촉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제이콥스는 도시 간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도시들이 서로 교류하고 협력함으로써 더 큰 경제적 활력을 얻을 수 있으며, 도시 간 교류에는 단순한 물자 교환을 넘어 아이디어와 기술의 교류까지 포함한다.


2. 책의 의의와 기여

"도시와 국가의 부"는 경제 발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이 책의 주요 기여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제이콥스는 도시를 하나의 독립된 경제 단위로 보았다. 이러한 시각은 기존의 국가 중심 경제 분석에서 벗어나, 도시 자체를 경제 발전의 핵심 주체로 인식하는 획기적인 관점 전환이었다. 이를 통해 도시의 경제적 역동성과 자율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가능해졌다.


둘째, "도시와 국가의 부"에서는 도시 발전 전략과 국가 발전 전략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이 강조된다. 이 책은 도시 경제와 국가 경제가 유사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는 통찰을 제공한다.


셋째, 보호주의를 기반으로 한 내부 산업 육성의 중요성이 이 책의 핵심 주장 중 하나이다. 특히 '수입대체'라는 개념을 통해, 외부 의존도를 줄이고 자체적인 생산 능력을 키우는 것이 경제 발전의 핵심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이러한 보호주의적 시각은 기존의 자유무역 중심 경제 이론에 대한 도전이자, 지역 경제의 자립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넷째, 이 책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점은 도시나 국가 모두 중심부에 노동과 자원을 공급하는 배후 지역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시각은 중심지와 주변부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하고, 균형 잡힌 지역 발전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제이콥스 이론은 도시계획가, 경제학자, 정책 입안자들에게 새로운 사고의 틀을 제공했다. 특히 지역 경제 발전 전략을 수립하는 데 있어 중요한 통찰을 제공했으며, 도시와 국가 경제의 관계를 재고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글로벌화 시대에 지역 경제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을 모색하는 데 기여했다.   


3. 한국 지방에 주는 교훈

한국의 지방 도시들에게 이 책이 주는 핵심 교훈은 내발적 지역발전의 중요성이다. 제이콥스가 제시한 자생적 성장 메커니즘은 도시와 주변 지역, 그리고 다른 도시와의 역학 관계에 기반한다. 이 메커니즘의 핵심은 수입대체 과정이다. 도시는 지속적으로 수입품을 자체 생산으로 대체하며, 이 과정에서 혁신이 일어나고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된다. 도시는 수입 대체를 통해 경쟁력을 키우고 수출을 늘리게 되며, 이렇게 얻은 수익으로 다시 새로운 수입대체 과정을 시작한다.


제이콥스는 이러한 순환적 과정이 도시의 자생적 성장을 이끈다고 주장한다. 이 모델에서 도시는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주변 지역 및 다른 도시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전하는 경제 단위로 이해된다.


제이콥스의 이론에 따르면, 부산과 같은 거점도시가 수입을 대체할 수 있는 도시권으로 성장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두 가지 가설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거점 도시들이 중앙과 독립된 경제 전략을 선택하지 않았다. 한국의 지방 도시들은 오랫동안 중앙정부의 정책에 의존해 왔으며, 자체적인 경제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제이콥스가 제안한 연방제나 지역화폐와 같은 내부 시장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요구하지 않았다.


둘째, 거점도시가 지원과 노동력을 공급하는 배후 지역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부산의 경우, 인근의 울산, 창원, 포항 등이 독립된 국가 산업을 유치하여 부산권 경제에 통합되지 않았다. 이들 도시는 각각 자동차, 기계, 철강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하면서 부산과의 경제적 연계성보다는 중앙정부와의 직접적인 관계를 강화했다. 이로 인해 부산은 충분한 경제적 배후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독자적인 경제권을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분석은 한국의 지방 도시들이 제이콥스가 주장한 '수입대체 도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보다 자율적인 경제 정책을 수립하고, 주변 지역과의 유기적인 경제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함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부산은 국가산업 육성에 참여하는 것보다는 항만 물류, 해양 바이오, 수산업, 해양스포츠, 라이프스타일 등 고유의 산업을 주변 도시들과의 경제적 연계를 강화해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자생적 발전 전략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지역 차원의 자율적인 경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중앙집중적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 중심의 경제 발전 모델로의 전환을 제안하는 것이다.


4. 책의 방법론과 주장에 대한 비판

"도시와 국가의 부"는 혁신적인 시각을 제시했지만, 몇 가지 한계점과 비판에 직면해 있다. 첫째, '수입대체', '도시 지역' 등 핵심 개념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부족하다. 이로 인해 제이콥스의 주장을 실증적으로 검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둘째, 제이콥스는 주로 일화적 증거에 의존하여 주장을 전개한다. 일화는 그녀의 논지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과학적 엄밀성 측면에서는 부족함이 있다.


셋째, 제시된 이론에 맞지 않는 사례들에 대한 분석이 미흡하다. 제이콥스의 이론이 보편적 적용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넷째, 국가 정책, 제도 등이 도시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다. 제이콥스가 도시를 지나치게 독립적인 단위로 보는 경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섯째, 가장 주목할 만한 비판은 제이콥스가 이전 저작에서 보여준 관점과의 불일치성이다. 그는 첫 번째 책에서 도시의 창조성을 도시 건축과 커뮤니티 환경에서 찾았다. 그러나 "도시와 국가의 부"에서는 도시를 단일 행위자(unitary actor)로 설정하고, 외부 교역을 통해 경쟁력과 창조성을 확보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그녀의 이전 주장과 상충되며, 도시 내부의 복잡한 역학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의 변화는 도시의 내적 동학과 미시적 관점을 간과하게 만들어, 도시 발전의 핵심 요소들을 놓칠 위험이 있다. 또한 이는 제이콥스가 이전에 강조했던 도시의 다양성, 복잡성, 그리고 상호작용의 중요성과 모순되는 면이 있다.


'도시와 국가의 부'는 한계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도시와 경제 발전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제이콥스의 통찰은 여전히 현대 도시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유용한 관점을 제공한다.



<참고 문헌>

제이콥스, 제인. (2004). 도시와 국가의 부 (서은경 역). 서울: 나남출판. (원서출판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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