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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Jan 23. 2019

로컬 지향이 창출한 스위스 쥐라산맥의 시계산업

이한빈 선생은 1965년 저서 <작은 나라가 사는 길>에서 스위스인의 정신세계를 두 단어로 표현한다. 향토애와 편력증.


태어나고 자란 자연환경을 “자기 몸의 연장과 같이 느끼고 사는” 것이 향토애고, 압도적인 산악환경을 벗어나 넓은 곳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하는 갈망이 편력증이다. 어떻게 보면 상호 충돌적인 두 가치가 결국 향토애로 수렴한다는 것이 선생의 생각이다. 향토애가 넓은 세계를 찾아 유랑하는 스위스인이 “산속에 있는 본향을 근거지로 생각하고 활동하고 결국 그곳으로 돌아오게 하는 구심력"이라는 것이다.


향토애나 편력증으로 요약되는 “정신상태야 말로 스위스 사람들의 국민감정을 이루고 있는 또 위에 여러 토막에서 본 바와 같은 경제, 정치, 문화, 군사 모든 부면의 스위스적인 생활양식을 만들어주고 있다.” 선생은 향토애와 지역 생활양식 관점에서 스위스가 자랑하는 쥐라 산맥 시계산업, 바젤 제약산업, 브베 식품산업의 역사와 경쟁력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다.


<작은 나라가 사는 길>이 출판된 1965년 이후 세계경제는 석유위기, 신자유주의 개혁, 지역경제통합, 아시아 금융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정보화, 4차 산업혁명 등 수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산업의 자동화, 세계화, 대도시 집적이 심화됐다. 전 세계적으로 산업과 기업의 탈지역화를 요구하는 경제 환경 속에서 지역 경제와 라이프스타일에 기반을 둔 스위스 산업의 운명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이한빈 선생의 향토애와 편력증은 아직도 유효할까?


놀랍게도 스위스 산업 구조와 경쟁력의 기본은 변하지 않았다. 아직도 스위스 기업은 향토애와 편력증에서 비교우위를 찾고 경쟁력을 강화한다. 지역사회의 뿌리를 유지하고 지역의 장점과 자원을 살려 세계로 진출하는 기본 비즈니스 모델을 고수한 것이다.


오히려 스위스의 정체성 기반 산업은 미래 경제에 더욱 경쟁력을 발휘할 것이다. 하이테크에 경도된 한국 사회는 간과하지만 미래산업의 방향은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가 강조한 하이테크(High Tech)와 하이터치(High Touch) 산업의 융합이다. 현대 소비자는 한편으로는 자동화와 인공지능으로 생산한 편리하고 저렴한 상품을 요구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소비를 통해 편리성과 가격을 넘어선 감성, 체험, 심미성, 맞춤 서비스 등 탈물질주의와 하이터치 가치를 추구한다.


하이터치 생활산업이 대표하는 탈물질주의 산업은 투자를 통해 단기간에 건설할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 기업이 위치한 지역의 오랜 생활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첨단기술과 연결해야 만 소비자가 요구하는 진정성과 차별성을 성취할 수 있는 산업이다. 향토애와 지역 라이프스타일을 하이테크와 결합한 스위스 산업이 미래에도 번영할 것으로 믿는 이유다.   



스위스 지역과 산업

 

현재 스위스 경쟁력은 1965년에 비해 크게 변하지 않았다. 아직도 세계에서 일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이며,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한다. 2017년 일인당 국민소득은 8만 달러로 룩셈부르크에 이어 세계 2위, 2017-2018년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은 세계 1위다.


스위스의 대표적인 수출산업은 기계, 전자, 식품, 섬유, 화학, 제약 산업이다. 이한빈 선생이 지적한 대로 식량과 자원을 전적으로 해외에 의존하는 스위스는 수출만으로는 건전한 경상수지를 유지할 수 없다. 그래서 부족한 외환 수입을 메꿔주는 관광산업과 금융산업이 발달했다.


2012년 글로벌 포천 500 리스트에 등재된 15개의 스위스 기업도 대부분 이들 전통산업에서 배출됐다. 14위 글렌코어(Glencore 자원과 곡물거래), 공동 14위 네슬레(Nestle 식품), 157위 노바티스(Novatis 제약), 178위 취리히인슈런스(Zurich Insurance 보험), 192위 로슈(Roche 제약), 204위 크레디트스위스(Credit Swisse 금융), 215위 UBS(금융), 273위 ABB(엔지니어링), 274위 얼라이언부츠(Alliance Boots 제약 유통), 325위 엑스트라타(Xstrata 광산), 364위 쿠그룹(Cooper Group 유통), 387위 아데그룹(Adecco Group 인력공급), 396위 스위스리(Swiss Re 재보험), 396위 미그로스(Miglos 유통), 396위 홀심(Holchim 시멘트)이다.


지역주의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사실은 대기업이 위치한 도시다. 취리히와 바젤에 각각 본사를 둔 금융회사와 제약회사를 제외한 다른 대기업은 인구 10만 이하의 소도시에 본사가 있다. 스위스에서는 취리히(인구 40만), 바젤(인구 18만), 제네바(인구 20만)를 대도시로 인식하지만, 이들 도시는 한국 기준으로 보면 모두 소도시다.


그렇다면 스위스의 작은 도시는 어떻게 글로벌 대기업을 배출하고, 더 중요하게 이들을 계속 붙들 수 있을까? 이한빈 선생이 발견한 ‘작은 도시 큰 기업’의 비밀은 지역 중심의 정신세계와 생활방식이다. 시계 산업의 본거지 쥐라 산맥 소도시 사례를 통해 그 비밀을 확인하는 것이 이 장의 목적이다.



스위스 시계 산업의 새로운 도전


2014년 애플 워치의 등장 이후 수많은 언론사와 전문자가 스위스 시계산업의 위기를 전망했다. 소니, 모토로라, 노키아 등 수많은 전자산업 강자들을 무너뜨린 애플의 다음 타깃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실제 애플워치가 출시된 2014년부터 스위스 시계산업은 크게 출렁이고 있다.


시장 조사기관 쿼츠(Quartz)에 따르면 2015년 스위스 시계 수출은 전년 대비 3.3% 감소한 211억 불에 그쳤다. 2009년 이후 처음으로 하락한 것이다. 반면 스마트워치 출하량은 2015년 4분기부터 스위스 전통 시계 출하량을 추월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동기간 스마트워치 출하 대수는 전 세계적으로 810만 대였는데, 이 중 63%가 애플워치였다.


2015년 이후 상황도 좋지 않아 보인다. 애플과 주요 스위스 기업들이 매출 통계를 공개하지 않지만, 주요 언론은 2017년 4분기 애플은 8백만 개의 애플워치를 판해, 스위스 전체 산업의 매출을 추월했다고 보도했다.  


시계산업의 미래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애플의 과거 성공사례를 봤을 때 스위스 시계산업도 예외 없다는 목소리가 기본적으로 많다. 게다가 애플이 명품기업 이브 생 로랑의 CEO를 영입하는 등 산업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고 있는 부분도 대단히 위협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꽤 있다. 1970년대 일본 전자시계의 도전을 물리쳤듯, 이번에도 스위스 시계의 전통이 살아남을 거라는 것이다. 이들은 스위스 시계와 핸드폰이 본질적으로 다른 상품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스위스 시계가 상징하는 명품성이 있기 때문에 남성은 몰라도 여성은 계속 이 시계를 구입하리라 예상하는 것이다. 또 태그호이어가 자체적으로 스마트워치를 개발하고 출시한 것처럼 오히려 역습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애플과 스위스 시계, 과연 승자는 누가 될까? 스위스 산업 전체가 승리할 것으로 보긴 어렵다. 애플워치와 직접 경쟁하는 저가 시계 생산자는 오래 버티지 못할 모른다. 하지만 하이엔드 시계 사업자의 운명은 다를 수 있다. 스위스 생산자 중에 생존한다면 그 기업은 스위스 최대 시계기업 롤렉스일 것이다. 롤렉스는 연 50억 달러 매출을 자랑하는 말이 필요 없는 세계 최대 럭셔리 시계 브랜드다.


1905년 런던에서 시작한 롤렉스는 1919년 제네바로 본사를 옮긴 이후 줄곧 시계 산업의 상징으로 군림해왔다. 방수 손목시계(1916년), 수심 100미터 방수 시계(1953년), 스위스 쿼츠 무브먼트(Quartz Movement. 1968년) 등은 롤렉스가 이끌어온 시계 산업 혁신의 역사가 됐다.


태그호이어와 달리 롤렉스는 스마트워치 시장 진출을 거부하고 전통 고수에 매진하고 있다. 롤렉스의 대응전략은 한마디로 말해 '롤렉스답게(Rolex Way)'다. “롤렉스에는 특별한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전통적인 노하우, 장인정신, 전문기술,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는 섬세한 디테일 말입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충실하게 기계식 시계를 만들 겁니다. 그게 우리의 전략이자 스타일이죠."


롤렉스의 대응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롤렉스가 단순히 비싼 시계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고산등반, 극지 탐험, 동굴 탐험, 항공운항 등 익스트림한 도전을 즐기는 이들의 곁엔 늘 롤렉스가 있었다. 1953년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에드먼드 힐러리 등반팀의 손목에도 물론 롤렉스가 채워져 있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롤렉스가 고객들과 형성한 라이프스타일 파트너로서의 입지는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일견 고집스러워 보이기도 하는 롤렉스의 이 대응전략은, 사실 애플의 도전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이다. 과거 애플에 의해 무너진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기술력과 엔지니어링 경쟁력을 강조했다. 하지만 애플의 진짜 힘은 라이프스타일 충족이기 때문에, 그런 대응은 효과를 거둘 수 없었다. 롤렉스는 자신들이 이미 탄탄하게 확보하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파트너로서의 강점을 극대화시켜 문화적 전략으로 맞서고 있는 것이고, 바로 여기 애플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 숨어있다.





쥐라 산맥의 시계산업


롤렉스의 라이프스타일 경쟁력은 단순한 기업 전략의 산물이 아니다. 롤렉스가 시계를 생산하는 쥐라 산맥 지역의 문화와 산업 생태계가 이 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한다. 라쇼드퐁(La Chaux-de-Fonds), 르로클(Le Locle), 비엔(Bienne) 등 쥐라 산맥 소도시에 롤렉스(Rolex), 파텍필립(Patek Philippe), 티쏘(Tissot), 제라페리고(Girard-Perregaux), 에벨(Ebel), 오메가(Omega) 등 수많은 고급 시계기업들이 본사 또는 작업장을 두고 있다.


스위스 시계산업의 기원은 바쉐론(Vacheron)과 브레게(Breguet)의 18세기 제네바 공방에서 찾을 수 있지만, 스위스 시계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우뚝 세운 곳은 라쇼드퐁이다. 라쇼드퐁 시계 산업의 시작은 다른 시계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계 제조 장인 다니엘 장리차드(Daniel Jeanrichard)가 도제 양성과 가내수공업으로 이 도시의 시계 제조업을 개척했다. 19세기 말 라쇼드퐁은 세계 시계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쟁쟁한 시계의 본고장들을 제치고, 전 세계 시계 생산량의 50%를 생산할 만큼 시계산업을 지배하게 됐다.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역사가들은 저밀도 격자형(Grid) 도시 디자인과 작업장 설계에서 도시 경쟁력을 찾는다. 라 쇼드퐁이 18세기 대형 화재로 폐허가 된 구도시를 골목 도시로 재개발하면서 시계 산업에 최적화된 도시 디자인을 완성 것이다. 시계산업에 특별한 도시건축이 필요했던 이유는 그 산업이 첨단 산업이었기 때문이다. 시계산업은 18세기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전 이미 과학 기술을 상품 생산에 응용한 정밀 기계 산업으로 발전했다.


근대 시계 산업은 16세기 독일, 프랑스, 스위스에서 시작됐다. 최초로 휴대용 시계를 만든 사람은 독일인이었다. 역사학자들은 피터 헨라인(Peter Henlein)을 휴대용 시계의 발명가로 지목한다. 그는 16세기 초반 뉘른베르크(Nuremberg) 출신 자물쇠와 시계 장인이었다. 전문 분야는 펜던트나 옷에 부착하는 용도로 쓰이는 초소형 시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스위스 시계산업은 17세기 프랑스의 박해를 피해 피난 온 위그노(Huguenot) 장인들에 의해 시작됐다. 이들은 지역 시계 산업에 예술적 전문지식을 접목시켜 제네바와 쥐라 산맥이 시계 제조 중심지로 성장하는데 기여했다. 이한빈 선생이 인용한 것처럼 쥐라산맥 시계 산업은 위그노 후손들이 "밝은 눈"과 "흔들리지 않는 손"으로 개척했다.


시계산업이 대량생산, 분업, 부품 조립 등 현대적 의미의 산업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곳도 스위스다. 파리에서 훈련받은 스위스 시계 장인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Abraham-Louis Breguet)가 뚜르비옹(Tourbillon, 중력에 의해 생기는 시간 오차를 보정하는 태엽 장치), 파라슈트(Pare-chute, 충격흡수장치), 브레게 오버 코일(Breguet over coil, 플랫 밸런스 스프링, 그리고 한두 개의 터미널 코일) 등 일련의 기술을 발명했다.


대량 생산 체제를 도입한 대표적인 스위스 기업이 론진(Longines)이다. 1832년 상티미에(St.-Imier)에서 설립된 론진은 – 창립자인 오귀스트 아가시(AugusteAgasssiz)의 이름을 본떠 Agassiz & Co.로 알려져 있을 때 – 에타블리사주(établissage) 유행을 가져온 1세대다. 론진은 1866년 시계 생산 전 과정을 한 공장 안에 집약했으며 그 후 45년이 지나지 않아 1,1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해 전 세계에 시계를 수출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왜 스위스가 시계산업의 중심지가 됐을까? 브레게, 아가시와 같은 장인 혁신가의 역할이 컸지만, 스위스의 소도시 경쟁력도 일조했다. 스위스는 매우 분권화된 국가다. 골짜기마다 작지만 역동적인 도시가 있다. 이는 전통산업이었던 시계 제조업이 자연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큰 도시 위주로 집권화되어있는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대조적인 지역 조건이 시계산업을 발전시켰다.


장인 정신, 기술 혁신, 소도시 경쟁력과 더불어 라쇼드퐁이 세계 시계산업의 중심지가 된 데에는 도시 디자인과 건축이 크게 기여했다. 라쇼드퐁의 도시 계획과 건축물들은 합리적 구조에 대한 시계 장인들의 니즈(needs)를 반영했다. 1800년 대 화재 이후 시계 제조업이라는 단 하나의 산업을 위해 계획된 도시다. 주거용 주택과 공방이 어우러져 있는 건축 디자인도 17세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시계산업의 필요에 의해 진화했다.


라쇼드퐁 도시계획자들은 교통 체증을 최소화하고 부품의 운반을 원활하게 만들기 위해 당시 기준으로 넓은 도로를 사이에 둔 격자형 블록을 도시 디자인으로 채택했다. 그 결과 이 도시는 격자무늬 거리(Grid)에 기반한 현대 도시로 재탄생했다. 격자무늬 거리에 평행으로 시계 공방들과 시계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주택과 공방들이 들어섰다.


건축물의 주요 특징은 작업장 효율성 제고를 위한 디자인이다. 햇빛을 최대한 활용하고 공방 건물 지붕에 창문을 많이 배치했고, 1층도 창문으로 햇빛이 많이 들어오도록 설계했다. 시계 공방과 아파트 건물 모두 저층 건물로 이루어진, 오늘날의 저밀도 ‘골목’ 도시에서 근대 시계산업이 탄생한 것이다.


19세기 후반 라쇼드퐁의 도시 계획은 또 한 번 변한다. 가내 수공업에서 공장 생산화된 시계 제조 방식에 따라 칼 마르크스(Karl Marx)가 자본론(Das Kapital)에서 표현한 대로 이 도시는 '거대한 공장 마을'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이 마을의 공장들은 '악마의 맷돌(Satanic Mill)'로 불렸던 산업혁명기 영국의 공장과는 달랐다. 장인 노동자들이 일하고 생활했던 쾌적한 도시 공간이었다.  


라쇼드퐁의 시계산업은 미래 도시와 도시산업에 새로운 교훈을 던진다. 창조인재를 유치해 창조산업을 육성하려면, 창조성에 친화적인 도시 디자인, 즉 공동체 친화적인 도시를 건설해야 한다. 목적에 맞는 여러 공간들이 밀집되어 혼합된 도시 디자인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교류하고 자극받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이처럼 지역 전통과 역사에 기반한 스위스 시계산업은 새로운 기술의 도전을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충분한 사회자본과 혁신자본을 보유하고 있다. 관건은 스위스 시계산업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의 선택이다. 다소 희망적 일지 모르지만 스위스 시계산업의 리더 기업들이 첨단기술과 연결된 라이프스타일 창출 능력으로 고가 시장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해본다.



한국 지역과 산업에 주는 교훈


스위스와 달리 한국은 선진국 중 예외적으로 정치와 경제의 중앙 집중이 심한 나라다. 2010년 이후 한국의 기간산업이 동시에 불황을 겪고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1960대 이후 추진한 중앙산업 중심의 성장모델을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활력을 잃은 중앙중심 성장의 반대는 지역중심 성장이다. 한국도 스위스처럼 고유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지역이 주체가 돼 지역의 장점과 환경을 연결한 새로운 산업을 개척해야 한다.


스위스 사례는 그 방법도 제시한다. 한국 지도자들은 지역발전의 수단으로 공공기관 이전, 혁신도시 건설, 지역 재정 확충을 제안하지만, 이제부터는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스위스 지역과 도시가 시사하듯이 지역경제의 기본 경쟁력은 애향심, 그리고 이를 통해 형성된 라이프스타일이다. 한국의 도시도 각자의 매력을 살린 '라이프스타일 도시'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글로벌 대기업을 키운 스위스 작은 도시들의 공통점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한국 사람처럼 중심도시와 대도시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지만 큰 기업을 품은 도시들이 일자리가 많고 인프라가 탄탄하며 적당한 주택 가격을 유지한다. 또한 자연환경과 교육환경이 잘 갖춰져 있으며 곳곳에서 문화와 예술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스위스의 작은 도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살기 좋은’ 도시다.


하지만 그런 요소가 전부는 아니다. 살기 좋은 도시의 일반적인 조건을 초월하는 무언가가 있다. 바로 이한빈 선생이 강조하는 로컬, 지역 중심 라이프스타일이다. 그 도시 사람들만의 가치관, 생활양식, 소비 형태가 어우러져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형성한다. 또한 중심도시와 다른 뚜렷한 문화적 정체성을 추구하며 실제로도 그러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한국 소도시가 진정 ‘큰 기업을 유치하는 도시’로 발전하려면 문화적 조건이 물질적 조건만큼 중요하다. 중심도시와 차별된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어야 중심도시와 경쟁할 사람과 자본을 유치한다. 단순히 중심도시를 따라가기만 해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 아류에 머무를 뿐이다.


한국이 창조와 문화의 융합을 통해 창조경제를 완성하려면 새로운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지방 정부와 기업, 개인이 힘을 합쳐 스위스의 ‘작은 도시 큰 기업’과 같은 라이프스타일 산업을 창출하고, 이를 통해 다수의 자생적인 라이프스타일 도시를 조성하는 것이 한국이 추구해야 할 창조경제 모델이다.






출처: 작은 도시 큰 기업, 2014; 라이프스타일 도시,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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