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오래된 미래

by 골목길 경제학자

괴테의 오래된 미래


베를린 Kulturforum을 걷던 어제 오후, Gemäldegalerie(회화 미술관) 안 인포메이션 부스에서 『Faust 2025』를 소개하는 얇은 잡지 한 권을 발견했다. 박물관 입구의 사람들 사이를 지나며 무심히 집어든 그것이, 내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괴테와 다시 마주하게 했다.


『Faust 2025』는 괴테의 바이마르 도착 25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문화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괴테의 원작을 현대 사회의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다양한 예술 형식으로 재창조하는 시도를 담고 있다. 전시는 바이마르에서 열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가보지 못할 것 같아 아쉽다.


행사를 소개하는 공식 잡지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다양한 현대적 주제와 연결하여 해석하고 있다. 파우스트가 해안 지역을 간척하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장면은, 근대적 기술 진보가 불러온 생태적 파괴의 상징으로 읽힌다. 괴테가 참여했던 지질학 논쟁, 즉 '수성론(Neptunismus)'과 '화성론(Plutonismus)'에 대한 관심은, 『파우스트』를 과학과 시가 만나는 독특한 작품으로 부각한다. 또한 파우스트가 자연과 인간 공동체(Philemon과 Baucis의 오두막)를 파괴하는 과정은, 현대의 생태 저항 운동과 연결되었으며, "Mangel(결핍)", "Not(절박함)", "Sorge(근심)" 같은 존재들은 인간 욕망이 초래한 사회적·심리적 위기를 상징하는 방식으로 재구성된다.


『파우스트』는 단순한 악마와의 계약 이야기가 아니다. 지식을 갈구하던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고, 쾌락을 지나, 권력과 물질세계의 창조로 끊임없이 나아간다. 그의 눈앞에는 언제나 더 넓은 세계가 펼쳐져 있다. 그러나 그 끝에서 그는 모든 것을 잃는다. 자연은 파괴되고, 공동체는 붕괴되고, 인간성은 흔적 없이 흩어진다. 『파우스트』는 인간의 초월 욕망이 어떻게 세계를 변화시키고, 동시에 스스로를 무너뜨리는지를 그려낸 서사다.



괴테는 이 이야기를 통해 초월주의(Transzendenzdrang)라는 인간 본능을 직시했다. 초월주의란, 현재에 머무르지 못하고 끊임없이 더 많은 것, 더 높은 것, 더 깊은 것을 갈망하는 충동이다. 괴테는 이 충동이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경계를 넘는 순간 세상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초월을 무조건 찬양하지도 않았고, 경멸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 욕망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끌어안았다.


괴테를 계승한 니체 역시 인간을 자연과 문화,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이루는 존재로 보려 했다. 그러나 그는 괴테적 조화에 머물지 않았다. 니체는 인간 존재를 보다 급진적으로 밀어붙였다. 스스로를 초월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초인(Übermensch)을 제시하며, 고정된 질서와 도덕을 넘어서는 인간의 능동성을 강조했다. 괴테가 고전적 인간 완성의 꿈을 품었다면, 니체는 끊임없는 극복과 변신 자체를 인간성의 본질로 보았다.


바이마르 재단 잡지도 괴테와 니체의 연결성을 강조한다. 니체가 괴테를 ‘최고의 인간상’으로 평가하면서도, 초월주의적 인간형에 내재된 위험성을 인식했던 점을 부각했다. 니체는 초인(Übermensch)을 통해 인간의 자기 극복을 강조했지만, 동시에 경계 없는 초월 욕망이 초래할 파괴적 결과를 염려했다. 그의 해석은 괴테의 ‘파우스트적 인간’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과 깊게 맞닿아 있다.


독일 정치의 대립: 저항과 기억


오늘날 세계, 특히 독일 사회를 보면 괴테가 예견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크로이츠베르크와 달렘의 서점 진열대가 보여주듯, 좌파와 우파는 서로 다른 욕망을 안고 충돌하고 있다. 크로이츠베르크의 서가는 기후 위기, 탈식민주의, 소수자 권리를 주제로 한 책들로 가득했고, 달렘의 서가는 전후 독일인의 피해, 민족적 정체성, 상실의 기억을 강조하는 책들로 채워져 있었다. 독일의 현재는, 괴테가 오래전에 예견한 오래된 미래다. 이 갈등은 인간이 자신 안의 초월 욕망을 다루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변화를 갈망하지만, 그 변화가 가져올 파괴를 끝까지 직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 양극화의 바탕에는 독일 철학의 유산도 있다. 헤겔은 세계의 이성을 신뢰했고, 마르크스는 인간 해방을 위해 역사를 뒤엎어야 한다고 믿었다. 하이데거는 존재의 망각을 경고했지만, 그 경고는 때로 위험한 민족주의로 이어졌다. 슈미트는 정치란 궁극적으로 '우리'와 '적'을 구분하는 일이라고 보았고, 니체는 인간의 자기 초극을 촉구했다. 이들 철학자들은 인간 능력의 위대함만을 강조했을 뿐, 그 역량이 가져올 파괴적 결과에 대한 책임은 간과했다.


이러한 시대정신 속에서 괴테의 목소리는 특별하다. 그는 욕망을 억누르지 말되 그 끝까지 사유하라 말한다. 초월하되 그 결과까지 책임지라 경고한다. 자연과 인간성의 경계를 존중하며 전진하라 조언한다.


『Faust 2025』는 250년 전 괴테의 통찰을 현대 사회의 근본 질문들과 마주하게 하는 창구이다. 인공지능, 생명공학, 우주 개발 - 모든 영역에서 인류는 새 경계를 넘고 있다. 이 초월 여정이 축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는 괴테의 지혜, 즉 결과까지 책임지는 초월의 교양을 얼마나 기억하느냐에 달려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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