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 소사이어티는 도시의 문화적 중심이 크리에이터들이 모여 새로운 도시 문화와 콘텐츠를 생산하는 '크리에이터 타운'으로 이동할 것으로 전망한다. 서울에서도 홍대, 이태원, 성수동과 같은 크리에이터 타운이 트렌드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크리에이터 타운은 기존 기업에게 중요한 도시 자원이 된다. 기업들이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크리에이터 타운의 문화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사가 탄생하고 성장한 도시의 문화적 특성을 브랜드 정체성에 녹여내며 성공을 거두어왔다. 스타벅스는 시애틀의 커피 문화를, 나이키는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스포츠 정신을, 애플은 실리콘밸리의 혁신 문화를 자사의 브랜드 이미지에 효과적으로 투영했다.
기존의 한국 기업들은 주로 제품의 기능적 특성, 기술력, 가격 경쟁력 등을 중심으로 브랜딩을 해왔다. 삼성전자나 LG전자와 같은 대기업들은 최첨단 기술과 혁신을 강조하는 브랜딩 전략을 펼쳐왔으며, 현대자동차나 기아는 품질과 디자인 혁신을 중심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 왔다. 화장품 업계에서는 한국의 뷰티 트렌드와 기술력을 강조하는 K-뷰티 브랜딩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브랜딩 방식은 점차 한계를 보이고 있다. 기술이나 품질 면에서의 격차가 줄어들면서 차별화가 어려워지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단순한 제품 특성을 넘어 브랜드가 지닌 문화적 가치와 스토리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도시 문화를 활용한 브랜딩은 한국 기업, 특히 소비재와 라이프스타일 기업들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제공할 수 있다.
도시 문화를 브랜딩 소재로 활용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도시 문화는 독특성과 진정성을 지니고 있어 브랜드에 깊이를 더할 수 있으며, 지속적으로 진화하면서도 일관된 정체성을 유지한다. 또한 다양한 요소(예술, 음식, 라이프스타일 등)를 포함하고 있어 브랜드 확장의 기회를 제공하며, 글로벌화 시대에 지역성과 세계성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한국 기업들도 도시 문화의 특성을 자사의 브랜드 전략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니스프리와 오설록은 제주도의 청정 자연과 문화를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녹여냈고, 무신사는 성수동의 힙한 문화를 패션 플랫폼에 접목시켰다. 젠틀몬스터는 홍대의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분위기를 아이웨어 브랜드에 반영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한국의 글로벌 대기업들도 새로운 브랜딩 전략을 실험한다. 특히 현대자동차는 도시 문화와 기업의 헤리티지를 결합한 브랜딩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는 올해 초 '브랜드 헤리티지팀'을 신설하고, 울산에 헤리티지 전시관을 개설하는 등 기업의 역사와 도시의 산업 문화를 연계하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현대차의 헤리티지 활용 전략은 다양한 구체적인 사례로 나타난다. 현대차가 만든 첫 완성차인 포니의 콘셉트 차를 복원하여 기업의 도전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아이오닉5' 전기차는 포니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또한 신형 그랜저는 1세대 '각 그랜저'의 디자인 요소를 활용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울산 헤리티지 전시관을 통해 현대차의 역사뿐만 아니라 한국 자동차 산업의 발전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의 역사와 도시의 산업 문화를 결합하여 브랜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과거 헤리티지를 이어 온다는 점은 완성차 제조사로서 쌓아온 수십 년간의 제작, 경영 노하우를 소비자들에게 은연중에 전달할 수 있고, 브랜드 이미지도 각인시킬 수 있다"라고 말한다.
현대차의 이러한 접근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위상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2022년 판매량 기준 세계 3위 완성차 그룹으로 올라선 현대차그룹은 브랜드 지향점을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에서 '퍼스트 무버(선도자)'로 전환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제품의 기술력이나 품질을 넘어, 기업의 문화와 철학, 그리고 그것이 뿌리내린 도시의 문화까지 아우르는 총체적인 브랜드 전략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대기업이 도시 문화 브랜딩을 수용하는 방법의 하나가 '리브랜딩'이다. 현대차처럼 기업 성장의 또 다른 단계로 진입할 때 리브랜딩이 필요해진다. 리브랜딩은 서사가 될 수 있고 디자인이 될 수 있지만, '나만의 헤리티지'가 주요 자원이 될 것이다.
도시 문화 브랜딩은 단기간에 완성할 수 있는 전략은 아니다. 도시 문화와 콘텐츠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도시 콘텐츠 개발 능력을 개발해야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크리에이터들이 만들어가는 도시의 콘텐츠를 브랜드 전략에 활용할 수 있다. 크리에이터와의 협업을 통해 한국의 현대적 도시 문화와 전통적 요소가 조화롭게 결합된 독특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한국 도시의 부흥을 이끄는 주체는 도시 문화를 발굴하고 브랜딩하는 크리에이터다. 서울의 경우, 홍대는 예술과 인디 문화의 중심지로, 성수동은 힙스터 문화와 사회적 기업의 메카로, 이태원은 다문화와 글로벌 감성의 상징으로, 강남은 현대적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의 중심지로 브랜딩하는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활동한다. 대표적인 크리에이터로는 홍대의 스트리트H, 어반플레이, 로컬스티치, 성수동의 성수바이블, R프로젝트, 용산의 매거진B, 파르품삼각 등이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서울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부산은 영화와 해양 문화를, 전주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한옥마을을, 제주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휴양 문화, 강릉은 음식과 생활문화를 중심으로 도시 브랜딩을 진행하고 있다.
도시 문화를 기업 브랜딩에 활용하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도시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을 통해 브랜드를 차별화할 수 있으며, 소비자들에게 도시에 대한 친숙함과 호감을 통해 브랜드와의 정서적 연결을 강화할 수 있다. 또한 도시의 역사와 문화는 풍부한 스토리텔링 소재를 제공하며, 시간이 지나도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 재해석이 가능한 지속가능한 마케팅 자산이 된다. 이러한 노력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독특한 위치를 확립하고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기업의 도시 브랜딩을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가 할 일은 도시 문화와 매력 증진에 집중하는 것이다. 문화자원과 접근성을 갖춘 도심 지역은 크리에이터 타운으로 전환하는 것이 도시의 매력을 높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도시 건축환경 개선과 크리에이터 지원을 통해 크리에이터가 도시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생활권을 조성하는 일이다. 매력적인 도시 문화는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발굴하고 사업화해야 하는 작업이며, 현대 도시에서는 크리에이터들이 그 주체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1. 모종린. (2023). 헤리티지 경영. 매일경제, 2023년 10월 29일.
2. 홍석호, 송진호, 오승준. (2024). 저평가된 'K-기업' 브랜드 가치. 동아일보, 2024년 9월 11일.
3. 동아일보. (2024). [기업 한류, K-헤리티지로] 헤리티지팀 만들고 울산 전시관도 "명차 브랜드 이미지 각인 효과". 동아일보, 2024년 9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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